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뒤에 숨겨진 엄마를 발견하는 시간. 나 혹은 내 아내의 이야기.
"여보, 다녀와요....."
월요일 아침, 부랴부랴 준비해서 출근하는 남편에게 그 말을 남기고 난 침대에 한참을 누워있어야 했다. 나도 출근을 해야 하지만 입덧이라는 처음 겪어보는 말썽쟁이가 내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 말썽쟁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몸은 침대 밑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하고, 머리는 전원 on/off를 계속 껐다 켰다 하고, 속은 뒤집어진 정도가 아니라 2m 파고를 삼킨 듯하다.
그렇다, 난 지금 임신 9주 차 예비 엄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이라고 하기엔 이 말썽쟁이가 너무 과하다. 내 일상생활이 다 무너졌고 아이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태교? 그게 뭐야? 먹는 건가?' 먹는 거라면 모든 사양이다. 위에서 '절대 반입 불가'라고 팻말을 내걸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낮은 신음 소리뿐이라니. 출근을 해야 했기에 네 발로 겨우 욕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곧 물줄기 아래에 누워서 통곡했다. 너무 현실이 가혹하고 힘들다. 임신이라는 게 이런 거인 줄 알았다면 난 아이를 안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내 배 속에서 콩알만 하게 크고 있는 아기한테 나쁜 영향이 가는 건 아닐까 싶어 머릿속에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안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기한테는 미안하니까.
"여보세요, 어 이 과장."
"아, 팀장님... 죄송한데요, 저 오늘 출근을... 못 하겠어요."
통화음 소리로 힘든 얼굴을 내민다.
"그렇게 힘들어? 그래, 그럼 쉬어."
"네, 죄송해요...."
왜 임신한 사람은 약자가 되어야 하고 항상 미안한 상태가 되어야 할까.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덩치 큰 잉여인간의 느낌이다. 높은 자신감과 자존감은 다 배설해버린 걸까? 내 안에 남은 것은 콩알만큼 작은 알 수 없는 생명체뿐이다. 이 낯선 생명체를 내 몸에서 열 달 동안 키워야 한다. 난 사실 기쁨보다 무섭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기가 생겼다.
오후가 돼서야 컨디션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침대 속으로 파고드는 몸을 겨우 일으켜 나갈 채비를 했다. 병원에 가서 입덧 약을 받아야 했다. 그것만이 내가 살 유일한 길이였다. 택시는 깨끗해 보였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 상태가 안 좋으니 냄새는 하구수 냄새보다 진하고 방지턱은 롤러코스터보다 가파르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난 거의 좀비 수준이었다.
- 띵동 -
"이수주님 들어오세요."
"약을 처방받고 싶어요."
"입덧이 너무 심하시네요,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그런데 약이 입덧을 완전히 가라앉히지는 못 해요."
"식사는 얼마나 하셨어요?"
"물이랑 포카리스웨트 마시고 있어요, 먹는 건 일주일 동안 못 먹었고요."
사실 난 일주일이 아니라 열흘도 넘게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없었다. 시간의 개념도 희미해져서 일주일인지 열흘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 말썽쟁이는 레벨이 최고 수준이라 의사도 나를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일단 수액을 맞고 가시는 게 어떠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주사실로 안내를 받고 내려갔다. 그런데 주사실 앞에서 안내하던 간호사에게 말할 틈도 없이 돌아서 뛰쳐나갔다. 주사실 냄새를 감당할 수 없었다. 약 냄새가 이 말썽쟁이를 또 건드린 탓이다. 병원 앞 그 넓은 회전문 앞에 쪼그려 앉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리고 약만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약만 먹으면 괜찮을 거야!'
나에게 유일한 희망은 이 작은 약 한 알 뿐이었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단잠을 잘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지쳤는지 잠이 금세 들었다.
이 말썽쟁이는 약까지 챙겨 먹고 편하게 누워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보란 듯이 내 몸을 침대 밑 소용돌이.... 아니, 블랙홀로 끌어당겼다. 정신이 들면서 눈을 떴지만,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 마냥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하염없이 울었다.
'부작용인가...., 혹시 아기한테 안 좋은 영향이 가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말썽쟁이를 피해보려 나름의 요식을 부리다가 더 큰 두려움에 맞닥뜨렸다.
아기를 갖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아기가 내 몸에 생겼을 때부터 '내 아기'라는 인식을 가졌다. 그냥 생겼다고 해야 맞는 것 같다. 입덧이 너무 괴로워 이대로 내 몸이 없어졌으면 하다가도 번쩍 아기가 내 몸에 있다는 것이 떠올라 이러면 안 되지 했다. 다른 사람들은 힘들게 갖는다는데 나는 정말 못돼먹었구나 자책하는 날도 많았다. 남편도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만 그뿐이다. 물 한 모금 간절해서 마시고 닦아 놓지 않은 물컵이 신경 쓰이는 눈치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사투로 외로웠다.
되내어보면 9주 동안 난 그냥 임산부일 뿐 엄마가 아녔을지도 모른다. 난 '내 아기'가 가진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했으나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어떻게 대했지? 그 순간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오롯이 내가 감당하자. 엄마가 되자.'
드디어 마음을 비웠다. 진짜 엄마가 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