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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Feb 06. 2024

하고 싶은 대로 해

D-24


이른 고백 


*이전 글 참고: 일 안하는 며느리


    지난주 금요일 시부모님이 건강검진 차 서울에 올라오셨습니다. 남편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무언가 결심한 듯 저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오신 김에 바로 말해버리자." 

    " 괜.. 괜.. 찮겠어? " 

    " 설날이나 이번주 금요일이나 1주일 차이인데 뭐. 그리고 빨리 말하고 훌훌 털고 싶어. 말씀드리기 전까지 계속 긴장한 상태로 지낼 거 같아." 

    " 그것도 그래... 그래! 말해버리자! 


    그렇게 해서 지난주 금요일 저녁, 식사 후 카페에서 조금 이른?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여태까지 봤던 모습 중에서 제일 차분하고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2월까지만 하고 그만둔다.', '베트남으로 떠난다.', '아이를 낳고 우리가 키우고 돌보고 싶다.', '한국에서는 조금 벅차다' 두발 전진을 위한 한발 후퇴로 생각해 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가만히 듣고 계신 시부모님의 표정과 행동을 조용히 살피고 있었지요. 아버님은 조용히 끄덕이셨고, 이야기 중간에 저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 너네하고 싶은 대로 해~ " 


    이게 뉘앙스라는 게 중요한 문장인데, 제가 느낀 바로는 저희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다 큰 리액션은 없었습니다. 놀람, 걱정, 불안 등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처음 말씀드리는 건데도 의연하게 받아들이시는 모습에 저희 부모님을 떠올리며 비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 극강의 T 집안인 건가... ' 


    어머님도 딱 한 말씀하셨습니다.


    " 언제 그런 계획을 다 했다니. 우리가 더 해줄 게 없으니, 둘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그래도 둘이 같이 가니까 안심이 되네. 잘 준비해서 다녀와" 


    그 이외에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농담식으로라도 '일 안하는 며느리' 라고 밉보이고 핀잔 받을 거라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이른 고백 이후 베트남 여행을 자주 다녀오신 아버님의 주도 하에 베트남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올해 여름휴가 겸 가족 여행은 베트남에서 진행될 듯합니다. 


    그날 자기 전, 각자의 침대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 자기야, 드디어 끝났네. 별말씀 없으시니 뭔가 묘하다. "

    " 그러게~ 여하튼 가기 전에 넘어야 할 산은 다 넘었잖아. 근데 나도 자기 말대로 뭔가 허무하달까? 그래. "

    "  다시 또 느낀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 알 수도 없고. " 

    "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엄마 아빠가 저렇게 심플하게 오케이 하실지는 몰랐어. 장모님, 장인어른 반응이랑 너무 다르긴 하더라. 우리 집안이 좀 더 현실적이긴 해. 부모님도 더 이상 해줄 게 없으니 각자 살 방법을 찾는 게 맞고, 그래도 해결책을 찾았다는 거에 다행이라 여기고 지지해 주시는 거지. 아후~ 어찌 됐든 다 털어내서 개운하긴 하다~ " 

    " 맞아. 감사한 일이야. 잘됐어. " 

    " 그렇지, 어차피 갈 건데 섭섭해하거나 화내고 반대하시면 마음이 불편했을 테니~ "

    " 긴장 다 내려놓고~ 개운하게 푹 자~ "


    대화 이후로도 가슴이 두근거려 뒤척이다 잠이 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시부모님의 말씀이 맴돌았습니다. 설레고 감사한 말입니다. 저조차도 저에게 허락하지 못한 그 말을 기꺼이 해주시니 말입니다.





높아진 자유도 


    고백 이후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공허함이 찾아왔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RPG 게임에서 끝판왕 보스를 깨고 엔딩을 본 느낌이랄까. 꽤 오랫동안 어제의 그 순간을 목표로 살아왔다는 걸 그 순간이 지나니 알게 되었습니다. 급격히 높아진 자유도에 당황해하면서 잠시라도 고민 없는 편안한 상황을 못 견디며 또 다른 고민을 억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과연 크리에이터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서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나가 있는 동안 부모님이 아프시면 어떡하지?', '우리는 지금 건강할까?' 


 나는 왜 이런 고민들에 휩싸이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고민을 다른 고민으로 감추고 있었다.'입니다. 고민이 해결되니 마음 구석구석 숨어있던 고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지요. 이 글을 쓰면서도 느낍니다. 과연 저 고민들이 내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인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인가. 답은 명확하게 '아니요'입니다. 시작해보지도 않은 도전들, 알 수 없는 앞날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서 내 안의 불안을 충분히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불안'이라는 기제가 발동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안'은 계속 함께하는 거지요. 사실상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시대는 지났기에 개인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생존'이 된 지금입니다. 제가 지금 만들어 내고 있는 고민들은 사실상 그만큼 더 잘 해내고 싶고, 더 잘 살아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불안할수록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려고,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통제하려고 애쓰고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내가 그만큼 간절하구나, 잘하고 싶구나,라는 마음을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일상을 살아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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