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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Jun 26. 2023

인도에서 길거리를 걷는다는 것

전적으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인도에서는 정말 여자 혼자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나요?" 


 인도에 산다고 하면 받는 단골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질문의 배경에는 아마도 세계 뉴스나 유튜브 썸네일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강간 천국' 등의 자극적인 타이틀이 한몫했으리라.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는 내가 어느 지역의 어느 거리를 걷느냐이다. 불과 몇 주 전에도 나는 델리 지역에서 어떤 소녀가 수십 차례 칼에 찔려 죽어가는 데도 지나가던 사람 어느 누구도 구하려고 나서지 않았다는 타임즈 오브 인디아의 기사를 읽었다. 

내가 사는 곳의 한 길거리. 군데군데 늘 공사 중이고 흙더미가 쌓여 있지만 그래도 인도(Pedestrian Way)가 있다. 

 나는 주재원 가족으로 인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정해진 동선에서만 움직이는 편이다. 즉 나는 여행자가 아니기 때문에 혹시라도 위험할 수 있는 지역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이곳에 산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인도는 여행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내 기준에서 여행하기 좋은 곳은 어느 곳에서나 접근 가능한 편리하고 안전한 대중교통 시스템이 있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깨끗한 보행자 도로와 같이 사회 기반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 그리고 여행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정도(적어도 낮 시간 만이라도)의 치안이 보장된 곳이다.


 인도는 불안한 치안, 계급 사회에서 비롯된 지역별 격차 등을 차치하고라도, 보행자 도로가 제대로 깔려 있지 않은 곳도 많다. 깔려 있는 보행자 도로조차 늘 어딘가 공사 중이거나 흙더미가 쌓여 있거나, 중간에 끊겨 있다. 심지어 내가 사는 곳에서는 종종 이런 설치물도 볼 수 있다.  

차나 오토바이가 인도에 들어오지 말라고 설치해 놓은 모양이다. 

 처음 이 설치물을 보고 나는 그럼 도대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나가란 것인지, 우리나라 거리만 유모차 친화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인도는 한참 멀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살다 보니 이런 내 생각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인도에서 유모차를 끌 경제적 수준이 되는 사람들은 이런 길거리를 도보로 절대 돌아다니지 않는다. 아마 자동차에 유모차를 실어 쇼핑몰이나 식당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깨달은 바 한 가지 더. 이런 설치물이 있을 수 있는 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경제적 수준이 높아서일 것이다. 그만큼 세금을 낼 수 있는 인구는 타 지역보다 많을 것이고, 그러면 보도블록을 깔고 이런 설치물을 깔 예산이 그만큼 더 확보되는 것이다. 얼마 전 다녀온 아그라에서 그 수준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아그라가 있는 우타르 프라데시주는 생활 수준이 전국 평균 이하인 인도에서도 어렵게 사는 주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그 유명한 타지마할로 가는 길에서도 제대로 된 보행자 도로를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어디 보행자 도로 뿐인가. 인도에는 제대로 된 횡단보도도 찾아보기 힘들다. 당연히 보행자 신호등도 없다. 내가 큰길을 건너려면 차도 가득히 밀려오는 자동차와 릭샤 무리를 향해 용감하게 수신호 하며 쏟아지는 경적 세례 속에 현지인들과 함께 재빨리 건너야 한다. 좁은 길은 좁은 길 나름대로 다니기 힘들다. 내 지인은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좁은 길에서 소를 만났는데 소가 전혀 비키지 않고 직진해 와 그 뿔에 치일 뻔했다고 한다. 내 몸집보다 몇 배나 큰 동물이 나에게 돌진해 올 때의 그 공포감이란. 얘기로만 전해 들었는데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었다. 

바라나시 뒷골목을 점령한 소들. 실제로 보면 소는 정말 크다. (이미지 출처: 필자의 동생)

 나의 인도 문화 이해 길라잡이인 강성용 교수님의 '남아시아 인사이드'에 따르면, 인도에서 세금을 낼 수 있는 인구는 전체 노동 인구의 1%, 연봉 50만 루피(=약 795만 원) 이상인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엄청나서 세금을 낼 수 있는 인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얼마 전 너무나 비극적이었던 오디샤 열차 충돌 사고도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철도 시스템의 안전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해 생긴 인재라는 평이 많았다. 그런 보수 예산은 다 세금에서 나오는 것인데 하물며 동네의 보도블록은 말해 무엇할까. 


 그래서 "인도는 과연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에 위험한가" 하는 질문에는 불안한 치안 때문도 있지만, 사회 기반 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에 여자는 물론이고 현지인들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대답이 좀 더 현실에 가까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보행자 도로가 깔려 있어 나는 가까운 거리는 매일 걷는 편이다. 그러나 길거리를 걷는 나 같은 외국인 여성은 없다. 대부분이 공사 인부, 메이드나 내니로 추정되는 옷차림의 여자들, 릭샤꾼, 그리고 홈리스들이다. 여기에서 한 번 더 인도의 빈부격차를 느낄 수 있다. 


 나의 튼튼한 두 발로 깨끗하게 잘 닦인 보행자 도로를 매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인도에 와서야 깨닫는다. 월급명세서를 받아볼 때마다 떼어가는 세금은 왜 이리 많으며 그 돈 대체 다 어디다 쓰는 건지 억울했는데 깨끗하고 안전한 보행자 도로, 거미줄보다 더 복잡하게 뻗어 있어 어디든 갈 수 있는 편리한 지하철, 동네마다 있는 공공 도서관 등 그 혜택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인도에는 인도가 없다'는 그 말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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