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Standard Couple
네덜란드 드래곤과 함께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했습니다. 우리는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능력 발휘가 100% 되지 않았고, 세상과 매칭이 안 되고, 설 무대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날개를 달고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세계로 뻗어서 일을 찾아보라며 추켜세웠습니다. 한국은 무대가 너무 좁다고. 불을 내뿜으며 세계로 다니라고 틈만 나면 부추겼습니다.
함께 외국으로 나가서 할 일이 뭐가 있을까?
한국에 베이스를 탄탄하게 한 다음에 외국에 기회를 만들어서 언젠가 나갈 거라 했습니다. 그게 언제일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지요.
남편은 결혼한 다음 해에 다니던 직장을 관뒀습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인생을 매달렸습니다. 계획이 있겠지 싶어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터키 사이트를 리서치하고 터키 뉴스를 보더니 어느 날부터는 밤낮으로 터키 사람들 통화를 하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그의 터키어는 한국어만큼 유창했습니다. 전화로 몇 시간 동안 터키 사람과 대화하는 남편은 터키 사람 같았습니다.
”터키말을 언제부터 잘한 거야? “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독일에서 살다가 이스탄불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녔어. 부모님이 일하느라 바쁘셔서 동네 터키 애들이랑 축구를 하다 보니 말이 늘었어, 집 앞에 택시 회사가 있었는데, 터키 아저씨들이 귀엽다고 차이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해서 아저씨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니 말이 늘고 “
부모님이 터키어를 잘 못 하시니까 내가 더 빨리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나 봐. 아버지 일도 봐주고 중학교 때는 한국 회사가 터키에 오면 통역도 했었어.”
그렇게 우리 집에 터키어가 자주 들렸습니다. 해외 전화가 오면 난 방문 사이로 들려오는 신기한 외국어에 뭐라고 하는지, 무슨 새로운 일이 곧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터키에서 전화가 오는 날이면 우리가 터키에 가겠다는 것을 점점 구체화되었습니다.
“우리 터키 갈까?” 그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진짜 가겠구나.
한국을 떠나 내가 자란 나라에 가서 새로 시작하자면 갈 수 있겠냐고.
남편이 인생에서 꼭 한 번은 하고자 하는 일에 가담하여 함께 그 길을 개척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중년에 외국에 나가서도 잘 헤쳐나갈 거라 믿고 싶어 졌습니다. 공기의 냄새와 호흡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카파도키아 열기구
남편은 튀르키예 출장을 만들었습니다. 터키에 있는 자동차회사에 전기차 사업 제안을 했습니다. 외국으로 나가는 가능성을 시도했지요. 그가 용트림을 거렁거렁하며 마음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입니다. 청년의 때와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파도키아로 향했습니다. 누군가에겐 신혼여행지,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오색찬란 황홀한 열기구만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날씨가 좋아서 탈 수 있을지도.
새벽 5시에 숙소 앞으로 열기구 관광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깜깜한 버스 안에는 이미 관광객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새벽녘이라 어둑어둑한 풍경에 비치는 버섯 모양의 신비한 들을지나 열기구를 타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형형색색 열기구 풍선에 불을 지피는데 바닥에 널브러진 바람 빠진 풍선이 뜨거운 증기에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풍선 바구니 하나에 15명씩, 파일럿이라고 하는 조종사와 함께 탔습니다. 조종사의 경력과 실력에 따라 더 높이, 더 멀리 유명한 관광지까지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 가기도 합니다. 추락사고도 종종 있었다던데 여러 상상을 하는 가운데 덜컹, 출렁하더니 땅에서 떠올라 점점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에 더 신나서 조종사는 일부러 한 번 더 열기구를 흔드네요.
카파도키아 관광지로 유명한 로즈벨리가 한눈에 보인다. 세상이 우리 발 아래 있습니다.
부릉부릉 쑤욱쓔욱 쏴아 쏴아 불을 지피는 요란한 소리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유리창이 없고 안전띠도 없이. 바구니 안에서 제대로 서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무릎을 펼 수가 없을 정도로 오금이 저립니다. 열 풍선 한 평 공간 안에 사람들이 황홀감에 취해 서로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각 모서리 파노라마 뷰를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누가 뒤에서 밀기라도 할까 봐 몸을 낮추게 되었는데 평소 몰랐던 고소공포증이 생겼습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하늘에 떠 있다는 자유로움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한 번도 뿜어내지 못한 인생의 불꽃이 세포 구석구석까지 찌릿찌릿하며 감각을 깨웠습니다.
열풍선 안으로 불을 지피는 동안 우리는 나란히 세상을 내려다보며 뜨겁게 마음을 다졌습니다.
남편은 태어나서 누구도 불을 뿜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기침하면 뭔가 나올듯한 답답한 삶을 살았습니다. 폐 깊은 곳에서 그르렁그르렁 하며 시커먼 연기를 내뿜어냈습니다.
자유롭게 마음껏 눈치 보지 말고 살자. 가족의 부담, 짐, 한숨 소리, 고생, 원망, 눈치, 예의범절, 잔소리로 묶었던 끈을 끊고 하늘로 날아가자. 더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카파도키아 출장을 다녀와서 남편은 그동안 속이 타서 시꺼먼 재가 되었는지 폐암 1기를 판정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수술하고 한 달 후, 터키로 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옥수동 신혼집의 새 가구들과 가전제품, 옷가지들을 빠른 시기 안에 정리했습니다. 내 삶에서 또다시 가방을 꾸려야 하는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나는 외국 항공사를 세 번이나 이직한 승무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결혼해 정착했으니 해외 운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손바닥에서 펼쳐가며 파먹고 살 궁리를 하니 서울의 삶이 답답했던 차였습니다.
유럽의 관문인 이스탄불을 향해 발을 떼는 순간, 승무원 때보다 더 강력한 시즌2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높이 올라 함께 떠다니는 열기구 풍선들에 둘러싸여 있을 땐 모든 게 무지갯빛이었습니다. 멀리 서는 모든 게 다 아름다워 보였으니까. 그때는 우리들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은 혼돈 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꿈에 젖은 두 남녀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