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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아 Aug 01. 2017

#12.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즈스탄을 소개합니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 여행에 대하여


<Intro> 내 삶에 찾아온 변화.


   '키르기즈스탄'이라는 나라를 다녀온 지 어느덧 2주가 흘렀다. 인생에 몇 번 찾아오는 전환점이 있다면 놀랍게도 내 삶은 그 땅을 밟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좀더 정확하게 삶을 바라보는 시선, 그 초점에 변화가 있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끊임없이 소비하고 구매하는 행위로 자기만족을 얻고 그것으로 위안을 삶는 '셀프힐링(Self-healing)' 시대에,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삶의 진리를 아주 조금은 깨달은 느낌이다. 눈 앞에 보이는 작은 물결에도 마음이 일렁이던 나에게, 그 물결 너머 쉼없이 흐르는 깊은 강을 바라보게 되는 시선의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언제나 부족한 것만 같았던 내 마음이, 무엇을 소유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은 충만함으로 넉넉해졌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멀리 그 땅에서 발견한 마음이 절대 희미해지지 않도록, 어리석게 시간이 흘러 잊혀지는 일이 없도록 가슴 속에 깊이 새기는 일 - 지금 써내려가는 글이 나에겐 그런 역할을 하는 중이다. 설령 잊어버릴지라도 언제나 이 글을 다시 읽고 지금의 이 느낌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아프고 나서 달라진 삶의 시선.

 

   연초부터 갑자기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일을 잠시 쉬고 치료를 받고 있는데 사실 그 때부터 내 삶은 이미 송두리채 흔들리고 있었다. 매주 2번씩 허리치료를 위해 다니고 있는 재활치료실에서는 다양한 환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서 눈만 깜빡거리시는 할아버지의 몸을 재활치료사들이 열심히 주무르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아이고 나 죽네'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재활치료실이 떠나가라 자신의 통증을 호소하시는 할머니도 있다. 때로는 1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갓난 아이가 교정 마사지를 받느라 한시간 내내 울기도 한다. 재활치료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정상적인 삶이 사실상 힘든 이들의 모습 앞에 나의 허리통증은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위안을 삶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재활치료실의 군상을 지켜보면서 한가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허리에 통증이 있든지 없든지, 혹은 삶에 다른 형태의 장애물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 삶을 살아내는 방향성 - 그 방향성이 그 인생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말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막연하게만 떠올려보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100세 시대라지만 갑자기 찾아온 나의 허리의 통증처럼 죽음도 내 인생에 그렇게 훅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의 순간, 내 인생을 회상해보았을 때 '내 삶은 꽤 괜찮았어'라며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올바른 방향성이 절실히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후회없이 잘 죽을 수 있을까? 인생이 길든 짧든 만약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 인생은 분명 의미있는 것이리라. 아직 살 날이 까마득하게 남았다고 생각했기에 미뤄두었던 인생의 최우선순위가 갑자기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주후 나는 키르기즈스탄으로 향했다. 내가 품어왔던 인생의 최우선순위를 바로 '지금' 실행해보기 위해서.

중앙아시아 대륙을 건너가는 비행기안에서 - 만년설과 높은 고산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


1.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즈스탄.


   '키르기즈스탄'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 중에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 '키......무슨 스탄?'하며 국가 이름을 익히는데 한참이 걸렸더랬다. 키르기즈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중국·우즈벡키스탄·타지기스탄·카자흐스탄 등의 주변국들과 접경하고 있다. 19세기에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20세기에는 소련을 구성하는 국가 중 하나였다가 1991년에 독립하였다. 언어는 러시아어와 키르기스어를 사용하며 수도는 비슈케크(Bishkek)이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릴만큼 지대가 높고 산이 많아 나라 곳곳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다. 원래 말을 타고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이었으나 소비에트 연방정권시절 유목생활이 금지된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와 농경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내가 방문한 곳은 키르기즈스탄의 제2도시 '오쉬(Osh)'라는 지역으로 7세기 중국에서부터 유럽까지 이르는 실크로드의 교차점의 역할을 했던 역사가 깊은 도시이다. 키르기즈스탄의 주요 산업은 농업, 광산업(석탄) 등이며 GDP는 69억불로 전세계 144위로 빈곤국에 속한다.

키르기즈스탄 지형적 위치 (사진출처 : 구글 검색결과)

   키르기즈스탄에 대해 인터넷으로 조사한 내용은 위의 내용이 전부였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 별다른 내용이 담겨있지 않은 위키피디아 페이지에는 이 국가를 대수롭게 생각하는 듯 했다. 한마디로 가난하고 국제정세에서 중요하지 않은 약소국가 - 위키피디아가 설명하고 나라는 바로 그런 나라였다.


함께하기에 볼 수 있는 것들.


   키르기즈스탄에는 [예이만도스]라는 문화가 있다. 손님을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면서 친구가 되는 문화. 심지어 하룻밤을 초대받은 집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 그렇게 함께 먹고 마시고 자는 시간을 공유하면서 친구가 된다. 어쩌면 진실한 관계(Relationship)의 기본 요건은 시간(Time)과 공간(Place)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이라는 허구의 공간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쩌면 불완전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어떻게 먹고 사는지 어떤 식구들과 사는지, 어떤 살림살이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 사람에게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삶의 치부를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그날만큼은 손님에게 내어 놓는 일이기도 하다. 손님이 온 날은 특별히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자신이 가진 그릇 중 가장 비싸고 좋은 그릇에 담아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들을 손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준다. 결국 누군가를 집에 들일 수 있는 행위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자신의 소유물을 나누기까지 그 사람을 아주 특별하게 여긴다는 표현인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현지인들을 만나고 집에 방문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삶을 공유하면서 이 땅이 가진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키피디아로는 설명하지 못한 이 나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련이 임의로 변경한 국경선으로 인해 우즈벡 사람들과 키르기즈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오쉬라는 이 땅 - 2010년 최근에도 두 민족간의 분열로 인해 수많은 집이 불타고 4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던 그들의 상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자를 납치해서 강제혼인을 하는 '보쌈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이슬람문화로 인해 여성이 남성의 소유이자 한 집안의 노동력으로 간주되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도 보게된다. 농촌을 벗어나 돈을 벌기위해 러시아로 도시로 떠난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시골의 수많은 아이들의 고아와 같은 삶들과도 마주한다. 현지인들과 함께하지 않고는, 그들의 삶을 나누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이 나라의 모습이었다.

   서른한살 지금까지 내 인생의 여행의 모티브는 '배움'이었다. 배우는 여행이자 '나'를 채워내기 위한 여행 - 여행지는 항상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소위 선진국들이었고 또는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날씨, 숙소와 같은 최적의 환경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었다. 나만을 위한 여행이었다. 어쩌면 여행지는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내가 품어왔던 인생의 방향성과 여행지들의 성격에는 큰 간극이 존재해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인생의 방향성 - 고통받고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도움을 주는 일.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그들과 나누는 일. 그들을 위로하는 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타인을 위한 여행 - 그것이 내가 품어왔지만 까마득한 미래로 미뤄두고 있었던 인생의 방향성을 조금은 반영한 듯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속에는 나를 채우고자 했던 그 어떤 여행들보다 더 많은 것들이 내 안에 채워지는 효과가 있었다. 굳이 나를 채우려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순간 - 그것은 결국 내 마음이 타인을 향할 때 온전히 가능한 것이었다.

오쉬도시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슐라이만 산에서. 반짝거리는 지붕들은 최근 우즈벡•키르기즈스탄 민족간의 분열로 불탄 집을 새로 재건한 집이라고 한다.


2. Hello, Stranger.

    (안녕, 이방인.)


   키르기즈스탄 오쉬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차츰 보이기 시작하면서 비록 짧은 일주일이지만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며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존 여행들이 '어떻게 하면 내 지식을 좀더 쌓을 수 있을까, 나를 더 채워낼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 있었음을 회상해볼 때 이번 여행은 분명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이런 목적성을 가지는 것조차 더 나은 나, 내 삶을 위한 것이기에 이기적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이기적 이타주의'가 '이타적 이타주의'보다 훨씬 더 건설적이며 지속적이라고 한다. 나의 유익함을 바탕으로 하되 그 행위의 결과는 타인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삶 - 키르기즈스탄 오쉬를 여행하는 내내 추구했던 여행의 방향성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가진 것은 많지 않았다. '이방인이자 여행객'이라는 신분으로 내가 이 땅에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기에 오히려 내 마음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어렸을 적 품어왔던 해외자선단체 활동가로서의 그 꿈을 나는 언제부터 버렸던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져오는 순간 지금 나의 신분과 상황에서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무료할 수 있는 일상에 '나'라는 이방인이 신선함이 된다면? 그 또한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나눔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돈을 충분히 벌어서' 혹은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이유로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을 미뤄두곤 있지 않는지. 지금 내 상황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고 작게나마 지금 실천해보는 삶을 사는 것 - 그것은 어쩌면 마냥 미뤄두다가 죽음 앞에서 후회하는 삶을 살지않기 위한 지혜가 아닐까?

견과류가 유명한 키르기즈스탄 - 손수 키운 농작물을 그들의 화폐로 구매해주는 것도 어찌보면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공정한 거래이자 선물이다.


'한국인'이라는 즐거움.


   그렇게 나는 '이방인'이라는 신분의 카드를 활용하면서 현지인들과 만나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의 사소한 일상에 한국인을 만나 유쾌한 대화를 하는 특별한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물론 대화에 필요한 짧은 회화들은 미리 익혀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쌀라마쓰스부(안녕하세요)', '볼 엠넷?(이건 뭐예요?)', '볼 칸차단(이건 얼마예요?)'과 같은 간단한 회화문구에서부터 '또알렛뜨(화장실 가고 싶어요)', '차이(차 한잔 주세요)'와 같은 생존을 위한 표현까지 - 언어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다리라는 것을 이 곳에서 어김없이 체감한다. 특히 영어가 안되는 나라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여 사용하는 일은 그 나라 사람과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태도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바디랭기지(Body Language)로 언어 이상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현지인이 말하는 내용을 눈치껏 이해해서 대답하면 또 그것을 상대방이 이해하는 기묘한 커뮤니케이션의 세계 또한 경험하기도 한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이 나라, 작은 도시에서 한국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외계인을 보는 것만큼 신기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더듬더듬 말을 걸어오는 키가 작은 여자 한국인을 보는 재미란! 그 소소한 서프라이즈를 그들의 일상에 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었다. 매번 똑같은 단어와 표현들이지만 난 키르기즈 사람들과 함께 웃고 소통했다.

키르기즈어를 사용하여 말을 걸어오는 나에게 설탕한 줌을 건네주시던 할아버지. 신기하게도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은 한국사람이랑 생김새가 비슷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에 건너가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최근에는 K-pop 열풍이 생겨서 K-pop 경진대회도 열리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서인지 거리를 다니다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의 인스타그램에, 페이스북에 내 얼굴이 보일 생각을 하니 쑥스러웠지만 그들에게는 K-pop의 나라, 대한민국 사람을 우연히 만나 함께 사진을 찍은 자랑스러운 날이 되었으면 싶었다. 문화컨텐츠의 힘은 나를 또한번 이들과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다.

    

3. 나누는 행위에서 얻는 기쁨.

   

   키르기즈스탄 오쉬를 여행하는 세번째 날이었다. 이틀동안 현지인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법을 익힌 뒤였고 이번에는 좀더 난이도를 높여 현지인의 집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겠지만 손님을 집에 초대하고 친구가 되는 문화가 존재하는 나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내에서 30분 떨어진 농촌마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한 할머니와 같이 앉게 되었는데 우연히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게 되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또알렛뜨(화장실)' 카드를 사용하며 버스 할머니네 집으로 향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입구에 위치한 초록대문집이었다. 참고로 키르기즈스탄 오쉬지역 화장실은 대부분이 푸세식이다. 똥파리의 습격을 피해 황급히 볼일을 보고 나와보니 이 집 손녀딸인 것 같은 어여쁜 소녀가 손 씻는 물 주전자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물이 부족한 이 나라의 방식대로 물을 손에 가득 담아 그 물로 손을 씻고나니 이번에는 따뜻한 티 한 사발을 건넨다. 키르기즈스탄은 석회가 섞인 물이 나오는 지역이다보니 수돗물을 티와 함께 끓여 마신다. 또한 말, 소, 양고기와 같은 육류를 많이 먹기 때문에 육식으로 기름진 속을 달래기 위해 티를 많이 마신다. 우리는 그렇게 마당에 있는 마루에 걸터앉아 티 한잔을 마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갈증을 해소하는 일 -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는 이렇게 사람의 공감을 얻고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물론 공공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는 키르기즈스탄에서만 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들의 거름에 지분투자(?)를 하면서 현지인의 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가 주신 음식들 - 요거트는 사실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성의를 생각해서 다 마셔버렸다. 오이는 정말 신선하고 맛있었다.

   티를 마시고 있는 우리에게 이번에는 마당에서 방금 딴 오이와 직접 만든 요거트 한 그릇을 가져오시는 할머니. '직접 키우신거예요?'라는 의미가 담긴 나의 손짓에 할머니는 그렇다는 대답과 함께 집 옆으로 보이는 텃밭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키르기즈스탄의 땅은 모두 국가 소유이나 이를 빌려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간다. 집과 함께 논밭이 있고 농산물을 경작하고 가축을 키우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는 일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다. 애를 낳고 자식을 키우는 일 또한 모두 여성의 역할이다. 이 집의 손자손녀는 무려 여섯명이다. 1달 전에 낳았다는 쌍둥이도 보여주셨는데 애엄마가 대단해보여서 나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 키르기즈스탄은 대게 결혼을 20대 초반에 하기 때문에 아이가 많이 있음에도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친구도 보쌈을 당해서 시집을 온 것은 아니겠지?' 슬픈 생각이 드는 것을 애써 가라앉혔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음식대접을 받았지만 이 때가 바로 이것들을 '감사의 표현'으로 바꿀 시간이다. 아이들의 사진을 폴라로이드로 찍어주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비타민C와 간식거리가 들어있는 작은 선물을 나눠주었다. 낯을 가리던 아이들이 선물을 받을 때 환하게 웃는 그 표정이란! 내가 가진 것을 나누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 마음 속에 가득 차오른다. 작은 호의를 요청하고 그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정성껏 감사를 표현하는 일 - 나눔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화되는 순간이다. 나눔이 반드시 상대방에게 장기적인 도움이 되어야 하고, 그렇기에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조금은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 나눔의 순간은 서로 주고 받는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순간들로 시작될 수 있으니 말이다.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의 며느리(오른쪽)와 손녀딸(왼쪽) - 나보다 나이가 어린 이 며느리는 자식이 무려 다섯명이다.

신체적 접촉으로 전하는 나눔.


   '말이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 안 통한다면 '몸'이 최고다.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행위 - 모든 신체적 접촉이 전달할 수 있는 마음은 이 곳 키르기즈스탄 땅에서도 어김없이 작용한다.

   넷째날 놀러간 지역은 마을 너머 끝없이 펼쳐져 있는 언덕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유롭게 뛰놀고 있는 말들과 소들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난 작은 언덕에 올라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경치를 감상하던 중 저멀리 눈이 마주친 할머니에게 '차이(티 한잔 주세요)~'를 외쳤다. 할머니는 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그렇게 방문한 집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나중에 느끼게 된 것이지만 이렇게 집을 방문하면서 여행을 하면 특별히 여행경비가 필요없다. 숙소도 크게 필요없고 차비와 현지음식을 소화시킬 튼튼한 몸뚱아리, 푸세식 화장실을 무난하게 이용할 수 있는 비위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 할머니 가정에는 4명의 손자손녀들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키우고 있었다. 할머니의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러시아로 돈을 벌기위해 떠났고 할아버지는 택시 운전사로 할머니는 손자들을 돌보며 농삿일을 하며 살아간다. 손님방으로 인도받은 우리는 할머니가 직접 만들고 키운 빵과 요거트, 과일들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키르기즈스탄 문화를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계속 음식을 갖다주시며 일일이 설명해주신다. 아침부터 들이닥친 손님들 때문에 세수도 안하시고 아침밥도 드시지 않은 상태로 살구와 오이, 토마토, 딸기들을 계속 갖다주시는 할머니. 이 채소와 과일들은 모두 집 옆 텃밭에서 손수 기르신 것이라 한다. 빵은 집 뒷편에 있는 밀밭에서 직접 트렉터를 타고 수확한 밀로 만드셨단다. 체리잼도 직접 만들어서 유리병에 보관한다고 설명하시면서 손님방 구들아래 지하실을 열어 보여주신다. 퀼트처럼 형형색색의 천조각을 이어 문양을 낸 옷도 이불도 전부 할머니가 직접 만드신 것이다. 그야말로 자급자족의 대가이자 살림의 여왕이었다. 할머니의 생산력은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하나의 지표이기에 충분했다. 할머니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젊은 52살의 그 '여성'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특별한 직업은 없지만 그녀의 인생에 주어진 의무와 역할에 사명감을 느끼고 충실히 살아가는 그녀의 삶 - 인류가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데에는 이런 평범하지만 강한 어머니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키르기즈스탄의 평균 수명은 70세로 우리나라보다 12년 짧다. 소련체제가 붕괴하면서 의료시설을 철수시켰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료시스템이 열악한 것이 원인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고 어렸을 때부터 힘든 노동을 하면서 살기 때문이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할머니께 사진을 찍어드린다고 했더니 손녀들만 찍어달라고 하는 것을 급구 내가 고집을 피웠다. 부리나케 머리부터 발끝까지 꽃단장을 하고 나오신 할머니의 모습 - 참 화려하고 멋지다. 세월이 지나도 지금 이 모습을 잊지마시길, 당신의 아름다운 삶을 기억하시길, 찰칵!

할머니네 앞 마당에서 - 이쁘게 단장하시고 멋있게 포즈를 취하시는 모습.

   특별히 내 마음에 더 들어온 것은 아이들이었다. 순수하면서도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그들의 모습에 난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은 아이들이 7살이 되면 당근 한 꾸러미를 들고 시장에 보낸다고 한다. 새벽에 출발해서 어떻게 해서든 혼자 그 당근을 전부 팔아야만 집에 돌아올 수 있는데 그 경험이 어린시절 그들의 인생에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내가 본 아이들은 칭얼거리는 아이 하나 없이 성숙하고 어른스러웠다. 10살이 채 안된 친구들이 집안일을 척척해내고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목민족의 대범함과 실크로드의 정신은 여전히 키르기즈스탄의 이러한 강인한 교육방식으로 남아있는 듯 했다.

   한켠으로는 나이답지 않게 너무 성숙해버린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너무 이른 나이에 인생을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아직은 사랑을 받아야할 나이에 떼한번 쓰지 않고 그것들을 참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런 마음에 만나는 아이들마다 내가 가진 사랑을 전하려고 애썼다.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손잡아주고. 아이들 눈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내가 바보같은 이방인이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너무나 이쁜 아이들의 모습 - 순수하고 착한 이 모습을 잊지말길 바라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선물해주었다.


이방인을 향해 피어나는 사랑.


   분명 이 땅을 섬기기 위해서 이 곳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온 거였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오히려 내가 그 섬김을 받았다. 사랑을 주기위해 이 땅에 왔는데 부끄럽게도 이방인에게조차 조건없이 베푸는 넉넉한 사랑을 받았다.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던 그들의 삶은 오히려 단단하고 건강해보였다. 그리고 가난하다고 해서, 조금은 불편하게 산다고해서 그것이 반드시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흙을 밟고 사는 그들이 어쩌면 병균 하나 없는 닭장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리보다 더 건강한 삶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이를 심은 만큼 그 오이를 거둬들이는 삶이, 어쩌면 분업화된 일과 속에서 자신의 산출물을 확인할 수 없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보다 더 건강한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눌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나보다 어쩌면 그들의 여유있는 마음과 삶이 오히려 더 나눔에 익숙해보였다. 우리의 삶은 분명 그들보다 더 풍족하고 편리한데 나눔에는 각박하다. 득과 실을 철저히 계산한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치 않으며 진정한 관계를 맺는 일이 서툴다. 이들의 사회주의는 붕괴되었지만 승자의 자본주의는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다.

도심을 지나가다가 발견한 레닌동상 - 이 곳의 할머니할아버지 세대들은 잘 살았던 소련 사회주의 시절을 그리워기도 한다고 한다.


<Outro> 사랑은 또다시 누군가에게 흐른다.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의 타인을 향한 여유가, 그 사랑이 내 마음에도 심겨진 것일까? 아니면 끝없이 펼쳐진 그 초원의 모습을 보고온 터일까? 한국에 돌아온 내 마음 속에도 키르기즈스탄 그 땅에서 받은 사랑이 자리잡는다. 무더운 여름 날 버스에서 부딪히는 사람들 속에서도, 바쁜 일상 속 길을 물어보시는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대답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여유가 흐른다. 누군가에게 값 없이 받은 사랑은 또 누군가에게 이렇게 흐를 수 있는 것일까?

   이번 여행을 통해서 배운 지식은 없었다. 잠깐 방문해봄직한 실크로드 지역 또한 가지 않았다. 키르기즈스탄에서 꼭 사야하는 쇼핑 리스트를 챙기지도 않았다. 무엇을 가지려고도,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이 곳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나누기 위해 갔을 뿐인데 그 어떤 여행들보다 내 안에 채워지는 충족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물질에서 얻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아닌, 내가 지향하는 삶의 최우선가치를 조금은 실천했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일까?

   이번 여행을 통해 느꼈던, 타인과 나눌 때 오롯이 느낄 수 행복감과 내면의 충족감을 잊지 않길! 먼 키르기즈스탄에서만 나누는 삶이 아닌 지금 이 곳 대한민국에서도 나눌 수 있는 삶이 되길 다짐해본다. 설령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혹 다시 일을 시작해 평범한 회사원이 되더라도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이라는 내 인생 최우선순위를 놓지 않는 삶이 되길 기도해본다. 나의 생명을 다하는 그 때 '내 삶은 여차저차 했지만 내가 추구했전 그 삶의 방향성은 놓지 않았기에 나름 괜찮았다'고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따라 그 확트인 키르기즈스탄 산등성이의 모습이 더욱 그립다.

키르기즈스탄 산지의 모습 - 끝없이 펼처진 언덕에 사람들과 어울려 말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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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르기즈스탄 여행은 현지인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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