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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Nov 27. 2023

겨울이 없는 나라로 가기

D-97

절대 그립지 않을 것 중 하나 


    '겨울'이라는 계절입니다. 어떤 특정한 계절을 이렇게 싫어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겨울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꽁꽁 싸매고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가도 사이사이로 스며오는 차디찬 기운이 몸을 쪼그라들게 합니다. 가끔 이 움츠림이 자신이 너무 나약한 존재라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서 싫습니다. 특히나, 한파에 출퇴근할 때면 말이죠. 그러고 나서 실내에 들어가면 겹겹이 입은 옷들과 공간을 가득 휩쓰는 온풍기의 바람에 갑갑하고 바싹 마르는 느낌이 듭니다. 식후에 가볍게 하는 산책을 정말 좋아하는데 당분간 그 즐거움을 잠시 접어두어야 합니다. 과장일 수 있지만, 뭔가 자유를 빼앗긴 느낌이 들어 더 싫어지는 계절입니다. 물론, 군고구마, 귤, 붕어빵, 호떡, 호빵 등등 겨울 간식은 제가 참 좋아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싫습니다. 


겨울이 없는 곳은 어떨까 


    저희가 가려고 계획한 베트남 중부지방의 날씨는 연평균 27도 정도로 1월 평균온도는 20도, 7월 평균온도는 33도라고 합니다. 사계절 대신 1월부터 8월까지는 건기, 9월에서 12월까지 우기로 나뉩니다. 비가 하루종일 온다기보다 아침에는 맑다가도 오후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도 하는 스콜성 비가 많이 오지요. 비가 쏟아지다가 멈추고 오다가 멈추고를 자주 반복했던 기억이 있네요. 


    우선, 옷을 계절별로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경제적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이동할 때도 간편하고 말이죠. 대체적으로 온화한 온도가 주는 안정감이 있을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루틴을 수행하거나 일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일관된 환경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환절기마다 겪는 신체가 적응하느라 겪는 스트레스가 줄어들 테니 말이죠. (이건 저만의 행복회로임을 밝혀둡니다). 또 겨울 스포츠는 좋아하는 게 없지만 바다와 물놀이를 좋아하는 저희로서는 다양한 여름 스포츠를 1년 내내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겨울은 죄가 없다


    지금의 저는 겨울을 싫어하지만, 겨울만큼 낭만이 가득한 계절이 없긴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송년회'와 '새해'를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리고 뽀얗고 하얀 '눈', 이 눈송이들이 펑펑 쏟아지는 걸 볼 때면 신비롭기도 아름답기도 해서 꼭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눈이 온다며 창밖을 보라고 전화하게 됩니다. 밖은 시리게 추운데 집에서 따땃한 장판에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면서 만화책 보던 추억도 참 좋았습니다. 적다 보니 겨울은 죄가 없네요. 


      사실, '겨울이 싫다. 겨울이 없는 곳으로 떠난다니 설렌다'가 글의 주제였는데겨울이 싫어지게 만든 건 추위를 뚫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러 가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출퇴근할 직장이 있음에, 퇴근 후 돌아올 따스한 집이라는 공간이 있음에, 감기를 자주 걸리기는 하나 사지멀쩡한 몸뚱이가 있음에 감사할 줄 모르는 제 자신이 원인일 수도 있겠네요. 


    직장을 그만두고 겪는 겨울은 어떨까요? 이미 한국을 떠나버린 다음이라 그걸 언제 느끼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의 겨울을 온전히 즐기고 사랑하게 된다면 '일'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때는  한참 뒤의 일이니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지요. 불평불만 대신 감사함을 떠올리면서 언제 다시 느낄지 모르는 이 겨울을 즐겨볼까 합니다. 차갑다 못해 시린 느낌도 실외와 실내의 온도차이도 눈이 오면 눈송이 하나하나 살펴보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니 겨울의 추위는 제가 살아있음을 격렬하게 느끼게 하는 거 같습니다. 격렬히 살아있음을 느끼고 기꺼이 떠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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