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중독
인도가 흙먼지와 쓰레기, 경적 소리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인도가 주재지로 결정되었을 때 심란해하던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아이가 어릴 땐 오히려 선진국보다 인도 같은 나라가 더 나을 수 있어. 선진국으로 가면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구경 다니기 좋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겠지만 운전, 살림 등은 다 네 몫인데 인도 가면 기사가 운전해 주지, 살림은 메이드가 해 주지 너는 그냥 놀기만 하면 돼. 즐겨."
몇 달 살아 보니 친구 말처럼 기사와 메이드는 인도 생활 최고의 장점이다. 그들은 내 인도 생활의 완벽한 조력자, 삶의 동반자이다.
그 외에도 인도라서 좋은 점 몇 가지를 자랑해 보려고 한다.
기사와 함께라면 차 막힘, 주차 걱정 NO!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아이를 데리고 멀리 간다거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다.
교통 체증과 주차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연히 출퇴근도 대중교통으로 했다.
인도에서 외국인들은 현지의 험한 운전 문화, 운전석 위치 등의 이유로 거의 대부분 기사를 고용한다. 우리도 기사를 고용했다.
기사가 있어 좋은 점은 막히는 길을 장시간 힘들게 운전하지 않아도 되고, 주차 공간 찾아 빙빙 돌지 않아도 되며, 기사가 집 문 앞에서 태워서 목적지 코 앞까지 데려다 주기 때문에 차를 직접 운전해서 다닐 때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절약된다. 운전에 체력을 뺏길 필요도 없다. 밖에서 식사하다 술 한잔씩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다.
단, 믿음직하고 성실한 기사를 만난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가정에 평화를 선사하는 메이드
기사도 좋지만 주부의 입장에서 인도 생활 최고의 장점을 꼽자면 단연 메이드다. 거의 모든 집안 살림에서 해방된다.
한국에 살 때 나는 청소와 요리, 남편은 빨래와 설거지 담당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저녁때 퇴근하면 아이 챙기고 재우기 바빠 청소는 당연히 매일 하지 못했다.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는 날이면 자기 전에 청소기 한 번 겨우 돌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빨래도 마찬가지였다. 빨래는 주말에 한 번 밖에 못하므로 일주일 치 이상의 속옷과 겉옷이 필요했다. 주말이 가까워 오면 빨래 바구니는 쌓여 있는 옷들로 터져 나갔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누가 더 집안일을 먼저 시작하는지, 각자 맡은 집안일을 책임감 있게 완수하는지 남편과 신경전을 벌였다. 주말 반나절 정도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했고, 주말 일정이 바빠 어쩌다 집안일을 스킵한 날 집안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 집안꼴을 보며 스트레스가 쌓였다. 너무 힘들고 쉬고 싶을 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사도우미 도움을 받았지만, 저렴한 가격은 아니라서 부르기 전에도 항상 망설였다.
인도에서는 한국에서 가사도우미 서너 번 모실 비용으로 주 6일 파트타임 메이드를 구할 수 있다. 그보다 돈을 좀 더 주면 하루종일 깨끗한 집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상주 메이드를 둘 수 있다.
우리 집에 오는 메이드는 7시 반~12시까지 일하기 때문에 나는 보통 저녁 먹은 그릇들은 씻지 않고 싱크대에 쌓아 둔다. 그러면 메이드가 그다음 날 출근해서 설거지하고 부엌을 말끔하게 정리해 준다.
그뿐만 아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화장실 변기 청소도 매일, 청소기 돌린 후 스팀 걸레질도 매일, 여기저기 널브러진 장난감도 매일 정리해 준다. 오전 운동을 마치고 말끔히 정리된 집안에 들어섰을 때의 청량감이란! 집안이 늘 깨끗하니 기분이 좋고, 청소로 쓸데없이 힘 빼지 않아도 되며, 남편과 싸울 일도 없어진다. 놀아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를 뒤로 하고 허겁지겁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메이드는 정말 혁명적인 평화를 우리 집에 선사해 주었다.
값싸게 누리는 과일 채소 호사
인도가 산지인 과일과 채소는 정말 가격이 싸다. 심지어 유기농은 유기농 아닌 것과 가격 차이도 별로 없다. 인건비가 워낙 싼 나라이니 농약 구매하는 비용보다 사람이 벌레를 직접 잡는 비용이 더 싸서 별 차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식탁에 매일 올라오는 토마토는 지금 시세 기준으로 1kg에 800원, 양파 500원, 감자도 500원 채 안 한다. 모두 유기농 기준. 처음 인도에 왔을 때 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웃음이 나왔다. 천 원 이하의 가격으로 뭔가를 살 수 있었던 경험은 초등학교 이후엔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인도는 망고철인데 종류에 따라 가격은 좀 다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케사르 망고와 사페다 망고는 1kg에 1600원 정도다. 내가 매일 먹는 파파야는 1500원 정도면 꽤 큰 놈을 살 수 있다. 아이가 잘 먹는 인도 산지의 포도 중 Green Sonaka라는 새콤한 맛의 포도가 있는데 이것 또한 큰 송이 하나에 1500원 정도다. 이 또한 한국이라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 한국에서는 소량 사는 게 오히려 비싸서 대량으로 샀다가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가격 부담이 없으니 조금씩 자주 사서 싱싱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우리 기사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줄 때, 메이드가 엉망이 된 부엌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식재료를 다듬어 줄 때 나는 편안함과 동시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얻는 혁명적인 편안함에 비해 내가 지불하는 비용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우리 기사는 고향을 떠나 일하면서 가족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낸다고 하던데 이 돈으로 그 가족들이 먹고살 수 있다니 인도의 빈부차가 너무나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인도의 노동 인구 80%가 서비스직 종사자라고 하던데 그 많은 인구가 메이드, 기사, 일용직 인부들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라에 중산층이 많아지려면 좀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제조업과 같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하는데 인도는 아직 그러한 전환점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조업 일자리가 생기려면 상하수도, 통신, 도로 등 사회 기반 시설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인도는 그런 기반 시설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많다. 그 기반 시설은 세금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인도에서 세금을 내는 인구는 전체 노동 인구의 1% 밖에 안된다고 한다. 세금을 내는 기준은 연봉 50만 루피(=약 795만 원)인데 인구의 99%가 연봉 50만 루피 이하의 사람들이다.
이렇게 편안한 생활의 일면에는 인도의 엄청난 빈부 격차가 있는 것이라 때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지만,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편히 살고 있으니 모든 것엔 역시 양면이 있다. 험지로 간다고 걱정했던 내 가족, 지인들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인도도 생각보다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