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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Mar 24. 2021

비행기 화장실에서의 요가

                  

  비행 3년차에 한 칸 앞으로 진급을 했다. 이코노미 클래스 앞을 거들먹거리며 지나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들어갔다. 새롭게 근무할 비즈니스 클래스 객실은 깐깐한 인상이다. 모두가 내 말과 행동을 꿰뚫어 보는 듯해 불편하고 어색했다. 

  다른 승무원들은 우아한 발레를 하는데 나는 헐떡이며 에어로빅을 하는 느낌이다. 나 빼고 다들 동작들이 신속하고 유연하다. 난 며칠 댄스 연습에 빠진 사람처럼 간신히 흉내 내느라 위가 오그라들어,  빠져나오듯 화장실로 갔다. 승객들과 동료들이 나를 찾지 못하는 유일한 곳으로. 신경질이 나서 그냥 변기 물을 내렸다. 무섭게 빨려 들어가는 소리에 나오려던 눈물이 순식간에 쏙 들어갔다. 그냥 비행기에서 탈출하여 회사로 달려가 이코노미 클래스로 옮겨달라고 하고 싶었다. 

겨우 한 바퀴 몸을 돌릴만한 크기의 화장실은 나만의 공간이다.  그러나 비행기 화장실 문은 직원들이 밖에서 열 수가 있다. 안전과 보안상의 이유로 플립 (여닫이)을 들어 올려 좌우로 움직이면 OCCUPIED와 VACANT를 조정한다. 화장실에서 승객이 너무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면 안전상의 이유로 승무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 확인을 하기 위함이다.


  싱가포르 비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승객들의 탑승 전, 나는 화장실 안에 볼일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화장실 문이 열렸다. 기내 화장실을 청소하려고 들어온 공항 청소 직원이었다. 나는 비행기 화장실 안에서 내가 문을 잘 잠갔는지, 아닌지. 오른쪽으로 밀었는지 왼쪽으로 했는지 생각하다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잊어버렸다. 문을 연 이도 당황하여 랩처럼 쏘리쏘리쏘리 하고는 문을 재빠르게 닫아버렸다. 비행기 화장실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서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물을 많이 마시면 당연히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어있다. 특히 비행기는 건조하여 탈수증상이 쉽게 온다. 1.5ℓ 페트병에 든 물 2통을 마시기를 승무원들 사이에서 권장한다. 아예 물통 겉에 각자의 이름을 써놓고, 각자의 취향대로 레몬을 넣거나. 티백을 넣는다. 사우나의 이벤트 탕, 쑥탕, 오미자 탕처럼 물통이 저만의 구석에 놓여있다. 이게 다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벙커에서만큼은 수분 섭취를 고민해야만 한다. 물을 안 마시고 버티려고 했는데 콧속도 입안도 다 마르고 마른기침이 났다.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 소름이 끼치고 아랫배가 아프다면 참을 만큼 참은 것이다. 남은 휴식 시간이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만으로 꽉 차 휴식 시간이 지옥이 될 테니.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다. 

  소변은 담요로 꽁꽁 싸맨 미라를 깨우게 하는 대단한 자연의 힘이다. 입던 파자마에서 다시 유니폼으로 돌아오면 한바탕 요가를 해야만 한다. 그것도 반수면 상태에서 ‘사바아사나.’

승객들과 함께 화장실 앞에 줄을 서는데 덜 민망하겠지만, 커튼을 치고 누워서 꾸역꾸역 옷을 갈아입으려는 수고는 진짜 생략하고 싶다. 기내에서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갖췄던 내 모습에 엄청난 실망을 할 것이다. 어쩌면 못 알아볼 게 분명하다. 난 머리를 풀어헤치고 파자마를 입었으니까. 단 거기에 안 어울리게 하이힐을 신어서 걸릴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가려고 사다리를 내려갔다. 스타킹을 내리자마자 정말로 기나긴 오줌이 나왔다. 좔좔좔좔 멈추지 않는다. 좌변기에 궁둥이를 닿지 않고 허벅지 힘으로 버텼다. 이번에 ‘웃카타 아사나‘. 의자 자세로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단련했다. 

온 김에 화장실에 또 오지 않도록 한 방울까지 짰다. 화장실만 오가다 나의 소중한 휴식 시간을 끝낼 수는 없다. 엉거주춤 앉아 언제까지 나오는지 변기 안을 들여다봤다. 얼굴을 아래로 향한 ’아도무카 스바나아사나‘ 자세다. 누군가의 대변 자국을 발견했다. 내 소변으로 떼려고 방향을 조절했다. 난 요가 수행 중이다. 그 상태에서 고개를 들면 거울이 보인다. 허리를 늘려 펴서 모공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들이댔다. 몸에 있는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 얼굴이 바스스 말라 있다. 비행기의 환경은 음식 건조기 같았다. 수분을 바싹 말려 사람의 기운까지 쪽 빨아갔다. 얼굴에 곱게 발라놓은 파운데이션은 버터로 겹겹이 층을 이룬 페이스트리가 되었고, 입술은 립스틱이 입술 주름 사이로 스며들어 부스러기만 남은 껍질과 엉겨 보풀이 생겨났다.


직접 촬영한 비행기 화장실


 나는 얼굴에 묻은 기름과 먼지를 닦아 내려고, 기름종이를 갖다 데어 꾹꾹 눌렀다. 얼굴에서 페인트가 벗겨지듯이 기름때가 떨어졌다. 거기에 미스트를 뿌리고 축축한 에어 쿠션으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립스틱을 덧바르고 아이라인을 다시 그리니 감쪽같다. 화장실 거울 속 눈동자는 말한다.’자기 관리가 정직하군‘. 이렇게 메이크업은 내 얼굴을 살피면서 문제를 바로 잡는 일이었다.

그런데 스타킹은 새 걸로 갈아 신고 싶다. 발바닥에 땀날 정도로 경보를 했다. 나일론 스타킹과 가죽 구두의 밑창이 자꾸 열을 내다보면 어디선가 강아지 발바닥 꼬순내가 난다. 신발과 스타킹에 주스가 튀거나 음식물이 묻는 건 당연하고, 모든 액체와 먼지들이 뒤섞여 얇고 투명한 스타킹을 뚫고 다리가 오염되었다. 아무래도 스타킹을 화장실에 벗어 놓으면 발 없이도 스스로 스멀스멀 문틈으로 흘러서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좁은 화장실을 나오기 전,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인파속으로 다이빙했다. 그리고 난 대충 벗어둔 그 스타킹처럼 길게 늘어진 어두운 복도를 걸어 나간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에는 비행기 화장실을 떠올리며 컴팩트한 화장실 공간을 구성한다. 컬러 배치와 동선을 고려하여 작은 카페나 집의 화장실, 캠핑카 화장실을 어떻게 공간 구성을 할까 고민하는 것이 요즘 나의 일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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