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닮은 너를 내 품에 안았다.

몸무게 4.2kg. 손가락 5개 정상. 발가락 5개 정상 - 아기의 때

by 서효범

"아기가 엄마 뱃속이 너무 좋은가 봐요, 안 내려오네요."

"자연분만 못하는 거예요?

"골반도 좋고 양수도 충분해서 조금 커도 괜찮을 것 같아요. 산모님 의지에 달렸어요. 일주일 더 기다려볼까요?"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기의 예정일이었다. 9개월까지는 평균보다 크지 않았는데, 막달이 되면서 폭풍성장을 했다. 이미 예측치가 3.5KG라는데....


'아기야 언제 나오니? 이제 엄마 얼굴 좀 보여줘.'


아기는 정말 엄마의 뱃속이 좋은 건지 아니면 세상에 나오기에 너무 두려운 건지 알 수 없다. 긴 입덧으로 아기한테 좋은 것보다 힘든 것을 많이 보여준 탓에 뱃속에 숨고 싶은 건 아닌지, 내려오지 않는 아기를 두고 복잡한 생각이 든다. 작고 여린 아기가 감당하기에 벅차서 나오기 싫어하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세상을 마주하고 단단한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기에게 말을 걸어본다.


"아기야, 괜찮아. 엄마가 우리 아기 지켜줄 거야."

- 태동 -

"옳지! 그래, 나오면 엄마가 세상에 아름다운 것도 많이 보여줄게. 사랑해."


아기는 엄마와 태동으로 대화한다. 분명 내 말을 듣고 있다. 하지만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아닌가 보다. 누굴 닮았는지... '풋, 나겠지 뭐.'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고 싶었는데, 우리 아기는 작게 나오기는 이미 글렀구나.


'그래, 그냥 널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게. 나오고 싶을 때 나오렴.'


아기는 너무 편안했는지 일주일이 지나고도 나오질 않았고 결국 예정일보다 10일이나 지나서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다. 아직 나올 준비가 안되었는데 억지로 나오라고 하는 건 아닌지 아기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엄마의 뱃속보다 바깥세상에서 커야 할 시기가 되었기에 더 늦출 수 없었다.

첫아기라 유도분만은 보통 2박 3일이 걸린다고 하더라. 분만할 경우를 대비해서 짐을 넉넉히 쌌다. 아기한테 이제는 정말 나와야 한다고 재촉을 하면서 병원으로 갔다. 가는 길에 제발 진통이 오길 바라면서.


"아기가 3.8kg이 나오네요.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네,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자연 분만하고 싶어요."


첫아기라서 그런지 자연분만에 욕심이 났다. 아기에게도 산모에게도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수술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기에 제왕절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컸다.


유도분만은 산모 입장에서는 링거를 맞으면서 기다리는 일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작은 공간, 작은 침대에 누워서 링거를 맞으며 진통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이제 아기가 정말 빨리 나와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엄마의 진심이 통한 걸까? 아기는 다행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 아.. 아악아........... 하아 하아......"

"나... 무통주사 맞을래...."


척추에 링거를 꽂는 주사라는 말을 듣고 너무 겁이 나서 무통주사를 안 맞겠다고 간호사에게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남편을 붙잡고 실신 직전에 간곡하게 부탁했다. 주사가 너무 무섭지만 그 보다 더한 고통이 출산의 고통이라. 아... 견딜 수가 없었다.

12시간이 지났지만 자궁문은 아직 4~5cm에 멈춰있었다. 병원에서 걷고 짐볼도 타고 아기에게 빨리 나와서 엄마 얼굴 보자며 설득도 하고..., 긴 시간 동안 또 버텨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취업인 줄 알았는데 출산이 더 하더라. 그렇게 24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진통을 겪으며 그리고 무통주사를 맞으며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아기는 바깥세상을 궁금해했다.


"산모님, 배에 힘주셔야 해요! 온몸에 힘을 주지 말고 배에 힘을 주세요!"

"아아으으으.....!"

'힘이 없어서 못 주는 거라고요....'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일까. 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배에 힘을 주었지만 스스로도 기운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배에 힘이 가기 위해서는 온 몸을 쥐어짜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쥐어짰는지 내 목에서는 50대 아저씨의 굵은 저음이 튀어나오더라. 남편은 마치 소리가 기운 빠진 헐크 같았다고. 힘주고 기절하고의 반복이었다.


'이러다... 제왕절개 해야 하는 거 아냐?'

'아냐! 그냥 제왕절개 해달라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이제 모든 게 포기 상태이다. 자연분만이 괜한 욕심이었다 싶어 서러웠다. 도저히 힘을 줄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의사에게 내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눈물도 안 나오더라. 내 몸의 근육이 다 빠져나가고 연체동물이 된 느낌이었다.

그러다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모님이 힘이 부족하신 거 같아요, 배 이쪽에서 이 방향으로 밀어주세요. 김 간호사님이 이쪽에서요."

"네."

"네."

'날 도와준다고? 왜 이제야 도와주는 거야.... 진작 밀어주지...!'


"산모님, 이제 다시 한번 힘줄 텐데 간호사님 두 분이 배를 밀으실 거예요."

"지금이에요! 힘주세요!"

'아이유의 으윽..........'


느껴졌다! 아기가 나오는구나! 아래로 아주 뜨겁고 큰 덩어리가 나가는 느낌이었다. 아기의 머리였다.


'아... 시원해.... 이제 끝난 건가?'

"산모님! 잘하셨어요. 이제 마지막 한 번만 더 힘주시면 돼요! 쉬시면 안 돼요!"

'....!'

"응애응애 응애 - 응애 - 응애"


난 그대로 기절을 했다. 눈꺼풀 하나 들어 올릴 기운이 없었다. 그저 소리로 아기가 태어났고 아빠가 탯줄을 잘랐고....


"아우~! 아기가 다 커서 나왔네요."


의사 선생님의 말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우리 아기가 크구나. 하긴 나도 4.2kg으로 태어났는데 뭐.


"아기 몸무게 4.2kg입니다. 손가락 5개, 5개 정상. 발가락 5개, 5개 정상."

'4.2kg이라고? 너 엄마 닮았구나!'


그랬다. 아기와 난 임신 초기부터 닮은 것이 매우 많았다. 태어날 때 몸무게까지 닮을 줄이야!






우리 엄마는 임신 초기에 아기가 생겼는지 모르시고 피부과 약을 드셨다. 약 중에 가장 독한 약이 피부과 약이라는데....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결정하라고 했단다. 기형아가 나올 확률이 50%라고. 크리스천이었던 엄마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교회에서 울며불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당시 아빠도 겁을 먹고 의사 말을 듣자고 하셨단다. 아빠도 외면하는 아기. 다행히 엄마는 마음을 더 강하게 붙잡으셨다. 콩알만 한 나는 엄마의 울음 섞인 기도소리를 들으며 뱃속에서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엄마도 너무 겁이 났어. 아빠도 그렇게 말하는데. 혼자서 모든 화살을 받아내며 기형아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지."

"그런데 널 지우질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매달렸어.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어."


엄마는 담담하게 이야기하셨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셨다.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 홀로 감당해야만 했을 외로움과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안 간다. 심지어 2살 난 개구쟁이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 엄마로서 첫째 아이에게 느꼈을 모성애와 뱃속의 아기에게 느낄 연민은 엄마를 더 괴롭게 했을 것이다.


엄마는 꿈을 꾸셨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하나님이 엄마의 기도를 안타깝게 여기셨을 터. 엄마의 꿈에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단발머리 여의사 선생님이 나타나셨단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기는 건강해요."


엄마는 이 말을 듣고 꿈에서 깨셨다. 그리고 안도하셨단다. 엄마의 의지가 아니라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셨다고 했다. 그리고 막달이 되어서 서울 구의동에서 경기도 하남시로 이사를 하셨고 집 가까운 병원으로 산부인과를 옮기셨다. 그곳에서 나를 받으신 의사 선생님이 엄마의 꿈속에서 만난 그분이었다.


"처음 병원을 갔는데 꿈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인 거야. 너무 놀랐지! 그리고 안심했어. 널 건강하게 낳겠구나... 편안해지더라고"


난 예정일보다 10일이나 빨리 세상에 태어났다. 하지만 몸무게는 4.2kg으로 우량아였다. 예정일 채워서 태어났으면 정말 큰 일 났을뻔했다고 아직도 그 말씀을 하신다.


우연일까?


아기를 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했다. 한의원에서도 임신은 아닌 것 같다고 체한 것 같다며 약을 줬고, 자연히 양방 병원을 가서도 체한 거 같다며 약을 달라고 해서 10일을 더 먹었다. 그 사이 밥은 못 먹었고 심지어 해외 출장이 끼어있었다. 물과 포카리스웨트, 오직 정신력으로 버틴 시간. 병원에서 장시간 증세가 지속되는 것을 보고 혹시 모르니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임신소식. 반갑고 기쁜 마음보다 덜컥 어쩌나 싶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세 군데 가보고 아기에게 기형아일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물어보고.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요즘 산부인과 의사들은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주더라. 약으로 기형아가 태어날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여러 의사들의 공통적인 답변과 퀴드검사가 끝나고서야 조금 안심했다. 그냥 받아들이자. 어떤 모습이든 내 아기잖아.


집에서 근거리의 대형병원을 찾아봤다. 시설과 신뢰도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게 찾아간 강서구의 산부인과 전문 병원. 그런데 막달이 되어서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이사도 아니고.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눈 앞에 깜깜해졌다. 옛날 티브이에 방송시간이 끝나고 한참 지나면 블랙&화이트 점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화면을 가득 채웠다. 마치 그런 형태로 숨이 가빠지면서 눈 앞이 아예 안 보였다. 휴대폰을 더듬어 119에 신고를 했다.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


다행히 앞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호흡도 가라앉았다. 내 상태야 괜찮아 졌지만 아기는....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데 아기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내 생애 처음 느껴보는 공포감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가양대교를 건너야 했는데 퇴근 시간과 맞물려 차가 움직이질 않았다. 1분이 1시간으로 느껴졌다... 아니, 이건 정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긴 시간이었다. 평소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했을 시간인데, 50분에 걸려 도착했다. 다행히 응급으로 아기 상태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아기 심장은 정상적으로 잘 뛰고 있고 크기나 움직임도 정상으로 보여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야 쓰린 가슴을 훔쳤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아기가 그 상황을 잘 버텨줬다는 것에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병원을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예정일을 한 달도 안 남겨둔 상황이었다.


엄마와 내 출산 스토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4.2kg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모든 것이 맞춰졌다. 마치 퍼즐이 모아지는 것처럼. 아기는 4.2kg이 될 때까지 기다린 걸까? 자신이 나가야 할 태생적인 크기가 있었던 걸까? 엄마의 DNA를 물려받아서? 아니면 그냥 엄마가 좋아서 엄마를 따라 하고 싶었던 걸까?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아기가 건강하니 그것으로 됐다. 내 아기가 건강하니 그것으로 행복하고 감사했다.


"아기야, 사랑해.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기는 겨우 눈을 떠서 내 품에 안겼다. 내가 너의 엄마라고 나오느라고 너무 고생 많았다고 조심스레 안아줬다. 아기가 내 눈을 바라봤을 때 아기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아기의 때가 있는 거라고. 엄마가 보채서 미안해, 초보라서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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