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mad Spirit
다른 직업을 만났어도 네덜란드 드래곤은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캠핑카 업계에 목숨을 건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현재 캠핑카 시장의 상황을 보러 독일에 온 거라며 스스로도 업계의 비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업계의 가능성을 검증해 가면서 남편은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문을 두드렸습니다. 새로운 독일 회사와의 미팅은 단지 작은 도전의 언덕이었습니다. 언덕에 올랐을 때 잠시 부는 시원에 바람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더 높은 언덕을 올라탔습니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한국인이 독일 캠핑카 회사에 취업을 하여 오스트라이와 스위스 지역의 영업을 맡았다는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남편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데 탄성이 샘솟았습니다. 남편을 위해 외국에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덕이 쌓이니 산이 형성되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스타트업 위주로 다녔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고, 새로운 변화와 시도에 유연한 회사들은 열린 자세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커피도 마셔가며 업계가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업체들은 남편에게 마음을 열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니즈를 알게되었고 문제점과 현실, 수익 구조도 유튜브에서 보던 내용이 아닌 찐 현실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독일의 소도시부터 스위스 대도시에 있는 캠핑카 개조공장 업체들을 함께 방문했습니다.
다양한 컬러와 모델의 캠핑가들이 서 있는 주차장을 지나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번드르르한 도장과 크롬 도금이 햇빛을 받아 캠핑카들이 멋지게 빛났습니다.
찰랑거리는 열쇠 꾸러미 소리를 따라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차량 리프트와 플라스틱 경사로를 갖춘 개조 공장에 들어섰더니 나무 냄새가 납니다. 캠핑카에 들어가는 가구를 제작 중이었습니다. 만져봐도 좋다고 해서 가구 서랍 버튼을 눌러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 열어보며 부드럽게 열리는 느낌에 나 혼자 합격을 외쳤습니다. 남편은 의자를 침대로 만드는 기술에 대해 관심을 보였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레일을 끌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나 천장에 머리가 닿는지,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탄력성에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독일어로 차량에 대해 이야기하는 직원의 손짓과 손가락 방향으로 내 시선도 정신없이 이동했습니다.
기름때가 묻은 올인원 작업복을 입고 작업하는 앤지니어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맞춰 휘파람 소리가 났습니다. 빠르다가 느려지는 전동 드릴 소리가 노동 현장에 힙스터 다웠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에어 호스와 벽을 따라 플라스틱 상자가 정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너트, 볼트, 소켓, 드릴, 나사들, 무시무시한 랜치, 스크루드라이버 같은 무겁고 차가운 도구들이 한눈에 찾기 쉽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작업 공장은 생각보다 먼지하나 없이 깔끔했습니다. 바닥에 누워 차를 손보는 정비가사 자동차 아래 낮게 깔려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독일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꿈과 이상을 향해 공든 탑을 오를 때도 무너질 것에 겁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남편과 같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외향적인 성향이 있었다면 크게 성공했을 겁니다. 내게 필요한 건 선입견이 없는 용기라는 걸 남편을 통해 알았습니다.
남편에게 바닥을 다진다는 것은 그물망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었습니다. 독일에 인맥이 없으니 아날로그 영업 방식으로 손으로 발로 뛰어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을 서슴지 않고, 어떤 사람이라도 찾아가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설득했습니다.
그물을 묶고 엮어서 탄탄하게 만들어갔습니다. 넓고 견고하게 만들어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유럽 캠핑카 시장에 발을 내디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