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보고 Nov 27. 2023

그래도 한국에 있는 게 좋다는
엄마를 뒤로 하기

D-98

그래도 한국에 있는 게 좋다는 엄마를 뒤로 하기, 98일 전

비밀은 없다. 


    동반 퇴사를 하고 한국 살림을 정리하고 떠난다는 건 우리 부부 둘만의 계획이자 비밀이었습니다. 올해 여름휴가에 베트남을 다녀오고 우리의 결정에 더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지만, 비밀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새어 나오더라고요. 과거형 어미에서도 느끼셨겠지만, 그렇습니다. 이제 둘만의 비밀이 아니라 셋만의 비밀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저, 그리고 저희 엄마까지입니다. 사실, 더이상 비밀이 아닌 거나 마찬가지긴 하지요. 밝혀야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퇴근하면서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엄마는 그날따라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냉장고가 드디어 수명이 다 되었는지 생사를 오가다 다시 살아나긴 했는데 바꾸긴 바꿔야겠다고 말입니다. 


"이제 정말 바꿀 때가 된 거지, 근데, 네 아빠가 몇 번 퉁퉁 두드리고 하니까 또 되더라. 아예 확 고장 나 버린지. 조만간 또 고장 나면 바꿔야 해. 진짜~" 


    그러면서 가전제품 매장에 갈 거라고 합니다. 일단, 먼저 봐둬야지 고장 나면 바로 바꾼다고 말이죠. 그래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림 정리하고 떠날 때, 냉장고는 저희 부모님 댁에 드리자고 남편과 상의하고 결정했었거든요. 


"엄마, 좀만 더 써봐. 버텨내야 해~ 그게 말이지..."


    이렇게 셋만의 비밀이 되어버렸지요. 사실, 아빠도 알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비밀이 아닌 비밀이네요. 그나저나 20년 동안 어떻게 버텨낸 걸까요?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게 좋아. 


    엄마의 반응은 '걱정, 걱정, 걱정'이었습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습니다. 좋은 직장 놔두고 거기 가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거기 안전하긴 한 거니, 살림은 다 어쩌고 그렇게 떠나니, 다시 안 돌아올 생각이니... 저의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모든 엄마들이 듣기 싫어하실 대답 '엄마, 내가 알아서 잘할게'. 엄마의 걱정 메들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어서 어떡하니. 자주 올 수 있는 거야?"


    마음이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눈물이 순식간에 차오르는데, 내색 않고 말했죠. 


"에이, 엄마. 여기 있어도 3개월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데 뭐"

"그래도, 한국에 같이 있다는 거랑 멀리 떠나 있는 건 다르지."

"다르긴 뭐가 달라~ 매주 통화하는 거 똑같을 거고, 오히려 더 오래 볼 수도 있고 좋을걸",

"그래도... 한국에 있는 게 좋아."


    마음이 주저앉은 이유는 엄마가 쓰지 않던 문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다'. 최근에 형사록이 보고 싶다고 디즈니 아이디 있냐고 물어보긴 했었지만, 저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보고 싶다'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자식들 생각이 더 나는 걸까, 아니면 참고 참아온 말인 걸까, 어느 쪽이든 먹먹함이 몰려와 통화를 끊고도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게 좋다는 말, 아마도 '더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라고 추측해 봅니다. 저와 엄마는 감정적으로 많이 얽혀 있던 탓에, 제가 온전히 독립해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호함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엄마를 모질게 대하기도 하면서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도 겪기도 했습니다.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립'을 핑계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늘 그렇듯 적응해 나가겠지만 ,



    엄마가 비밀을 알고부터는 대화주제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풍성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살림정리는 언제 어떻게 할 거냐, 언제 부모님께 이야기하려고 그러냐, 베트남 가는 비행기 값이 얼마냐, 등등. 이후 한두번은 '냉장고 안 줘도 되니까 가지 마'라고 툭툭 던지셨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냉장고 언제 주냐'로 바뀌셨습니다. 제가 꿈쩍도 안 할 걸 아신 겁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변화에 적응해 나갈 겁니다. 엄마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잘 때마다 눈물 흘리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남편이 그러더군요. 엄마를 좀 더 믿어보라고요. 믿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저도 엄마도 좀 더 편해진 상태로 각자의 삶을 살고 공유하게 된 거 같습니다. 


    늘 그렇듯 적응해 나가겠지만, 그리움이 사무치지 않게, 엄마의 입에서 '보고 싶다'는 말이 참다 참다 차올라 흘러나오지 않게, 그렇게 앞으로 어떤 계획을 짜든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부러 넣기로 다짐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추억 가득 신혼집 떠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