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 또, 또, 잔소리야...!!!'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갔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엄마 이야기를 듣기 싫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잔소리가 이제 머리 큰 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화살처럼 내 귀에 꽂힌다. 귀에서 멈추면 좋으련만 꼭 내 마음 저 깊은 곳까지 날아가서 엄마에 대한 미움을 심어놓는다. 어릴 때 나를 혼내던 무서운 엄마의 목소리, 그때는 벌벌 떨었다. 이제는 무시하기 딱 좋은 쓸데없는 말로만 들린다.
내 계획이 먹힌 걸까? 엄마는 나를 향한 잔소리를 멈추셨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엄마의 울음소리. 엄마는 화를 넘어 인생의 가장 아팠던 때로 돌아가 통곡하신다. 난 내가 이긴 것 같은 통쾌함과 엄마 속을 썩인 죄인 같은 묘한 감정에 방문을 열 수가 없었다.
'.......'
엄마는 창백한 얼굴로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다. 하루, 이틀, 삼일...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나는 이긴 기쁨은 다 토해내고 완전한 패배자가 되었다. 그저 불효 막심한 딸이었다. 죄인의 칼을 찬 것 마냥 어깨와 목이 쳐지고 곁눈질로 엄마의 상태만 살폈다. 잔소리하는 엄마는 싫지만, 우리 엄마가 비참해지는 것은 더 싫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와 엄마는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걸까?'
'왜 엄마는 꼭 저렇게 말 해야만 하는걸까?'
'우리 엄마가 우아하고 고상한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갓 갈은 칼날 보다 더 날이 선 짜증스런 말투와 하도 찌푸려서 생긴 미간의 팔자 주름, 난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엄마와 싸울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들리지도 않는다. 그냥 그 모습과 소리에 난 방어적으로 두 귀를 막듯 마음을 닫았다. 그래도 우리 엄마라서 마음 한 켠의 문을 스리슬쩍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게 된다. 너무 무너지는 엄마의 모습에 미안하긴 한데, 인정하긴 싫었다. 내가 지고 들어가는 게 싫었다. 나도 내 논리가 있고 엄마가 항상 옳은건 아니니까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냉냉한 시간만 축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곧 엄마도 마음을 추스리시고 괜찮아질테니 조금만 참자. 불편해도 어쩔 수 없지.'
밥 혼자 차려먹고 빨래도 눈치봐가며 내놓고 웬만해서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래도 마주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니, 뭐라도 말을 해야하겠다 싶으면 뻘쭘하게 사과랍시고 말을 건다.
"엄마..., 엄마 미안해."
"됐어.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고, 넌 니 인생 알아서 잘 살아."
엄마의 얼굴은 아직도 창백하다. 엄마는 그렇게 내 사과도 받지 않으시고 일주일간 혼자 우셨다. 자식 키워봤자 소용 없다며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으로 아픈 시간들을 되내이셨다.
"너한테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 했잖아. 오빠 낳고 3일만에 반지하 집에 물 들어와서 퍼나르느라 몸은 다 상하고, 너 낳을 때 아빠 바람피고 몸조리 못 해서 엄마 갱년기 때까지 하혈했어.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데....! 너무 몸이 안 좋아서 한의원 가보니까 90대 노인 맥이라고 집에서 무조건 쉬하고 했는데도 너네 밥해 먹이고 집안 살림 다 하면서 살았는데...., 흐....흐......흑..... 엉....허억....."
'엄마는 싸우면 꼭 저렇게 오버한다니깐, 아빠가 속 썩인거를 왜 나한테 그러냐고.....'
며칠이 더 지나서야 엄마는 속에서 곪은 상처가 터졌다. 엄마는 나와 싸울 때면 꼭 과거 이야기를 하신다. 엄마의 인생이 너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내가 엄마와 안 맞는게 있을 때 무조건 뒤로 물러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의 인생이 얼마나 아팠는지 그걸 나한테만은 털어놔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20대 초반의 난 그렇게 엄마와 매일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