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 있어야 하는 이유
우리 부부가 함께 외국을 떠돈 지가 3년이 되어가네요. 나는 남편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이스탄불의 삶은 어땠을지 늘 궁금했었는데, 그곳에서 1년을 살면서 30년 전에 남편이 살았던 동네, 자주 가던 단골 도나르가게, 석류 주스와 수죽 토스트 가게를 찾아다니며 추억의 장소를 추적하며 잊지못할 터키생활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무작정40대 후반에 재취업을 하기 위해 모든 짐을 싣고 4일을 운전하여 독일로 갔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때는 녹음이 짙어가는 한여름이었습니다.
네덜란드 레이와르던을 시작으로 슈트카르트, 하노버, 함부르크, 에센, 뒤셀도르프, 뮌헨을 열리는 캠핑카 박람회를 3개월 안에 모두 참가하여 차례대로 방문했습니다. 독일 전역의 캠핑카 사업 근황과 트렌드를 파악하고 취업을 위한 정착 준비를 였습니다.
남편은 캠핑카 전시회에 가장 많이 보이고, 가장 큰 누구나 다 아는 전통캠핑카 회사의 사장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면접같은 미팅을 잡아 같이 일하고 싶다고 어떻게 구워삶아 어필을 했는지, 입사 여부에 대해 곧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받아왔다고 하길래 용감하고 뻔뻔한 기질이 부러우면서도 대단했습니다. 왠지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될 것 같다며 비자와 집을 곧 해결하겠다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출근할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며, 전화만 오면 언제든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회사 주변에 머물렀습니다. 그 도시가 프랑크푸르트였습니다. 금융도시인 그곳에는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 간판이 자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식당, 미용실, 한인 교회, 한국 대형 마트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LA가 영어 없이도 한국인이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독일은 프랑크푸르트라고 할 수 있네요.
외국에 살면서 한국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어떤 모습이 잘 사는 건지 종종 상상하며 내가 만약 외국에 산다면 어떻게 살지 꿈을 꾼 적이 있었습니다. 독일 이민자들의 꿈은 정원이 있는 대저택에 바우하우스풍의 하이엔드 가구로 채워져 있고, 독일 차를 타고 다니며 아이들 방학마다 근교 유럽여행을 다니면 성공한 삶입니다.
한국 대기업에서 선진국인 독일 주재원을 나오면 자부심이 생겨 콧대가 높아진다고 하더군요.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유럽에 진출했으니 유러피안 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는 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정해진 집없이 장기간 머물 호텔비용이 아까웠습니다. 유럽의 캠핑장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캠핑카에서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잠든 날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눈만 깜빡이며 알 수 없는 내일에 희망을 걸고 또 걸었습니다. 밤이 찾아오면 캠핑카를 끌고 밤새 주차가 가능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유럽 어느 골목에서 잠을 자면서 창문을 두드릴까 불안해서 작은 불빛과 인기척에도 괜히 움찔했던 기억도 납니다.
나는 이때부터 사람은 자가에 살아야 하는 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집이 반드시 있어야함을 특히 월세나 전세는 앞으로 살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의 소중함, 내 집을 꾸미고 싶은 욕구, 집에 대한 소중함 간절함이 생긴 계기였습니다.
”이제는 차에서 자는 게 온몸이 뻐근하다.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숙소를 잡자 “
숙소비가 저렴한 도시 외곽으로 가기 위해 7m 캠핑카에 시동을 켜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빠져나왔습니다. 고속도로를 40분을 달려도 하늘과 들판만 보였습니다. 독일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며 하염없이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얼마 후, 내비게이션은 제조 공장들이 모여있는 산업단지로 이끌었습니다.
호텔같이 생긴 건물이 주변에 하나도 없는데?
이런 곳에 호텔이 있을 리가 없는데요. 진입로를 따라가니, 컨테이너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이 은신처처럼 숨어있었습니다. 아샤펜부르크, 000street, STO 호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6살 주인공인 무니가 사는 매직 캐슬 숙소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단, 미국의 화려한 색상의 건물이 아닌 독일답게 철제와 콘크리트로만 구성된 현관이 밖으로 노출된 그레이톤의 간결한 구조였습니다.
주변에는 대형 트럭들이 트랙터에 연결되어 화물을 운반하는 트레일러와 정지해 있었습니다. 엔진 소리가 가득한 트럭 휴게소 같았습니다.
그 안에 누가 있나 궁금해서 올려다보다 나시티를 입고 머리를 민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트럭 운전사들은 능숙한 자세로 높은 차 안에서 내려와 담배를 피웠습니다. 저임금으로 장시간 일해야 하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사이를 가로질러 숙소 주차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반바지와 나시티를 입고 호텔 객실을 동유럽계 여성이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 곁을 서너 살 정도의 아이가 뛰어다니며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숙소에는 어떤 사람들이 머물다 갈까?
차에서 필요한 짐가방을 재빨리 챙겼습니다. 하루를 지내더라도 필요한 짐은 일주일이나 한 달 치나 똑같습니다. 짐을 한 번에 방으로 이동하려고 등에는 백팩, 손과 팔목에 쇼핑백과 에코백을 주렁주렁 걸었습니다. 독일 진출을 위해 밑바닥을 부여잡듯 포댓자루 같은 파란 이케아 쇼핑백 바닥을 부여잡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듯한데 누군가 쳐다보는 따가운 느낌이 들더군요. 독일에는 CCTV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반드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모텔 방 문 밖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어떤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고립된 생활 상태를 감지했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시간에 찾아든 동양인 커플을 향한 조용한 시선들을 의식하며 방호실을 찾았습니다.
짐을 챙겨 15개쯤 되는 철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짐의 무게감이 내 마음의 무거움입니다. 낯선 시골 동네에 피난 와서 속세와 단절되어 당분간 숨어 지내기는 좋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려고 독일에 온 건가? 이민 생활의 성공을 위해 처음에 고생하는 건 참아야겠지요? 금방 남편이 독일 회사에 취업하고 자리를 잡겠지요? 난 이 시기만 버텨내면 멋진 독일 생활이 시작될 거란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문은 도대체 어떻게 여는 거야?
이메일로 도어록 비밀번호가 왔어. 잠깐만 기다려봐 확인해 볼게.
굼뜨다 굼떠. 문 앞에서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이제야 호텔 측에서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는 남편에게 짜증이 났습니다.
진작 좀 확인하지 꼭 문 앞에서 짐을 들고 기다리게 하냐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화를 낼 힘도 없습니다.
한번에 외워지지 않는 일관성 없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벽 한 면이 유리창으로 된 방은 네모반듯합니다. 커튼을 전부 열어젖히니 거미를 시작으로 커튼에 붙어 있는 파리 떼에 소스라쳤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나치게 자란 무성한 잡초들로 펼쳐진 벌판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공기는 좋네, 밥 해 먹어도 냄새 걱정 없겠다. 허허
방안이 왜 이렇게 덥지? 에어컨이 없나? 선풍기는?
독일은 대부분 가정집에 에어컨이 없어.
그건 오빠가 20년 전에 독일을 떠났을 때 이야기지. 요즘 같은 이상기후에 에어컨 없는 집이 어딨어.
'독일은 원래 그래' 라는 소리를 한 번 더 하면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세상을 원 없이 돌아다니며 땅 밟기를 했습니다만 현실은 가난하고 정처가 없었습니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남편이 한국에서 능력발휘를 못 하고 사는 모습이 그동안 안타까워서 나는 조필롯이 되어 내조 프로젝트를 한 것입니다. 이 나이에 한국에서 살림을 다 정리하고 우여곡절 끝에 독일 땅을 밟았다는게 남편은 대단히 믿었나봅니다. 비록 당장 현실이 배낭여행객 같아도 웃으며 희망을 품으며 꿀꺽꿀꺽 하루하루가 넘겨지는 매일이 여행같은 나날들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