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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Mar 27. 2020

나의 인생 돌아보기

말레이시아에 적응하기 - 10세에서 14세까지 (PART 3)

첫 해 우리 가족은 쿠알라룸푸르 외곽의 타만 멀라와티라는 동네에 살게 되었다. 한국인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곳으로 국립동물원이 바로 옆에 있고 정원이 있는 집들로 둘러싸인 현지인들이 사는 조용한 동네였다.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의 교육 철학으로 인해 나와 내 남동생은 현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외국인을 처음 받는 거여서 교장의 허락을 받으려고 아버지가 꽤나 애를 쓰셨단다. 개학하고 학교에 가보니 학교 전체에서 딱 나와 내 남동생만 외국인이었다. 개학 전까진 방학 기간이었기 때문에 즉시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으셨고 교감 선생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레이어를 가르쳐주시기로 하셨고 어떤 대학생이 영어 수업을 해주셨다. 교감 선생님 성함은 뿌안 나리나(뿌안은 영어로 하면 미세스라는 뜻), 나와 내 남동생이 아직도 우리 삶 최고의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분이다.


나리나 교감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말레이계 여성이셨는데, 수업을 위해 우리를 그녀의 집으로 부르셨다. 정말 서로 한. 마. 디. 도 안 통하는 상황이었는데, 선생님은 여유롭고 편안하게 우리를 대하셨다. 첫날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시고 식탁으로 이끄시더니 앉으라고 손짓하셨다. 식탁 위에는 이름 모를 각종 열대 과일들이 놓여있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과일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시고 이름을 말해주셨다. 처음엔 하나도 안 들리고 발음도 안돼서 뭔지 몰라하다가 몇 번을 같은 과일을 주시면서 같은 말을 하시길래 아! 이게 말레이어로  *****이구나~ 하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양한 과일 맛을 보게 해 주셨고 우리는 맛있고 재미난 놀이 같은 수업을 정말 즐겁게 다녔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외운 말들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최대한 직접 사물을 보고 만지면서 단어를 늘려갔고 슬슬 어려운 단어들도 책을 통해 가르쳐주셨다. 공부하다 지치면 자유롭게 쉬게 놔두셨고, 같이 식사를 하고 나면 집에 돌아갔다.


나는 특별히 아버지가 그림 수업을 계속하도록 현지 화가를 찾아주셨고, 주말마다 화가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배우게 해 주셨다. 중국계 화가 선생님의 작업실은 다양한 나이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들려서 그림을 그리는 분위기였고 편안하게 그리고 싶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면 되는 거였다. 가끔 다가오셔서 내 그림을 보시고 수정도 해주시고 손수 그림을 그려주시면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그림 수업을 하게 도와주신 것이 현지 학교 수업에 적응하면서 힘들 때마다 내겐 버틸 힘이 되어주었다. 말이 필요 없는 그림 그리기는 어디서든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전학 가는 학교마다 미술 수업 전체 일등은 항상 내 차지였다.



어린 시절이 지나고 나서 드는 생각은, 뭐든 배울 때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자신감'이구나 하는 거다. 소위 말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공부하려는 학생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멋도 모르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있으니 포기하지 않게 되고 하나씩 배울수록 더 커지는 그런 힘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줘야 하고 존중하고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이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공부도 재미있어야 한다. 다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더라도 모르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매일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 전엔 생각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가 재미를 만들어준다고 본다. 물론 타고난 호기심이나 열정이 재미를 찾는데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같이 놀아주는 부모는 아이의 흥미 키우기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내 아버지도 내 질문과 장난을 많이 받아주셨다.  


말레이시아에서 맞은 첫 방학은 정말 짧았다. 자전거를 타고 매일 동네를 탐험하고, 땡볕에 동물원에 구경 가고, 말이 안 되니 손짓 발짓으로 이웃 친구들을 만들고, 가끔 한인교회에 나가서 한국인 구경? 도 하고, 현지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매일 아버지가 내주시는 숙제를 하다 보니, 개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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