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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Aug 23. 2018

썸머 핑크

핫핑크 열정 + 아이보리 빛깔의 밤들이 섞인 나의 여름날

올해 여름은 내 삶의 온도만큼 뜨거웠다.

2018년 6월 25일, 출판 계약을 했다.

그리고 계약 전, 원고 투고는 열사병 같은 치열함으로  집요했다.

월요일 오전에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야 선택될 확률이 높다는 말에 그 날, 그 시간에 작전 개시하는 열사의 투혼으로 투고를 했다.

‘오전 8시 예약 발송 50개 발사‘

‘앗, 30개밖에 안 되는구나, 일단 후퇴 잠을 자고 내일 오전 6시 기상, 20개 추가 완료하자’

몇 달 사이 밤과 새벽은 연장된 시간임을 알았다.

밤은 집중해서 글을 쓰기 위한 유일하게 주어진 시간이고, 새벽은 지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허락된 연장된 시간이다. 저녁에 노트북 앞에 앉으면 그 자리에서 몇 시간은 그냥 흐른다. 화장대 겸 책상으로 사용하는 어수선한 이 공간 속에서 나와 하얀색 화면 안에 또각또각 늘어나고 줄어드는 글씨만 보인다. A4 2장을 채워야 끝나는 하얀 밤과 새벽의 중간인 1시는 얼마 전에 지났다.

강윤선 작가의 도예 작품<flowery mountain >




100페이지의 글을 하루 안에 퇴고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 중간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 무리하게 주어진 산수 교과서 한 권 풀기 숙제가 있었다. 문제는 하루 동안 다 마쳐야 한다는 것인데,

저녁이 넘어도 밤이 넘어도 새벽이 넘어도 교과서 필사는 끝나지 않아서 울면서 아침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퇴고란 몇 시간에 끝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 한다고 할 수 없는 무조건 꼭 해야 하는 일, 그건 밤을 새라는 말이다. 시간을 만드는 것은 밤이었다. 잠을 안 자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나는 것을 어린 시절 알았다.  


글은 볼수록 끝도 없이 고칠 것이 보인다. 누군가 그랬다. 완성이 다 되어서 끝낸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적당할 것 같아 포기한 거라고.

내 손에서 글을 떠나보내면 고단했던 몸은 편해지겠지만, 마음은 이쯤에서 손을 놓는다는 것이다. 또다시 글을 보면 어차피 고칠게 분명하니까. 저장 후 발송을 해도 찜찜하다.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 시기적절하고 적합한 단어를 찾을 때까지 양손에 계란 한 알씩 쥐고 있듯이 자판에 손목을 무겁게 기대어 머무른다.

출발점은 프롤로그다. 입에 걸리지 않고 눈으로 따라가도 어색하지 않고 쭉쭉 넘어가야 에필로그의 도착점까지 도달한다. 내 글의 출발점과 도착점이 직선으로 연결된 것을 확인해야 정착했다는 안도감으로 비행을 마친 듯하다.  


아이보리 나이트 Ivory Night

강윤선 작가의 도예작품< flowery mountain >


밤은 뽀얗다. 하양색이다.

 ‘바츨러의 색깔 이야기’에는 흰색보다 더 흰색이 있단다.
모든 사물을 튕겨내는 흰색, 공격적인 흰색 말이다.

‘밤을 하얗게 태웠다 ‘라는 말이 있다. 백야처럼 몽롱하고 혼미하게 흐르는 정적인 시간을 보낸 밤샘 작업을 할 때다. 우유처럼 하얗고 진한 모니터와 내 정신처럼 모든 까만 밤을 튕겨낸다. 비몽사몽 하얗게 태운 새벽을 지나니 내 눈도 뿌옇다.

초등학교 4학년, 그 해 여름 학구열로 뜨거웠던 순간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기간에도  열심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방을 놔두고 부엌 옆 창고 골방이 집중이 잘 된다며 거기서 상을 펴놓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밤이 늦었다 느낄 때면 방으로 돌아와 자려다가 다시 책상에 앉았다. 한 밤중 잠과의 사투 중에도 책임감 또는 자기만족에 몽유병도 아닌데 졸면서 책장을 넘겼단다. 밤중에 엄마가 내 방을 들여다보다 그 모습을 보시고는 얼렁 누워서 자라고 만류하셨다. 아마도 잠결에 스스로 공부했다고 착각을 해서 술렁술렁 넘어간 책장 사이로 시험 문제가 흘렀나 보다. 노력 대비 성적이 좋을 리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이 있었다.

책의 끝 페이지를 봐야만 누워서 잠들었던 그때를 보며 내 키가 161cm 인 이유를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키가 크는 밤 시간에 주로 책상에 있어서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쭉 펴고 안 잤기 때문이라고. 책상은 내게 지독한 공간이다. 집중력을 가지고 쏟아부어야만 결과를 얻는다는 습관이다. 그때부터 결과에 대한 후회보다는 뿌듯함을 위해 몸이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요새 책상에 몇 달간 앉아서 지내는 엉덩이 근성을 지닌 내 모습을 보시고는 ‘네가 그래도 재밌나 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아직도 나에게 ‘고만 자야~!’라고 하시니 나는 일관성이 있는 여자다. 내가 도자기를 만들 때도 화장실만 몇 번 가고 하루 종일 꼬박 앉아 있으니 매사에 그렇다.

출판사에서 최종 원고를 수정한 이메일이 왔다. 그때부터 경주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책상 모드로  돌입하여 매의 눈으로 확인하고 수정을 한다.

모니터를 오래 보니 눈이 짓물러 거물거물하고 뽀얀 비늘이 낀 것 같다. 최종 원고 파일을 받고 이젠 정말 인쇄소에 가기 전 마지막 수정 원고를 떠나보내며 그렇게 몇 달이 폭염 후 폭풍처럼 왔다 갔다.


썸머 핑크. 터질 것 같은 핫 핑크 같은 여름날에 두 달간의 하양 빛깔의 밤을 섞으니 나의 첫 책 표지 색깔이 나왔다. 통통 튀는 핫 핑크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아이보리의 진한 진심을 담은 나를 닮은 책이 나왔다. 나도 드디어 작가들이 말하는 조사의 뉘앙스에 대해 민감하게 고민하는 경험을 해보았다. ‘외국 항공사는 왜 나를 뽑았을까 ‘에서 조사 ‘는 ‘과 ’가‘ 사이에서 고민했던 가장 뜨겁고 지독했던 올해 여름 8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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