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력해진 시즌2, 이스탄불에 독일로

2부 네덜란드 드래곤은 독일에 있습니다

by 강윤선


“지금 아니면 나 다시는 독일에 못 나가.
지금이야, 바로 지금 “

이스탄불에서 독일까지 비행기로 2시간이면 닿을 곳을 캠핑카로 나아갔습니다. 이스탄불 집을 정리하고 짐들을 캠핑카에 다 실어 넣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상급지로 전진하여 독일로 뻗어나갔습니다. 위기일까요, 모험일까요? 우리가 세상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었음에도 독일에서 새로운 일을 찾기란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아직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독일에 정착하기 위해 우리는 모험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외국 땅을 밟고서부터 거기서 찾고 두드리고 찾아다닐 계획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중년의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20대 유학생 같은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죠. 다만 우리는 부부라는 팀이니까 신나는 경험을 함께 하기로 했죠.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만나도 뚫고 나갈 탄력과 맷집이 있었습니다.

40대 중년 부부에게 청년의 열정이 들끓었습니다. 삶에 대한 절실함이었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내리막길이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독일 진출만이 기회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기름을 넣고 터키를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차가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매연과 담배 냄새와 먼지로 가득한 도로를 달리다가 고속도로를 진입할 무렵, 큰 트럭이 우리 차를 보지 않고 기어이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다 트럭 뒷부분이 우리 캠핑카 왼쪽 백미러를 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빵빵거리며 끝까지 쫓아 달려갔습니다.

왼쪽 운전석 백미러가 조각이 나서 겨우 대롱대롱 매달려 괴로운 듯 덜컹거리는 채로요.

남편은 보이지 않는 시야에 한숨을 토해내며, 고속도로를 달려 겨우 따라잡았습니다. 클랙슨을 울려 창문을 내린 트럭 운전사는 그걸 내가 그랬냐고 몰랐다고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출발부터 운전석 사이드미러가 깨져서 어떡하지? 오늘 못 가는 거 아니야? 상태를 보니 얼룩덜룩 울퉁불퉁 보이는 시야로 가능할지 속상했습니다. 몇 개 나라의 국경을 통과해서 3박 4일을 백미러가 깨진 채로 달려야 할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우리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차에 있던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아 죽어가는 운전석 사이드미러를 일단은 소생시켰습니다. 주변 정비소를 찾아보고 다시 내일 출발하자고 만류해 봤지만, 바로 터키를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 캠핑카는 출시된 지 몇 주가 되지 않은 뉴포드 폭스바겐 프로토타입이어서 독일쯤 가야지 부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우리가 이스탄불을 떠나려고 하자 앞길에 꼬장을 부리는데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운명이 훼방을 놓아도 주저앉을 우리가 아니거든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위로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강한 멘탈로 이스탄불을 탈출했습니다. 달리고 또 달려 밤이 되면 잠을 자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매일이 여행인 시절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이스탄불부터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 뮌헨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독일 투어 슈투트카르트, 뒤셀도르프, 도트몬드, 에쎈, 레바쿠젠, 함부르크에서 캠핑카 업체를 방문했습니다. 독일 각 도시에서 하는 캠핑카 전시회에서 만난 업체를 찾아다니며 미팅을 했습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영국까지 점령했다니까요.

자동차로 다녀도 공항 입국심사처럼 국경에서 여권 심사를 하고 여권에 도장도 받았습니다. 나라마다 달라지는 시차에도 비행기처럼 jet leg은 없었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바다를 건너, 도로 위에서 비와 안개를 만나기도 하면서 언제나 원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도로가 잘 정비된 속도 무제한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립니다. 남편은 캠핑카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기름량을 점검하고 내비게이션을 확인하자 길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속도 계기판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에게 운전이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도로 위의 왕이 된 거 같아서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합니다. 그는 캠핑카 핸들의 가죽시트를 단단히 붙잡으며 생명이 우리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에어컨을 켜고 백미러 각도를 조절하고 장시간 밤운전을 위해 편안한 자세를 찾아 몸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운전하는 동안 이제 곧 독일에서 취업도 하고 집도 구하고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다짐하듯 커다란 캠핑카가 잠수하듯 밤의 도로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나는 오직 남편을 따라가는 길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마음도 속도도 유지되자 그는 이제야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긴장하여 시트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있던 나도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 봅니다. 다음 도착지까지 알 수 없는 희망을 음미하게 하는 드라이브를 계속했습니다.

흥을 돋우려고 닥터 드레와 아이브 노래를 번갈아 들었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쾰른에서는 어떻게 살았었는지, 이스탄불에서는 어쩌다 20년을 살게 된 건지, 그리고 어떻게 독일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인터네셔널한 그의 45년간 이야기는 이민 역사의 대서사였습니다.

타임머신 캠핑카를 타고 그가 태어난 암스테르담 동네부터 다녔던 한인교회를 가봤습니다. 쾰른에서 보낸 초등학교와 살던 아파트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요.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그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도전할 힘을 냈습니다.


남편이 운전하는 캠핑카를 타고 유럽의 많은 도시들을 다녔습니다. 남편이 일하러 가는 동안 나는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었죠.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 하는 멋진 일입니다. 설레어서 아껴보면서 시작을 하다가 천천히 몸을 무겁게 무게를 느끼지 않으며 몽롱하게 깊게 빠져듭니다. 내가 부유하고 고상한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들게 해 줬습니다.

나는 20대와 30대에 승무원으로 일을 하며 이미 세상 오만군데를 다 다녀봤습니다. 퇴사 후 10년이 지나서 결혼을 하고 나서야 유럽의 도시들을 다시 오게 될 줄 전혀 몰랐습니다. 한국에서 결혼해 정착을 했으니 해외운은 끝났다고 생각했죠. 그동안의 경험을 손바닥에서 펼쳐가며 파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니 종종 우울했었더랬죠. 여행길에 장애물이 있을 줄은 생각지 않고 직진했습니다. 승무원 때보다 더 강력한 시즌2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월을 거슬러 시공간을 넘나드는 기적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습니다.

혹시 자랑하는 거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연유를 알게 된다면 지금 이렇게 남편을 두고 혼자 서울로 탈출한 내게 약간은 인지상정이지 않을는지.


40대가 되어서도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50대가 되면 나아질까요? 아껴서 생활하고 자제하고 누르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사는 생활은 여전합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잔고처럼 아무리 써도 잔고가 티가 안나는 넘쳐나는 돈을 가지고 해외 생활을 버틸 수 있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숙소는 캠핑카이거나 가끔 저렴한 호텔이었습니다. 기본 생활은 유지하지만 해외에서 취업할 때까지는 새어 나가는 지출비가 커서 간절히 월급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본격적으로 독일에서 구직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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