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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Feb 29. 2024

퇴근~아니, 퇴사

D-DAY

지난 24일 동안 

    

[작심 3개월]


    남편이 며칠 전 툭 하고 물어보더군요. 

    "여보, 요즘 글 안 쓰던데? 왜 안 쓰는 거야?" 

    (뜨끔)"어...? 어... 요즘 인계 준비하느라 바... 바쁘잖아?"

     안 그래도 다이어리에 '브런치 글쓰기'하고 별표 3개 해놓고도 손 놓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이그, 또 그럴 줄 알았다~' 매일매일 셀프비난 중이었던 터입니다. 

    " 보자~ 한 3개월 되어가나? 그래, 딱 자기 사이클이네. 3개월." 

    "...... 그러네?" 

    예전 같으면 저 말을 듣고,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지! 뭐 그렇게 한심하게 만드냐!'라고 큰소리쳤겠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3개월 마의 구간이지요. 다이어트도, 블로그도, 수공예판매업도, 영상편집도... 지금껏 통계상 3개월 주기였습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 삼 개월입니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피드백 또는 보상이 적절히 또는 제가 기대했던 거만큼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거였기에, 이번에는 글을 쓰는 거 자체, 그 과정에 의미를 두면서 기대하지 말자,라고 다짐하고 시작했었습니다. 큰 그림을 보자,라고 생각했지만, 일을 곧 그만두는 날이 다가올수록 그 생각이 들더군요. 


    '막상 일을 그만두면,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조금씩은 수익이 나야 하는 거 아니야? '

    '큰 그림이고 뭐고, 이 글들이 나중에 사는데 도움이 되긴 되는 거야?'


    참 낭만이라고는 없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 이 질문들이 가득 차니까,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거기다가 일은 더 바빠지고 인계 준비로 정신없는 시간들이 몰려오기도 했고요.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제 의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의지를 잘 쓴 덕에 24일이나 지난 뒤에 퇴사 날이 돼서야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 저 물음표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는 일 잘 마무리하고 갈 준비를 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봅니다. 이제 일을 그만뒀으니 저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해 보아야겠습니다. 사실, 매일 썼다면 저 물음표는 올라오지도 않았겠지요. 쓰면서 생각합니다. '쓰는 거 이렇게 좋아하면서 왜! 맨날 저항하는 거야?' 아직도 좋아하는 것보다는 돈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젖어있구나 싶습니다. 빨리 이 절음을 벗어던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 자체로 즐기기를 바라봅니다. 아, 솔직히 글을 쓰니 좀 숨통이 트입니다. 이제야 다시 흐르네요. 저의 시간이.


[퇴사선물]   


    '어차피 안 보는 데 퇴사선물을 굳이 줘야 할까?' 고민했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난 5년을 돌아봤을 때 고마운 사람들이기에 감사 표현을 꼭 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다들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사람 때문에 5년을 버텼기 때문입니다. 헤어질 때가 되니까 자체 필터링 돼서 좋은 장면만 생각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곱씹어봐도 고마운 일들 뿐입니다. 그래서 퇴사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섬유향수와 콜드브루를 샀습니다. 나름 고마운 정도를 매겨서 더 고마운 분들께는 2개를, 나머지 분들은 1개를 드렸습니다. 


    '편지를 써야 할까?' 고민했었습니다. 한두 분도 아니고 열몇 분을 일일이 편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귀찮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쓰지 않기로 결심했었는데, 선물로 주문한 섬유향수 업체에서 이쁜 파란용이 그려진 카드를 잔뜩 사은품으로 넣어주셨습니다. '아, 이건 쓰라는 거다.' 그렇게 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글 많은 사람이라 짧게 쓰려고 했는데도 꽉꽉 채워서 쓰게 되더라고요. 쓰면서 그분 얼굴을 떠올리고, 고마웠던 순간들을 떠올리니, 쓰기를 잘했다 싶었습니다. 귀찮다고 내 안의 이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다면 그건 저에게 늘 후회랑 아쉬움이 남았을 겁니다. 


    막상 퇴사선물을 주면서 한 분 한 분 얼굴을 보니 고마움의 감정과 함께 눈물이 핑 돌더군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고, 밥을 한번 같이 먹은 적 없는 사이였지만 늘 밝고 따뜻하게 대해주던 분들이었습니다. 그전에 없던 스킨십도 나누게 되더군요. 


    퇴사날 드리는 게 맞는데, 정신없이까봐 이전 주 금요일에 돌린 퇴사선물은 '선물'을 불러왔습니다. 저의 작디작은 선물에 큰 선물과 편지를 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러려고 미리 드린 건 아닌데...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들에게도 저는 이제 안 볼 사이었는 데 말이죠. 그 마음이 정말 고맙고 고맙습니다.


    모두들 진심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봅니다. 




그렇게 바라던 날인데


    오늘 회사를 나오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응~ 퇴근했어?"

    "아니~ 퇴사했어."


    그렇게 바라던 '퇴사',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엄마에게 '퇴사'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진짜 퇴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칩니다. 내가 상상하던 만큼 방방 뛰면서 기뻐하지 않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참 얄궂게도 벌써 같이 일하던 사람들, 내가 쓰던 컴퓨터, 나만의 아침 루틴, 근처 자주 가던 카페, 점심시간 산책하던 길 이 그리워지려고 합니다. 


    남편도 말하더군요. 

    "시원 섭섭하네~" 


    '난 어디 소속되는 게 너무 싫어~', '똑같은 일 하는 건 지겨워'라고 말하던 저인데, 막상 아무것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가 되니, '나 너 좋아했네?'처럼 저도 그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익숙한 루틴과 일상을 즐기는 것을 좋아했나 보구나, 싶습니다. 


    '참 좋은 직장이었다.'라고 생각하면서 백조로서의 삶을 준비해 봅니다. 일단, '알람'부터 삭제해 봅니다. 오, 조금 기분이 좋아지네요. 다음 주 월요일이 되면 또 다른 기분이겠지요. 방황하면서도 계속 일을 놓지 않았던 지난 12년이었습니다. 마냥 성실하지는 않았고 늘 탈출을 꿈꿨고 여러 번 이직을 했던 저이기에 차마 저 자신에게 '고생했다'라고 말을 못 하겠었는데 대신 엄마가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힘들게 지금까지 일하느라 고생했다."


앞으로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7박 8일간 베트남으로 여행 겸 답사를 갑니다. 답사기 겸 출국 준비기를 하나씩 써볼까 합니다. 그동안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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