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가 먼저 느끼는 피로감
나는 인도에 온 지 약 넉 달 정도 된 따끈따끈한 인도 새내기다.
내가 처음 인도에 왔을 때 한국에서 이삿짐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처음 왔으니 당연히 친구도 없고 아직은 여행자 모드일 때라 혼자 매일 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밖에 나갔다 오면 이상하게 더 기분이 가라앉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몇 달 살면서 내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인도라는 나라는 어느 정도 살아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보다 시각과 청각으로 먼저 그 충격이 다가오는 곳이기 때문인 것 같다.
너무나 명확한 빈부격차
고급 아파트 단지 문을 나서면 거지들이 있는 곳
14억 2,862만 명의 인구로 인구수 세계 1위를 차지한 인도. 영광스럽게도 내가 인도에 오고 나서 중국을 제치고 1위를 했다. 사람이 많은 만큼 그 안의 삶들도 당연히 너무나 다양하다. 빈부격차는 거리를 조금만 다녀 봐도 느낄 수 있다. 내가 매일같이 드나드는 쇼핑몰 앞에는 늘 보이는 거지 아이들과 거지 노인이 구걸한다.
인도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나라로 치자면 좀 규모가 작은 갤러리아 명품관 같은 쇼핑몰을 우연히 구경하게 되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건물이었는데 한 건물 안에 무려 에르메스랑 샤넬이 둘 다 입점되어 있었다. 인도에 이런 럭셔리한 곳도 있네! 하고 느꼈던 곳. 그 당시만 해도 내가 뭘 잘 몰랐다. 인도는 정말 큰 나라라 인도 부자는 서울 인구보다 많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 옆의 길거리에서는 제대로 된 작업복도 장갑도 없이 땡볕에 맨손으로 일하는 인부들을 볼 수 있다. 앞의 쇼핑몰과 너무나 차이가 나는 풍경. 럭셔리한 쇼핑몰을 구경한 후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앉아 방금 내가 샤넬 매장에서 봤던 가방이 눈에 아른거려 상념에 잠겨 있는데 거지가 창문을 두드리는 곳이 인도다. 그럴 때면 불과 5분 전까지 내가 있었던 럭셔리한 곳과 구걸하는 거지의 모습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 순간적으로 아찔할 때가 있다. 대부분 그 두 가지 풍경을 하루에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정신적 피로감은 생각보다 크다. 인도는 한마디로 중간이 없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늘 볼 수 있는 풍경이라 함은 주거지에서는 깔끔한 아파트 단지, 그 단지 앞에 들어선 상가 건물일 것이고, 회사가 많은 지역에서는 오피스 빌딩숲과 그 앞에 늘어선 식당과 카페일 것이다.
이렇게 예측 가능하고 획일적인 한국의 풍경이 재미없다고 느꼈었지만, 아직 외국 살이에 익숙하지 않은 지금은 그런 풍경이 나에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줬는지 깨닫게 된다. 그와 동시에, 얼마나 많은 가난한 인도 사람들이 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인도 길거리
내가 사는 곳은 인도에서도 아주 깨끗하고 좋은 동네에 속한다. 그렇지만 내가 주로 다니는 곳의 길거리는 대체로 지저분하고 늘 시끄럽다. 쓰레기 많고 개도 사람도 많고 자동차랑 릭샤는 더 많고 그러니 먼지도 정말 많다.
그뿐인가. 교통질서라고는 전혀 없다.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자동차들은 일상이고 수시로 역주행을 한다. 사고 나면 안 되니까 평소보다 경적을 더욱 시끄럽게 울려대면서. 그 사이로 소떼들이라도 지나갈라 치면 그 자동차와 릭샤의 물결이 홍해처럼 갈라진다.
처음에 왔을 때야 관광객 모드 장착해서 이것들이 신기했지,
계속 살아야 되는 지금은 이런 풍경이 좀 피곤할 때가 있다.
이것들에 익숙해질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 같다. 마치 내가 16년 동안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 출퇴근했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던 것처럼. 한국에서 힘든 점이 사람 가득한 출퇴근 대중교통이었다면, 인도의 힘든 점은 지저분함과 시끄러움일 것이다.
나이 마흔 넘어 외국에서 친구 사귀기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가족들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한국에서는 평일엔 회사 다니고 주말엔 가족과 함께 하느라 평소엔 친구들을 만나기도 힘들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 절실했다. 일하면서는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딱히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가까워졌다.
처음 인도에 왔을 때 가족 말고 따로 만날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몸소 겪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충격적이었다. 어딜 가서 누구를 사귀고 만나야 하는지 학창 시절 신학기 이후로 해 본 적 없는 고민을 거의 20년 만에 다시 하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특히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경험하고 온 날에는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 정확히 말하면, 외국 살이의 고단함을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위로해 줄 친한 지인이 없어 답답했다. 그리고 이건 인도라서가 아니라, 아마도 모든 외국 살이의 공통점일 것이다. 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는지 외국에 와서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다.
익숙하지 않은 이곳의 삶에 공감하고 '너만 힘든 게 아니고 다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 하고 위로해 주는 그런 관계가 외국에서는 매우 필요한 것이다.
적응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인도는 지금 우기가 시작되었는데 비가 단시간 안에 많이 쏟아지면 길거리의 물이 쉽게 빠지지 않는다.
그러면 땅 속에 있던 온갖 벌레와 쥐들이 출몰하는데... 아침 운동길에 그런 광경을 봐도 그 시각적 충격이 주는 생소한 우울함에 나를 오랜 시간 가둬 놓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정신은 갖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방심하지 않으련다.
또 어떤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그 충격도 잘 흘려보낼 수 있게 더 정신을 무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