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치료제 엄마 밥, 엄마와 딸이 만나면 생기는 일.
19주 차,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말썽쟁이가 슬슬 길들여졌다. 호기롭게 내 몸을 호령하던 시간은 어느덧 지나가고 냄새에도 관대해졌다. 아직까지 밥 냄새는 밀어내지만 과일이나 간단한 간식은 허용해주더라.
며칠 만에 친정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참 오래도 간다며 유난스럽다고 하신다. 따뜻한 위로의 말이 아닌 쓰디쓴 말을 퉁명스럽게 툭 내뱉으신다.
"남들은 16주면 입덧 끝난다는데, 아직이야?"
"엄마, 나도 힘들어. 언제 끝나는 거냐고. 에휴...."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제일 힘든 사람은 나인데 핀잔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해 못하고 이렇게 바라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남편도 이제 지쳤는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이 너저분하면 한마디 한다.
- 툭 툭 툭 -
"누구세요?"
"엄마야, 문 열어."
"엄마?"
- 드르륵 특 -
"엄마 어떻게 왔어?"
"너 밥해주러 왔다. 방에 들어가 있어, 냄새 맡으면 물려서 이따 밥 못 먹어."
"어... 응."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뭐가 정확히 고맙고 미안한지도 모르겠다. 그냥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난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강제 격리를 당했다.
"수주, 자니?"
"어, 아니요."
"밥 다 됐어, 나와서 한 숟가락 먹어봐."
"네, 나갈게요."
웬일인지 내 몸도 바로 일으켜졌다. 식탁 위에는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마늘종 볶음, 오이 초무침, 소고기 미역국, 갈비찜 그리고 갓 담근 겉절이가 있었다.
"뭐야, 9첩 반상 차리는 줄 알았더니. 국까지 겨우 5개네."
"앉아봐, 냄새 물리기 전에 얼른 한입 먹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반찬이 가득한 밥상이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서운했던 마음은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다 풀렸는데 뇌는 아직 갚을 빚이 있다고 여기나 보다. 쌜쭉한 얼굴로 앉아서 어릴 적 도시락 반찬으로 가장 좋아하던 마늘종 볶음을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입으로 먹어서 그런지 입이 먼저 반응을 했다.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말도 부드러워졌다.
"어때? 먹을만해?"
"응 괜찮네. 입맛이 도는 거 같아."
"다행이다. 이럴 때 많이 먹어둬야 해. 어여 먹어."
어릴 적 엄마가 마늘종 볶음을 하면 마늘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마늘종 색깔이 초록색이어야 먹음직스럽다며 기름에 잘 볶아진 마늘종을 프라이팬 채로 불 없는 곳으로 옮겨 놓으셨다. 그러면 난 제일 단단해 보이는 마늘종 하나를 씹어보고 뻐신 줄기가 느껴지면 꼭 뚜껑을 찾아 다시 덮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 푹 익어서 초록색은 바래고 누리끼리 해지는데, 난 그것을 좋아했다. 색깔보다 중요한 것이 식감이었기 때문이다. 아삭한 식감이 아니라 입안에서 기름에 미끄러지듯이 뭉개지는 식감이 좋았다. 엄마는 내가 할머니 입맛이라며 이도 튼튼한 애가 왜 이렇게 뭉근한 것을 좋아하냐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도시락에 친구들은 햄, 소시지 같은 반찬을 자주 싸왔다. 사실 우리 어릴 때 이런 반찬은 친구들이 부러워하면서 입맛을 다시는 인기 최고의 반찬이었다. 하지만 내 도시락에는 그런 건 일 년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것보다 마늘종 볶음, 고구마 줄거리 볶음, 장아찌와 젓갈류도 종종 싸갔다. 엄마의 건강식 사랑도 한몫했겠지만 나도 가공품보다 나물 반찬을 좋아했던 탓이다.
과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감, 복숭아, 자두처럼 단단하기가 다른 종이 있는 과일들은 단단한 육질보다 물컹하니 입 안에 과일 국물이 가득한 것이 좋았다. 홍시를 먹을 때면 껍질을 깐다고 양 손 축축이 묻히고, 복숭아는 손뿐만 아니라 국물이 팔꿈치까지 흘러내렸다. 팔을 간지럽히며 흘러가는 국물을 혀로 핥아먹곤 했다.
'과일이 국도 아닌데 국물이라니! 풋.'
엄마가 늘상 과즙을 과일 국물이라고 표현하셨다. 어릴 때는 하나도 안 이상했던 게 왜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우스운 건지. 이제 이 표현이 친근해서 쉬이 고쳐지지도 않는다.
"오이 무침에 오징어는 없어?"
"오징어는 못 샀어, 그냥 먹어."
오이 초무침도 너무 좋아하는 반찬이다. 입덧으로 새콤한 것이 당기는 터라 갈비를 제치고 오이에 젓가락이 먼저 갔다.
"음!, 이거 너무 맛있네, 새콤 달콤하니. 잘 무쳤다."
엄마는 말없이 옅게 미소를 보이셨다. 맛있다는 한정식 집에서 먹는 것보다 엄마의 초무침이 내 입에는 딱 맞다. 시다 시다 이렇게 신 건 먹어보지 못했다고 하리만큼 톡 쏘는 엄마표 사과식초와 씁쓰리한 향이 안개처럼 옅게 퍼지는 봄철 고들빼기가 오이와 무의 감칠맛을 더했다. 먹고 나면 군침이 더 도는 이 반찬은 아스슥 오이 따로 오득 도득 무 따로 한 입씩 먹어보고, 또 같이도 먹어봐야 한다. 꼬득한 고들빼기까지 더해서 먹어보면 다양한 식감에 재미까지 있다. 입맛 돋우는 최고의 애피타이저이다.
드디어 갈비찜 살코기 한 덩어리를 크게 입에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짭조름하니 고기를 씹을수록 은근히 느껴지는 달달한 양념의 맛. 뭐를 넣었을까. 고기가 결대로 부서지면서 한입 가득 고기를 씹는 맛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고기 옆 겉절이에 눈이 간다. 엄마가 나 시집가고 귀농하신다며 시골로 이사 가셨다. 여름 내내 땀 흘리고 허리며 무릎까지 한의원에서 침 맞으면서 키운 고추. 그 귀하디 귀한 고춧가루로 새빨갛게 무쳐낸 겉절이는 발그레하니 참 곱다. 그런데 잘 손이 안 간다. 입덧하면서 밥 냄새에 이어 제일 속을 뒤집어 놓았던 게 김치라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렇게 겉절이는 손도 안 대고 밥과 국, 다른 반찬들만 싹싹 비웠다.
'지금 내가 이거 다 먹은 거야?'
얼마 만에 느껴보는 배부름인지. 얼마 만에 음식을 맛있다고 느꼈는지. 너무 새로웠다. 이제 말썽쟁이는 나에게 꽤나 순종적인가 보다. 엄마 밥은 입덧을 치료하는데 약 보다 효과가 더 좋았다. 심지어 부작용도 없으니, 이렇게 안정적인 입덧 치료제가 또 있을까.
"들어가 쉬어, 엄마 이거 치워놓고 갈 테니까."
"어? 멀리서 오셨는데 하루 자고 가요."
"아니야, 조서방 불편해."
"내가 미리 말해놓을게. 걱정하지 마."
"나도 빨리 가서 닭이랑 개 밥 줘야 해. 너만 내 자식이 아니야."
'거참. 닭이랑 개를 나랑 비교하는 거야? 엄마는 꼭 이런 말로 산통을 깬다니깐.'
엄마가 오셔서 밥 차려주신 게 너무 좋았다. 먼 길이라 미안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진짜 내가 존중받고 사랑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닭이랑 개라니...!' 물론 한편으로는 딸자식 내외 불편하지 않게 사양하시느라 하신 말씀이신 것은 알겠으나, 닭이랑 개를 언급하시면서 진짜 자식인 나랑 동급 취급하시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정말 우리 엄마 말을 고상하게 못 하신다.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는데 엄마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설거지까지 후딱 마치시고 나가신다.
"엄마 갈게, 쉬어."
"응, 고마워요 엄마."
난 그렇게 엄마를 보내드렸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냐며 안부도 한번 못 물었다. 그러고 보니 밥도 나 혼자 먹었다. 식사 같이 하시자고 왜 묻질 않았는지..., 나도 참 무심한 딸이다. 드시고 오셨다고 해도 가시는 길에 허기지실 텐데..., 이제야 걱정을 한다. 가만 보면 나도 엄마를 닮긴 닮았나 보다. 하필 이런 걸 닮았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