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d your breath
내가 도대체 뭘 먹은 거지?
어느 날부터 혀가 검은색이었습니다. 죠스바를 절대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울퉁불퉁한 바위에 돌이끼가 꽉꽉 끼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혓바닥이 메마른 땅처럼 건조하고, 설모가 카펫처럼 털들이 곤두서서 까슬까슬하니 예민했습니다. 아픈 건 내 마음이었는데 혀가 병이 났네요. 내 혀에서 오래 방치된 나를 보았습니다.
캠핑장 계곡에 간적이 있습니다. 미끌미끌한 바위가 생각납니다. 미생물과 식물들이 덮어 원래 바위의 색을 잊고 자연에 몸뚱이를 내어준 돌덩이 말입니다. 잡초는 길어져 있고 처음 본 요상하게 생긴 들꽃도 맘대로 피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차갑고 축축한 곳엔 늘 이끼가 있었습니다. 내가 큰 바위를 삼키고 있었나 봅니다. 나에게 방치된 자연이 느껴졌습니다.
손톱으로 거무칙칙해진 혀를 긁어냈습니다. 축축한 곰팡이를 걷어내고 싶었습니다. 성이 나서 발그레해진 혀의 돌기에 피가 났습니다.
걱정과 불안함, 기대와 기다림에 뒤범벅되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지속하더니 속병이 난 것일까요? 독일 떠돌이 생활을 명랑하게 버텨내려고 애를 썼던 게 무리였을까요?
버텨야 한다고 날마다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짐들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필요한 짐들을 꺼내서 숙소를 이동하는 삶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나도 따뜻하고 맘 편히 집에서 살고 싶다고요.
맥도널드나 카페 화장실 말고 집에서 안전하게 볼일을 보고 싶고요!
화장실을 갈 수 있을 때 가야 하니까 보기만 하면 무조건 갔었습니다. 강아지들이 산책하다가 마크하는 것처럼 나는 화장실 가는 일에 예민해져서 방광염 걸린 것처럼 화장실을 자주 갔었습니다.
아무래도 입병이 낫지를 않습니다. 백태라는 하얀 이끼는 컨디션이 안 좋으면 노래졌다가 저녁에는 진한 갈색에서 검게 변했습니다. 혹설이라고 합니다. 온몸에 진액이 빠지는 느낌을 자주 겪었고, 이제는 나의 낭만 긍정주의도 한계에 이르러 화가 치밀었습니다. 소리 지르고 싶어도 참았고, 숙소의 가구들을 부수어버리고 싶은 몇 번의 충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고생하는 남편을 보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싸워봤자 싸움이 되지 않아 수도 없어 그 화를 혼자 삼켜 꿀꺽 삼켰습니다.
먹는 게 뻔하다는 생각마저 이르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나물과 고기,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 먹고 싶어도 갖춰진 주방이 없어서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집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유튜브 여기저기에서 아침에 사과 당근 쥬스를 마시라고 하길래 세계 어느 마트에나 다 있는 사과와 당근을 구해 매일 아침 갈아먹었습니다. 더 잘난 유튜브 선생님이 양배추를 넣으면 좋다든지 셀러리가 더 좋다고 하면 열심히 따라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생식을 하며 베지테리안이 되어갔습니다.
아포테케 (약국)을 갔습니다. 약사에게 “엔슐디궁~ (excuse me) ”하고 메롱하며 혀를 길게 내밀었다.
충분한 휴식을 갖고, 스트레스 받지말고, 술을 자주 먹지 말고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습니다. 저는 술을 안 먹는데요. 아니,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술을 안 먹는다고? 말이 되냐는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시원하고 고소한 논알코올 맥주는 마십니다.)
그리고 혀에 난 털, 설모가 긴 사람이 있는데, 음식물과 혀에 사는 미생물들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부패하거나 검게 변한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몸에 이상이 있는지는 약국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약사는 혀 클리너 쪽을 바라봤습니다. 왠지 특별해보이는 독일제 혀 클리너를 하나 사 들고
숙소로 오자마자 혀에 붙은 이끼들을 박박 긁어냈습니다. 털이 난 방향으로 혀뿌리부터 혀 몸통까지 쫙 밀고 옆으로도 반대 방향으로도 깨끗이 닦았습니다.
인생도 단맛과 짠맛을 번갈아가며 원하고, 쓴맛과 신맛은 피하다가도 즐겨찾는 음식이 있듯이 꿈과 이상 때문에 고생과 손해도 함께 동시에 겪습니다.
분명히 남편의 말에 의하며 모든 게 계획대로 되어 멋진 미래가 손에 닿을 것처럼 보이는데, 현실로 보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대로입니다. 나의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남편말만 믿고 살아도 되는 걸까? 내가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독일 보다는 한국에 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게 유리해 보였습니다.
진짜 고민은 내면에서 요동쳤습니다. 멋진 미래에 대한 약속과 현실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믿음이었습니다.
솔직히 결혼을 하고 부터는 남편이 잘되길 바라면서 내 일은 접고 편히 살고 싶었습니다. 남의 덕을 보려는 심보였지요. 그런데 번개를 맞은 듯이 정신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바라보지 말고, 내 힘으로 성공하는 게 더 빠르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나 남편은 원하는 걸 이미 다 이룬 사람처럼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결같이 흔들리는 나에게 희망고문을 합니다. 본인도 힘들면서 나를 위로해 주고 격려하며 일이 진행되는 과정, 독일 회사를 방문한 이야기, 독일 뉴스, 독일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두 나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독일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통역사. 기사, 환상적인 유럽여행 비디오와 오디오로 가이드가 되어 현재와 미래의 계획을 조잘조잘 말해주곤 했습니다.
삶의 안정에 대한 기초가 흔들릴 때, 노력을 하고 때가 되면 이뤄질걸 믿어야 했습니다.
부부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외국에 정착하려고 나왔으니 과녁이 휘어지면 안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음에 병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어려울 때, 최대의 적은 의심과 불신이었습니다.
우리가 독일에서 꿈을 이루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떤 삶의 방향과 목적으로 무엇을 위한 건지 깨닫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게 자녀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녀를 낳아야 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요일을 주말을 모르겠습니다. 눈을 뜨면 다음 날이 와서 좋은 소식들을 하나씩 기다렸습니다. 입사, 비자, 집 구하기, 월급 등…. 우리의 다급한 상황과는 다르게 언제 올지 모르는 답변을 기다리느라 하루하루가 합격을 기다리는 고시생 심정으로 절실한 삶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원하는 일이 바로 다음 날 이루어지지 않아도, 나는 계속 믿고 늘 응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했습니다. 믿음이 결국은 이길 거니까요.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우리에게 언제는 뭐가 있었나요?
Love wins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