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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Nov 27. 2023

추억 가득 신혼집 떠나기

D-99

추억 가득 신혼집 떠나기, 99일 전 

월세살이 


    결혼하면서, 아니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대기업 TV가 아니라 중소기업 스마트 TV를 구입한 것, 세 번째는 더블침대가 아니라 싱글침대 2개를 구입한 것). 매매나 전세를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그러기엔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대출이나 빛을 내서라도 집을 가져야겠다'라는 욕구 자체가 없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위치에 내가 원하는 구조의 집이 아닌 이상, 그 돈을 주고 빛을 내고 거기에 강제적으로 정착해야 하는 생을 살기 싫었지요. 남들 다하는 데 우리라고 별수 있나... 싶다가도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제한된 선택지에 퉁퉁 대면서 이직까지 생각하면서 방법을 찾아 헤맸지요. 돈을 모으기보다 경험을 산 지난 나를 원망하기도 가끔씩 부모님을 원망하는 불효자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주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재테크라고는 저축 밖에 모르던 둘이었지요. 돈이 일하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그 생각은 월세살이로 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게 과연 맞나?'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굴려봐도 저희에게는 이점이 더 많았습니다. 빚을 지지 않아도 되며, 현재 가지고 있는 목돈으로 주식 투자가 가능하였고, 선택지가 훨씬 넓어졌지요. 


    개인차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희의 자금사정과 집에 대한 가치관과 경제관점이 '월세'에 더 적합했던 거지요. 그렇게 해서 2년 차 신혼이자, 월세살이 중입니다.  


우리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 

    

     처음으로 텅 빈 공간에 직접 고른 가전과 가구들을 배치하였지요. 엄마가 보내준 귀한 갓담은 김치도 순식간에 신김치가 되게 만드는 노리끼리한 냉장고에서 무광 베이지색 패널에 4도어 양문형 냉장고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빈티지가 테마가 되어버리게 하는 삐그덕 대는 침대에서 침대 헤드에 은은한 LED 3단 조명을 갖춘 화이트&우드톤에 원목 침대로, 주방 개수대 밑에 쏙 들어가 있는 자그마한 세탁기, 빨래 건조대 조합에서 쾌적한 베란다에 세로로 배치한 이불 빨래가 가능한 웅장한 세탁기와 건조기로 채워나갔습니다. 


     넓지 않지만 다정한 거실에 이케아에서 직접 고른 책상과 의자를 조립하고 나란히 줄지어놓아 커플 PC방도 꾸몄습니다. 그리고, 러그라는 걸 사서 깔아봤지요. 왜 그렇게 그게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제일 좋아하는 러그는 싱크대 밑에 베이컨과 계란후라이가 그려진 직사각형에 긴 러그입니다. 이건 떠날 때도 가져갈까 합니다. 현관문에 결혼사진도 자석으로 톡톡 붙여봤습니다. 둘이서 화이트&우드 테마를 정하고, 좁은 방이 조금은 더 커 보이게, 우리의 생활 동선에 맞게, 이거 저거 따져가면서, 이사 전 1달, 이사 후 1달 동안은 인테리어 구상하고 꾸미는 데 시간을 다 보냈던 거 같습니다. 힘든지도 몰랐지요. 이렇게 탄생한 우리만의 공간은 여전히 따스하고 포근합니다.  


    침대와 침대 사이의 두 사람이 딱 붙어 앉을만한 좁은 공간에서 TV를 보며, 밥을 먹는 걸 좋아합니다. 특히, 금요일 저녁을 먹으며 나는 솔로를 같이 보는 건 저희만의 불금을 보내는 루틴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말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게임을 하는 남편과 침대에서 늦잠을 자는 저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음에 매 주말 감사합니다. 거실 커플 PC방에서 가운데 과자를 놓고 디아블로를 하는 것도 좋지요. 침실은 늘 침대헤드 부위의 주황빛 LED등만 켜있습니다. 각자의 침대에서 같이 가운데 있는 TV를 통해 넷플릭스 드라마나 유튜브를 보다가 잘 시간이 다돼서 굿나잇뽀뽀를 위해 누가 넘어올 것인가, 가위바위보도 하기도 하지요. 


    모든 게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가끔 긴 여행이나 부모님 집에 다녀올 때면, 집에 돌아와서 말합니다. '역시, 집이 최고야'


이제는 안녕.


    쓰다 보니, 떠나기 싫어지네요. 떠나기 99일 전입니다. 이제는 당분간 안녕, 이라고 썼다가 지웠습니다. 혹여 나중에 돌아와서 이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머무르게 될 게 분명하니까요. 첫사랑을 그리워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뭔가 첫 신혼 집은 그리워질 것 같네요. 떠날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표를 미리 예매했을 때도, 이 글을 쓰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전과 가구를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고 있었죠. 제가 이렇게 이 집에 애정과 마음을 다했는지 이제 알게 되었네요. 

    

    사지 않았으니 내 집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2년간의 여기에 제 마음이 깃든 시간 동안은 내 집, 아니 내 공간, 우리의 소중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정확히 오후 3시-4시 사이에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햇빛도, 현관문을 나오면 보이는 프레임 속 계절을 품은 나무들도, 동네 산책은 도로가와 골목 구석구석과 아파트단지 길 뿐이지만 순서를 바꿔가며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던 우리 둘도 그리워질 예정입니다. 

    

    강제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어딘가에 정착할 날이 오겠지요. 그러면 정말 나의 집, 우리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고르고 공간을 꾸미고 싶습니다. 그리고 좀 더 바라자면 한편에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머물다 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네요. 그걸 꿈꾸며 그리움을 기꺼이 안고 떠나기로 다시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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