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 딸이어서 미안해요 - 보내지 못한 메시지.
"여보, 나왔어."
"어, 왔어요? 고생했어요."
"장모님 잘 다녀 가셨어?"
"어. 어떻게 알았어? 나 그러고 보니 다녀가셨다고 이야기도 안 했네."
"장모님이 며칠 전에 전화하셨었어, 요즘 뭐 먹고 싶어 하는 거 없냐고. 한번 오시겠다고."
"그래? 엄마가?"
"응, 오늘도 오시는 길에 잠깐 다녀갈 거라고 카톡 보내셨던데?"
"엄마가?"
"응."
엄마가 내 생각을 하긴 했나 싶어 괜히 마음이 간지럽다. 분명 좋은데. 왜 난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못 믿겠다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지.
"그래서 뭐 먹고 싶어 한다고 했는데?"
"뭐 먹고 싶어 하는 게 없잖아 자기는. 그래서 그냥 입덧에 어릴 때 잘 먹던 거 해주면 좀 먹는다고 하더라..... 뭐 이랬지."
"아! 김치는 못 먹는다고, 젓갈 냄새 싫어한다고는 했어."
"그랬어? 어.... 잘했네."
'그런데 왜 김치는 새로 해서 가져오신 거야? 괜한 고생만 하셨네.'
"와, 이거 다 장모님이 해오신 거야?"
"어? 뭐가?"
그제야 냉장고 안에 뭐가 들었나 기웃거리며 쳐다봤다. 입덧으로 냉장고 문을 열기만 해도 괴로웠으니 냉장고와 멀리 지내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냉장고 안에는 뭔지 모를 큰 김치통이 두 개나 있었고 반투명한 대형 타카 통에는 낮에 먹은 오이 초무침과 마늘종 볶음이 보였다. 이 많은 걸 엄마가 다 들고 오셨었나. 난 사실 엄마의 손에 뭐가 들렸는지 보지도 못했다. 볼 겨를도 없이 방으로 떠밀려 들어갔었다. 속이 뭔가가 느글느글해지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냄새 탓이었을까? 반찬 뚜껑을 열어보는 남편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낮에 음식을 너무 잘 먹은 탓인가? 밤에 잠들지 못하고 애꿎은 배게만 비비적거렸다. 속은 편안한데 오랜만에 밥을 많이 먹어서 몸이 낯설게 반응하나 싶다. 누워있는 것도 힘들지 싶어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방문을 열면서부터 자꾸 시선이 가는 냉장고. 소파로 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내 발은 내 몸을 냉장고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손은 왜 또 냉장고 문을 열고 있는지.
냉장고 안에는 90년대에 유행하던 푸르뎅뎅한 김치통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민트색도 아니고 청록색이라고 하기에도 좀 아닌 것 같고, 여하튼 요즘 보기 드문 골동품이다. 타카 통도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색이 누리끼리하고 뚜껑에 붙은 스티커는 한쪽 귀퉁이가 말려있다. 엄마의 반찬통을 다 꺼내서 하나씩 열어봤다. 대체 이 큰 김치통에는 뭐가 들었나.
첫 김치통 안에는 갈비찜이 한가득 있었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해 오셨는지. 우리 엄마는 손이 너무 커서 문제다. 냉장고에서 차갑게 굳은 고기는 낮처럼 달짝지근한 향이 나지는 않았지만 짭조름한 향이 올라오면서 사알짝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나는 듯했다.
두 번째 김치통 안에는 낮에 손도 안 댄 겉절이가 새빨간 자태 그대로 담겨있었다. 보기에도 참 맛있어 보이는데 아직 김치는 먹기 이르지 싶다. 그대로 겉절이는 뚜껑을 다시 닫았다.
타카 통에서 오이 초무침과 마늘종 볶음을 하나씩 꺼내 입 안에서 우물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남편한테 카톡 보내셨다고 했지?'
엄마가 남편한테 뭐라고 보내셨을지 궁금해졌다. 남편과 나는 카톡 비밀번호도 공유하는 터라 휴대폰을 방에서 꺼내와 소파에 앉았다. '장모님'의 프로필 사진엔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옆으로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조심히 올라가세요 장모님~!'이란 글귀가 보였다. 딸인 나도 정작 엄마의 식사를 묻지 않았는데 남편이라도 여쭤봐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못난 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다.
장모님 : 조서방, 오늘 오후에 수주한테 잠깐 들렸다 갈게
남편 : 네~ 장모님. 수주랑 좋은 시간 보내세요~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 주무시고 가셔도 좋고요.
장모님 : 아니야, 집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금방 내려와야 해. 일 봐.
남편 : 네, 장모님.
장모님 : 수주 보고 나오는 길이야. 집에 반찬 조금 넣어 뒀으니까 이따 저녁때 챙겨 먹어. 수주가 잘 못 챙겨주는 거 같아서 미안하네.
남편 : 아닙니다. 반찬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장모님 : 저번에 홍시 결제해준 거 고마워. 내가 티브이 뒤에 봉투 뒀어.
남편 :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수주 먹인다고 사신 건데요....
'어? 엄마가 홍시를? 나 먹으라고 사신 거면 우리 집으로 배송하면 되지, 왜 무겁게 들고 오셨을까?'
난 이때만 해도 엄마가 홍시를 냉장고에 넣어 두셨다고 생각했다.
장모님 : 김치 냄새 싫어한다고 해서 젓갈 안 넣고 수주 좋아하는 홍시 많이 넣어 겉절이 무쳤는데 수주는 아직 못 먹나 보더라고. 달아서 조서방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억지로 먹지 말고 맛없으면 그냥 둬. 내가 다음에 와서 가져갈게.
남편 : 아니에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장모님 : 부담 갖지 마, 맛없으면 닭이랑 개 주면 돼.
‘그놈에 닭이랑 개는 여기서 또 나오네.’
닭과 개가 죄 없는 건 알지만 난 뭔가 탓할 거리가 필요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자꾸 먹먹해지고 속에서 꿈틀대는 것이 느껴져서 외면하고 싶었다. 그런데..., 눈으로 복숭아를 먹었나? 내 볼을 간지럽히며 뜨거운 국물이 조르륵 코끝으로 모아져 휴대폰으로 떨어졌다.
'평소 어려워하는 사위한테까지 부탁해서 홍시 사다가 겉절이를 무치셨는데..., 그 땡볕 아래 땀에 찌들게 일하시면서 키운 금춧가루로 만든 겉절이를 왜 버린다는 거야!'
화가 났다. 심장이 빠르게 펌프질 하면서 눈물샘에 뜨거운 것이 계속 샘솟았다. 엄마는 딸을 걱정하시면서 왜 그렇게 말은 서운하게 하시는 건지. 말만 따뜻하게 하셨어도 엄마 오셨을 때 그렇게 보내드리지 않았을 텐데. 엄마의 말투가 밉기만 했다.
'엄마.... 미안해....'
사실 내가 미웠다. 먼 길 고생스러운데 우리 집까지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엄마 마음을 알아드렸어야 했다. 우리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난 아직도 엄마의 울타리 한쪽 구석에 걸터앉아 있는 건가. 나도 이제 어른이라며 갖은 허세로 엄마를 이겨먹으려고만 했다. 내 엄마인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엄마한테 나는 왜 이렇게 못난 딸일까.
내 휴대폰을 가져왔다. 카톡을 열어 무심하게 저장되어 있는 이름, '엄마'에게 메시지를 썼다.
'내가 엄마 딸이어서 미안해요.'
메시지는 엄마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이렇게 엄마한테 쓰기만 하고 보내지 못한 말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도 하나 더 추가했구나. 이 밤에 김치 겉절이를 밥도 없이 눈물에 말아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