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쿠젠의 승리

축구 소년의 해외진출

by 강윤선


모든 것은 축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대학 생활을 하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30분 정도 더 가면 레바쿠젠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팀인 레바쿠젠 축구팀이 있는 곳이지요.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한 곳인데, 아스피린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엘 약품 회사 본사와 공장에서 돈을 벌어 학비와 생활비를 충분히 벌었다고 했습니다. 축구광이었음에도 레바쿠젠 축구 경기를 보러 간 적은 없었다네요. 늘 가고 싶었지만, 미뤄두고 미루다가 언젠가로 남겨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에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잘 알려지지도 않고 평범한 축구팀을 남편은 왜 좋아했을까요? 터키에서 동네 축구를 하며 TV로 유럽축구를 보고 자랐는데, 당시 80년대 우리나라 차범근 선수가 레버쿠젠의 첫 슈퍼스타였답니다. 차범근 덕분에 1988년도에 바르셀로나를 꺾고 레바쿠젠이 유럽컵에 처음으로 우승을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독일에 있었기 때문에 레바쿠젠에서 마침 유럽컵 준결승 진출을 위한 8강 경기가 열리는 걸 알고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경기표를 구하기 위해 아침 일찍 레바쿠젠으로 출발했습니다.

독일 축구 시즌이 끝날 무렵에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할 수 있는 막강한 우승 후보로 몇 경기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04년 이후로 레바쿠젠에겐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독일 축구팬들이 놀랄 정도로 전 세계가 관심을 끌고 있었죠. 한 시즌 전체 무승부 기록을 하나하나 깨고 경기마다 패배 없이 완벽한 승리를 향해 가고 있을 때쯤이었습니다.


레바쿠젠 경기장 입구 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티켓은 몇 달 전 온라인으로 다 매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은 경기장 맞은편 맥도널드에서 아쉬움을 달래러 들어갔습니다. 외국에서 만나는 맥도널드는 반갑고 친근합니다. 감자튀김이 독일이라 더 맛있는 거 같기도 하고 뜨거운 드립 커피가 허무와 설렘을 가라앉혀주었습니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독일 할아버지 둘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둘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레바쿠젠 동네 토박이로 평생 레바쿠젠의 승리만을 기다리는 축구펜임을 확실했습니다. 그러더니 남편은 옆 테이블 할아버지의 대화에 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동네 오래 사셨냐고, 레바쿠젠 축구 승리를 응원한다며 너스레를 떨더니 축구 경기 티켓을 구할 방법이 있는지 현지인만이 알 법한 정보를 물었습니다. 경기장에 가서 티켓 오피스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온라인 판매 시기를 놓치면 팬샵에 문의해 보거나 혹시 운이 좋으면 경기 당일날 남은 표를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경기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왔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만족했습니다.


온 김에 경기장 주변을 구경하다 가자고 경기장을 서성이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누구를 발견하고는 가서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80년대에 차범근이 뛰던 시절 같은 팀의 주장이자 골키퍼인 레전드인 루디거 폴본이었습니다. 축구선수를 은퇴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는데도 남편은 60대가 된 그를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갔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자신을 알아본 중년 팬에게 기분이 좋은 루디거는 차범근과 함께 경기한 그 시절을 회상하며 한참을 시끄럽게 경기장 앞에서 팬 미팅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차범근과 차두리 선수의 가족 안부를 오히려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축구 기념품을 사러 레바쿠젠 시내 쇼핑몰에 있는 팬샾에도 갔습니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며 레바쿠젠 유니폼 티셔츠를 사서 입었습니다. 중년이 된 어른에게서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축구 소년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다음 주 경기 당일, 축구 유니폼을 입고 레바쿠젠에 갔다. 또다시 간 맥도널드에서 단골인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good luck! 오늘 꼭 표를 구해서 경기를 보기 바래! “

경기장 주변은 레바쿠젠의 긍지를 나타내는 블랙과 레드의 상징으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페이스페인팅을 한 관객들, 커리부어스트에서 나는 매콤 새콤한 커리 소스 냄새, 손에 들고 다니는 맥주병, 나는 맥도널드에 앉아 창문을 통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한 관객들로 넘쳐났습니다. 그의 심장은 이미 십만 관중의 함성에 이끌려 혼잡한 티켓 오피스를 향해 긴장하며 뛰어갔습니다.


티켓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진짜 티켓을 구하게 된다면, 50유로 이상이면 나는 안 봐도 되니까 오빠 것만 사.
정말? 그래도 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호텔에서 보고 있을게.
멀리서 그가 심각하지 않은 표정으로 걸어옵니다. 맥도널드 문을 열고 손에 티켓 한 장을 흔들며 들어옵니다.


샀어? 진짜 한 장만 샀어?

축제의 현장에서 나만 쏙 빠진 거 같았지만 티켓이 너무 비싸서 참았습니다. 내 말을 곶이 곧이곧대로 듣고 한 장만 사 온 게 막상 서운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어린 시절 못을 다 이룬 걸 이루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나 이제 들어가 볼게! 경기 마치면 데리러 갈게. 레바쿠젠, 레바쿠젠~~

경기장 밖에까지 응원가 합창 소리가 온 마을에 퍼집니다. 어둠이 내린 하늘로 경기 시작을 알리는 불꽃에 십만의 관중의 환호성 소리가 웅장했습니다. 그리고 경기장 밖에는 나 말고는 거짓말처럼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스포츠 채널이 있는 경기장 근처 호텔 바에 들어갔습니다. 텔레비전으로 관심 없는 축구 생중계를 봤습니다. 혼자 바에서 있으려니 어색해도 참고 축구를 즐기는 척을 했죠. 높은 테이블 스툴에 걸터앉아 차가운 무알코올 병맥주 상표를 만지작거리며 잔에 툴툴툴 따랐습니다.

바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그 안에서 축구팬인척 즐겁고 편해져 보려고요.


인생에서 한 번은 작정하고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독일에 온 지 3개월이라는 시간을 잡고 그물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탑에 올라가다가 배신과 질투, 프로젝트 중단, 변심 같은 위험에 대비해 안전하게 쳤습니다. 올라가다 떨어져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다졌습니다.

요즘은 개인이 영업하며 돌아다니는 시대가 아님에도 그 옛날 진심과 인정이 통했던 방식으로 했더니 기계처럼 정확한 독일인들에게 진심을 느끼게 하는 남편의 전략입니다.


남편은 독일 전역으로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여갔습니다. 독일 도시들을 여행길로 만들어 개척해 나갔습니다. 소시지 가게, 맥줏집, 수영장, 미술관을 중심으로 나에게는 관광지로 만들어주고 남편은 업체 방문을 위해 일을 보러 다녔습니다. 나에게 많이 보고 많이 느껴서 영감을 충전하고 조급해하지 말고 잠잠히 누리라고 했습니다. 나에게도 오랜만에 찾아온 선물 같은 유럽에서의 시간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나란히 붙어 다니며 우리 둘이 손을 꼭 잡고 세상을 다니면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독일 회사와의 미팅 일정에 맞춰 독일 전역과 유럽을 차로 다녔습니다. 도착한 도시에는 하루 이틀을 머물렀습니다. 때로는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면 관광을 하고, 연기가 되면 도시 주변을 머무르며 기다렸습니다. 남편은 운전을 너무 많이 해서 발에 물집이 잡히고 무좀이 생겼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장길에 마트에서 산 소금과 사과 식초를 따뜻한 물에 넣고 발을 담그며 조금만 더,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있어서 축구펜들의 응원 소리는 자신을 응원하는 소리였나 봅니다. 축구장의 웅장하고 설레는 분위기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에너지를 얻고, 언젠가는 승리를 하겠다는 축구선수들의 의지와 응원가가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함께한 레바쿠젠은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이루었고,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무패배를 남긴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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