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터키의 하루

Lost and Found

by 강윤선


어두워지자 허기가 느껴졌습니다. 나는 어떤 재료를 주든 한국 음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것이 나의 일입니다. 전기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입병이 낫지를 않아 고기를 사러 갔습니다. 독일 식자재 마트는 세계 최고라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삼겹살을 구워 먹었습니다. 아직도 독일 돼지고기 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파리가 몰려듭니다. 독일은 한국보다 파리가 많은

거 있죠? 파리를 피해 어수선하게 고기를 먹고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여름이라 저녁 7시인데도 밖이 대낮입니다.


숙소 주변을 따라 걸으니 풀과 들꽃이 가득한 들판을 지나 평화롭고 그림 같은 주택가가 나타났습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동네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저녁에 집 안에만 있나 봅니다. 소음도 없고 고요한 세트장 같은 독일 주택가는 저마다 개성과 정성을 다해 가꾼 집주인의 취향이

가득 묻어있습니다.


여러 동네를 찾아다니며 지내다 보면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다가 보니 멀찌감치 벌판에 양 5마리가 있었습니다.

멍하니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며 심심하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전기가 통하는 실 같은 줄로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게 전부입니다. 조금씩 양과 눈이 마주칠 정도로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얼굴은 아기 송아지인데 몸이 양털로 덮여있고, 눈은 동그란데 눈동자가 납작합니다.

양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양은 눈이 안 좋은 데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귀도 안 좋은데도 우리 노래가 좋은지 양의 귀가 움직입니다.


아이엠어 찐터키 빰빠빰빠빠
아이캔 톡~ 톡톡톡~~
아이엠어 찐터키 빰빠빰빠빠
아이 메이크어 프렌드 에브리데이~
아이엠어 찐터키 빰빠빰빠빠


양 한 마리가 슬그머니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귀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62260. 주인이 있는 양입니다. 한 마리가 움직이니 다른 양들도 서로 꽁무니를 좇아, 줄줄이 따라왔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던 애들이 우리 앞에까지 용감하게 와놓고 애꿎은 풀만 뜯어먹었습니다. 순식간에 시골 소녀로 몰입했습니다. 우연히 만난 양 5마리에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이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유일한 재밋거리가 생겼습니다. 내 마음이 양털처럼 몽글몽글 포근해졌습니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일상을 꾸려갔습니다.

밤이 되자 숙소로 사람들이 귀가했습니다. 복도 센서 등이 유리창 사이로 켜졌다 꺼졌다 반복했습니다. 벽 너머로 독일 뉴스 소리를 예민하게 엿듣다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창문으로 강한 햇살과 새소리, 매미 소리가

들렸습니다. 방안의 풍경은 또다시 단조롭고, 시골 숙소에서 트럭 아저씨들과 고립이 시작되었습니다.

본능에 충실한 단순한 삶을 사니 자주 배가 고팠습니다.

이번에는 마트에 가서 어제보다 과감하게 돼지 등갈비와 소꼬리도 샀습니다. 그리고 계산대 옆에 있는 1유로짜리 파리채도요. 파리 때려잡는 시늉을 하며 스냅력을 테스트하다

날 보며 웃고 있던 독일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네요.


일요일이라 공장 주변이 조용합니다. 양들을 보러 산책하러 갔습니다.

오늘은 4 마리네요? 다른 한 마리는 어디 갔지? 잡혀갔나? 팔려간 건가?

뿔에 줄이 엉켜 쓰러져 있었습니다. 줄에 엉켜 휘감긴 채로 얼마 동안 저러고 있었을까요?

눈을 감고 거친 숨을 빠르게 쉬는데 저러다 죽겠다 싶었습니다. 양을 꺼내야 하는데 허술하다고 얕잡아보던 전기가 흐르는 가느다란 선을 못 넘어갔습니다.

들판 앞에 공장이 있는데, 일하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양주인인지 물었더니 폴란드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산책하다 소방서를 본 적 있었습니다. 소방서로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빠를 거 같았습니다.

오늘 일요일인데 소방서는 일하겠지?

소방서에 도착했는데 입구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소방서 인터폰을 눌러도 응답이 없네요.

주유소에 가서 소방서에 전화를 하자.

문신한 주유소 직원에게 양 이야기를 하고 핸드폰으로 112에 신고를 했습니다.

양이 있는 곳이 어느 들판인지 최대한 큰 건물 위주로.

사고가 접수되었으니 소방수들이 곧 출동할 거라 했습니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큰 소방차가 2대나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고해서 오는 소방차인가 봐.

신고한 지 3분도 안 되었는데도요.

오빠, 양 1마리가 죽어가고 있다고 한 거 맞지?

왜 이렇게 많이 온 거야?

저 소방차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양 있는 곳으로 안내해야 해!

전력 질주로 소방차를 따라갔습니다.

저희가 신고한 사람들이에요.


7명의 소방수, 2대의 소방차. 불이 난 것도, 인명 피해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출동을 했을지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양 한 마리일 뿐인데 괜히 오지랖을 떤 걸까요? 위험에 처한 상황을 보고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마음이었습니다.

소방대원들은 전류가 흐르는 선에 전기를 차단하고 넘어가 양의 뿔과 몸에 엉킨 그물을 절단기로 잘랐습니다. 누워있던 양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남편은 독일 소방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운 일요일 출동한 소방수들에게 존경을 표했습니다. 오히려 생명에

크고 작은 일이 어딨겠냐만 신고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소방차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업단지 어느 모텔에 등장한 한국인 중년

부부가 때마침 그 주변을 산책하다 양을 구하다.’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에 때마침 지나간 우리들, 적재 적시에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양들과의

한바탕 구출 작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세 코를 골고 곯아떨어지는 남편과 평온한 밤을 맞이했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최종 면접을 본 독일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드디어 출근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직장이 정해져야 정착할 동네를 정하고 집을 구해야 했을 일인데, 우리는

이제 이 숙소를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짐을 챙겨

떠나기로 했습니다. 냉장고를 비우는데 마트에서 산 배추를 보고 양들이 생각났습니다.

양들에게 인사하고 가자.

자, 여기 배추 먹어봐 봐.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니 어머, 우리를 알아보는지 바로 옵니다.


얘들아, 우리 이제 여기 매직캐슬 졸업해. 잘 지내,

양들이 매헤헤헤헤 소리를 낸다. 우리가 구해준 뿔이 멋지게 난 녀석은 잘 지내 보였습니다. 자기를 구해준 은인을 알아보고 오늘따라 할아버지 같은 기침까지 하며 쉰 소리를 냈습니다.

유독 가장 먼저 우리에게 오곤 했던 62260이 나무에 몸을 비비며 멀어져 가는 우리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습니다.


캠핑카를 타고 독일 곳곳에서 자고 일어나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것만 같은 시간이 기적이었습니다.

나는 그 오래된 주택가, 들판, 강, 하늘, 양, 이런 단어들로 꿈 찬 유럽의 나날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끓어 넘쳤습니다. 내 삶이 뭔가 확실히 간명해지고 잡음 가득한 주파수들이

삭제되어 갔습니다. 단조로운 생활에 균형을 점차 잡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