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0
퇴사 그리고 또 다른 시작, 100일 전퇴사 그리고 또 다른 시작, 100일 전
2011년부터 직장생활을 했으니 약 12년 차 직장인이네요. 한 곳에만 머문 건 아니라 이직준비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11년은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몇십 년간 직장생활을 해오신 분들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천방지축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해 온 저에게 11년은 꽤 큰 숫자로 와닿습니다.
안타깝게도, 경제관념이 없던 지난날의 나로 인해 생계의 압박은 꾸준했었고, 다행스러운 건지 전문직인 탓에 취업이 너무나 잘되었지요.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확신의 INFP인 저는 몽상가적인 면모를 못 버리고, 이거 저거 부업한답시고 많이도 나댔습니다. 나름 조금씩의 성과는 있었지만, 지나친 기대와 조급함과 현실에 대한 갭 차이를 견디지 못해 접어버린 것들도 수두룩 합니다. 그게 아무 의미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제가 준비가 안되었던 거지요.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갈 준비 말입니다.
한 사람과의 6년에 걸친 연애 끝에 결혼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경제관념과 현실을 사는 것에 대해, 그는 저에게 도전의식과 내일 꿈꾸는 것에 대해 배웠지요. 그렇게 닮아가며 '미래에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리고 퇴사일을 정했습니다. 그게 이제 100일이 남았네요. 늘 같은 일을 해 온 저희 둘 이기에 새로운 일,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려고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한국을 떠날 계획입니다. 2년 전 신혼부부 할인을 받고 산 가전제품들, 설렘을 가득 안고 구입했던 가구들, 커플 PC방 꾸민다고 짝 맞춘 컴퓨터, 책상, 의자들 모두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에 놓고 갈 예정입니다.
지금의 저희는 물건을 가지는 것에 대한 의미, 집을 가지고 정착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고민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다 놓고, 떠나보면 다시 가지고 싶어질 날도 올 수도 있겠지요. 타지에서의 아픔이 고국에 대한 애정을 더 올려줄 수도 있겠지요. 모든 가능성을 경험해 보고 오려합니다.
모두가 꿈꾸는 세계여행을 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또 무모하진 못하네요. 신혼살림을 다 내려놓고 갈 정도의 과감함은 있지만 모아놓은 돈을 다 쓰면서 과감히 경험을 사는 무모함은 또 없는 그런 부부입니다. 저 아니었음 떠날 생각조차 못했는 거라는 그와 그 아니었음 그냥 몸뚱이 하나 믿고 떠났을 거라는 저, 서로가 있어서 균형이 맞춰지네요. 균형 맞춰본 결과 또 다른 시작을 할 나라는 바로 '베트남'입니다
글을 쓰며 사는 삶을 말입니다.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못했는데 지금에서야 된다고?', '퇴사하면 된다고?'라는 내 몸 깊이 새겨진 자기 의심 세포들이 날뛰는 걸 느낍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뻔뻔해져보려 합니다. '그때는 때가 아니었어~'라고 말이지요.
큰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D-100이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설렘과 두려움이 같이 솟구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솟구침이 제 가슴을 뛰게 하고, 이렇게 글을 쓰게 합니다. 저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첫 문단에서 언급한 온갖 뻘 짓 끝에 깨달은 것은 '난 무엇이든 할 수는 있지만, 내가 좋아해야지만 오래 할 수 있구나'였습니다. '꾸준히,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건 이유가 있구나'였습니다.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들이 성취가 있었음에도 질려버리고 놓아버린 이유는 '정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라서'라는 걸 최근에 읽은 책 [세상에서 가장하고 싶은 일을 찾는 법]을 통해 더 깊게 알아차렸습니다.
글을 써오지 않은 건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쓰지 않았을 뿐이지요. 일기장에 쓴 글을 나 자신이 만족한다고 해서 '작가'가 되지는 않으니 아쉽게도 작가가 되기 위해 나를 표현하기로 결심해 봅니다. 이 모든 게 큰 변화를 계획했기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앞으로의 글은 저라는 사람의 성장이야기이자 과거의 돌아보는 이야기 일 겁니다. 퇴사와 동시에 한국을 떠난다는 계획은 벌써부터 저에게 많은 생각과 감정을 던져줍니다. 아직 떠나기 전인데도 사람 하나, 물건 하나, 햇빛 하나, 풍경 하나에도 애틋함이 솟는 요즘입니다. 이런 소소한 심경변화에서 구체적인 준비과정 등 이야기가 될만한 것들을 다 가져와보려 합니다. 저도 저의 내일이 궁금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자극이,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안도가 되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