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에겐 꿈보다는 집입니다. 튀르키예와 독일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이스탄불로 이사를 하면서 남은 건 트렁크 가방 4개와 이민가방 2개가 전부였습니다.
이스탄불에서 5개월을 호텔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살기 괜찮은 아파트 월세를 찾았는데 1년 후, 독일로 무작정 갔습니다. 직장이 있어야 그 비자로 집을 구할 수 있기에, 취업할 때까지 또다시 호텔과 캠핑장을 옮겨 다니는 생활이 길어졌습니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짐들을 독일 뒤셀도르프 대형 창고에 맡겨두고 유랑생활을 3년간 했더니 집의 중요성을 처절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좌충우돌 외국 생활을 말하면 길어질까 봐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상황을 이야기하면 걱정이 컸을 텐데 영상은 재미있게 보셔서 어쩔 수 없이 유튜버가 돼버렸습니다. 어느 날, 나처럼 부모님도 복잡해질까 봐 말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단 걸 알았습니다.
마포에 아파트를 팔기로 했어. 서울에 좋은 아파트를 전세 끼고 사봤자,
돈 없어서 그 집에 평생 살지도 못할 바엔, 그거 팔아서 대출 갚고, 경기도에 아파트 사는 게 나어.
내 주머니에 현금이 최고야.
아빠,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계약 아직 안 했죠?
계약금 어제 받았어. 집 내 놓은지 4시간만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어. 계좌번호 달라고.
뭐라고? 그 중요한 집 문제를 왜 나한테 말을 안 하고 혼자 결정했어요? 아빠, 받은 계약금 다 돌려주자, 2배를 물더라도 계약 취소해야 해. 지금은 팔면 안 돼요.
됐어. 너무 늦었어. 배액 배상할 돈이 어딨어. 저질러진 일이야. 중도금도 곧 받아.
내가 외국에서 전화로 울며불며 난리 쳐봤자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계약을 취소해서라도 그 집을 다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팔고 나서 6개월 만에 8억이 오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오늘날의 서울 아파트는 가지고 있으면 과연 영원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일까요.
인생의 산 중턱에서 위기와 기회를 만났습니다. 애써 모은 자산의 배를 갈라 푸드덕 꽥꽥 날아가 버리지 않았다면 무관심으로 서로 미루다 누구라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원망하며 살았을 뻔했습니다.
‘아니, 왜 그동안 나한테 아무도 부동산에 대해 안 알려준 거야?’
나는 부를 어떻게 이루고 지키는지 부동산에 눈을 떴고, 도를 닦듯 공부했습니다. 학교에서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인제야 혹독하게 배웠습니다.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자산을 지키는 방법을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르고, 급지에 따른 집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자산을 지키고 늘리는 방법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집만 없어졌지, 소중한 가족은 그대로 곁에 있음이 감사해서 더 이상 속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넘치지도 않게, 부족하지도 않게 쓸 만큼만 채워지는 인생입니다.
남편의 성공이 나의 꿈이라고 믿고 싶었던 환상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습니다. 남편을 독일에 혼자 두고 비행기를 타러 가는 마음이 홀가분하면서도 비장했습니다. 왕복 티켓을 샀지만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면 살 집도 없는 벼락 거지가 될까 봐 노후에 살 집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독일을 떠났습니다.
내가 먼저 터를 잡은 쭉쭉 뻗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모담산자락의 꽃봉오리가 움텄습니다. 집 앞에 살얼음이 녹아 인공폭포가 졸졸 흐르는 3월에도 남편은 한국에 오지 않았습니다.
날이 좋으면 혼자 맨발 걷기를 하러 산자락에 오르곤 합니다. 푸석푸석했던 검은 나무에 초록 이파리 기운이 돕니다. 곧 터질 듯한 여드름이 봉긋한 청춘처럼 올라왔네요. 땅 내음과 숲 공기가 온몸에 확 퍼졌습니다. 무기력을 깨려고 큰 맘을 먹고 산책을 나왔어도 내려올 때는 아리도록 차가운 땅에 찌릿찌릿한 현실의 무게감을 느낍니다. 지렁이를 밟은 듯한 물컹한 우울함에 무거운 맘으로 집에 가곤합니다.
남편은 독일에 있은 지 오래입니다. 나의 일상생활을 카톡으로 공유하며 하고 싶은 말을, 간직했던 생각들을 정황 없이 하소연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지요. 독일에서 같이 지낼 때는 생활방식의 차이점을 가늠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격차는 무한대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남편이 독일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을 조용히 응원해 봅니다. 남편도 독일에서 혼자 지내기 힘이든지, 나 때문인지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곧 가겠다고 합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어서 한국에 와서 같이 있자고 구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중한 경험을 소중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 툭툭 떠오릅니다. 추억의 단편들, 자동차 여행, 이국적인 느낌의 장소들, 수많은 난관의 감정과 감동의 순간들, 전화를 걸기에 또 시차가 맞지 않는 밤에 기도하게 되는 네덜란드 드래곤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