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만든 청국장
– 책이 온다
적어놓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떠올려내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럴 때는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로 도저히 위로를 삼을 수가 없다. 창조는 개뿔, 모방은 영원한 모방일 뿐이다.
책이 오늘 중으로 도착할 것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며칠 전에 주문한 책들이 집으로 오고 있다. 전자책이라는 신종 발명품이 생긴 이후로 책에 대한 갈증을 상당 부분 덜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갈증은 여전하다. 충분히 해갈되지 못한 갈증은 이전보다 더 심한 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기다리던 책이 온다는데 불평으로 이리 자지러져도 되는 건가. 전자책이 발행되기 전의 불편함과 아쉬움을 그새 잊고, 이것조차 노인성 기억불량으로 덮어씌우려니 조금 찔린다.
전자책 발간을 기다리다, 결국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종이책을 주문했었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발행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서화집이나 시집은 전자책 발행을 하지 않는다. 이건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일반 도서의 전자책은 발행이 늦거나 아예 발행되지 않기도하는데 그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살던 곳에서 한 시간 운전거리에 한국 서점이 있었다. 규모가 제법 컸다. 한국 슈퍼마켓이 있는 큰 상가 건물 안에 따로함께 들어 있었다. 장 보러 갈 때마다 들렀는데 이래저래 편리하고 좋았다. 책값은 정가의 2배가 넘는 금액이어서 적잖은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감사했다. 인쇄향 품은 신간 냄새를 맡고, 칼칼한 종이를 넘기며 책을 훑어보는 그 맛은 서점에서만 가능하다.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방식으로 일정 부분의 퍼센테이지를 적용해서 책값을 할인해주기도 했었다. 서점은 그리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온라인 서점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해외카드를 지원하는 플랫홈들이 등장하면서 해외 거주자들의 한국책 구하기가 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코로나 시절 이전에는 우체국 배송 뿐만 아니라 다른 배송사를 고를 수도 있어서 배송의 선택 폭이 넓었었다. 지금은 우체국 배송만으로 제한되고 있으며 대형 서점들에서도 해외 배송을 하고 있다. 이 한국 서점의 폐업은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활발한 해외 배송업이 가장 큰 원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전자책의 유무를 먼저 확인한 다음에 종이책을 주문한다. 최소한 5권 정도를 주문하는 것이 배송비를 절약하는 방법이다. 지금 나에게 오고 있는 책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쓴 책도 있다. 책을 쓴 작가와 친분이 있다는 자랑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한 분이다^^)
– 글을 쓴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고 한다. 이 말은 누군가에게 읽힐 지도 모를 불안감 때문이거나 혹은 타고난 글쟁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진실보다 거짓이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전제로 아주 영리하거나이다. 나는 일기장이 타인에게 읽힐 것을 염려했던 사람 중의 하나다. 일기장에 거짓말을 쓰는 대신 암호를 만들어서 일기를 썼던 시절이 있었다. 모르스 부호를 알았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지금도 모르는 것을 그때 알았을 리는 만무하다. 자음과 모음을 내 마음대로 뒤집고 엎어서 난생 처음 보는 글자를 만들어 적었다. 세종대왕이 무덤에서 튀어나와 땅을 치고 통곡할 만한 글자를 나도 창제했었…….….다.
제럴드 다이아몬드가 그의 책 ‘총균쇠’에서 한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다음은 책의 중반부 쯤에 한글창제에 관한 그의 글 중 일부다. ‘1446년에 한국의 세종대왕이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창제한 한글이란 문자는 정사각형을 띤 중국 한자와, 몽골문자나 티베트 불교식 문자의 알파벳 원리에서 영향을 받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한글 자체字體의 형태와 한글에만 존재하는 몇몇 고유한 특성을 만들어냈다......(중략)......한글과 오검문자는 고립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발명된 문자가 아니라, 아이디어 전파에서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하다’
모방은 영원한 모방일 뿐이라고 외쳤던 좀전의 입찬 소리는 취소!
내가 만든 암호에도 나름의 규칙은 있었다. 아무튼 이 암호쓰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간첩 접선하는 암호였다면 모를까 일기는 그날 혹은 순간의 느낌과 생각을 적는 일이다. 생각이 종이에 가 닿기도 전에 증발되는 현상이 생겼다. 간신히 문장 몇 개를 만들어봤자 나조차도 헷갈리게 하는 암호투성이들. ‘종이는 하얗고 글자는 검다’는 문맹을 직접 경험한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심기가 사나워지고 심사가 뒤틀렸을 때 그리고 살기가 싫어졌을 때 주로 일기를 썼다. 수면제 100개를 모아놓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일기장 태우기였다. 내가 만든 암호가 아니라 세종대왕의 글자로 써놓은 일기였다. 후에 댄 브라운의 소설들을 섭렵했다. 한때 내게 너무 절실했던 암호(기호)가 소설마다 들어 있었다. 그의 책에 빠져들었던 까닭이 암호 때문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그때 일기장에다 적는 내용이라는 것이 나라를 엎는 역적모의였을 리가 없고 살인을 계획한 범죄였을 리도 없는, 고작해야 무능한 유물론자 아버지를 성토했거나 운동화를 빨아주지 않은 언니를 욕했거나 또는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성징들에 관한.. 뭐 이런저런 비밀 아닌 비밀들을 끄적인 게 다였을 것이다. 암호 일기를 썼던 그 어린 것이 갑자기 귀엽고 당차게 느껴진다. 암호 학자로 키워볼 걸 그랬나?
– 예뻐진다
몇 년 전에 사진 정리를 했다. 종이로 된 부모님 사진과 내 사진 모두를 전자사진으로 만들어 저장했다. 생각날 때 뒤적거리기 좋다.
나이 50이 넘어가면 평준화가 시작된다는 말을 한다. 대표적으로 인물(용모)과 지식의 평준화를 꼽는다. 지식의 평준화에는 토론의 소지가 있겠으나 인물의 평준화, 이건 헤벌쭉할 만큼 맘에 쏙 든다. 지난 사진들을 쭉 들여다보니 세월이 흐른 지금의 내가 훨씬 예쁘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이 80대에 이르면 재산의 평준화가 일어난다는 소리도 있다. 일찌기 돈벌기를 멈춘 나의 선견지명을 칭찬하는 말 같아서 입꼬리가 살짝 치켜올라간다. 이쯤되면 늙는 것을 겁낼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은가.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치기라고 떠벌리는 나의 독서와, 푸념과 타령 일색으로 도배하는 글쓰기가 어쩌면 일종의 집착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종종 한다. 흡수는커녕 튕겨 밀어내기만 하는 기억기관 덕분(?)에 어제 읽은 책의 제목조차 까먹고,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을 믿고 죽치고 앉아 있어봤지만 잡문이 글이 되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쌓고 잡문을 끄적대고 있다. 나는 왜 독서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가.
인물 평준화만으로 내가 이렇게 예뻐졌을 리가 없다. 치기의 독서나 배설의 글쓰기가 나를 예쁘게 늙히는 숨은 공로자가 아닐까?
‘여자는 늙어도 여자’라는 말에 묻어 한마디 더 얹는다.
예뻐진다는데 무얼 못하랴!
살다보니 내가 예뻐지는 기이한 일도 생긴다. 여튼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