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두 개

생애 최초로 뼈가 부러지다

by 사라의 여백





이야기 하나,


만족의 한자는 滿(가득차다)과 足(발)이다. 찾아보니, 足(족)은 발이라는 의미 외에 ‘충분하다’, ‘모자람이 없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발 足이 ‘충분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이 중에서 상형문자적 해석이 그럴싸하다. 足의 상형문자를 보면 무릎 뼈와 발이 합쳐진 모양으로, 사람이 온전히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상태, 즉 ‘충분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한자가 상형문자임을 감안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이다.

어떤 사람의 흥미로운 해석이 하나 있어서 소개한다. “만족이라는 한자에 발 足이 쓰인 이유는 발목까지 차올랐을 때 거기서 멈추는 것이 가장 적당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욕심을 최소화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여태 무신경하게 써왔던 만족의 足이라는 한자에 갑자기 꽂힌 이유가 있다. 발을 다쳐서 일주일째 강제 칩거 중이라 발이든 족이든 하물며 족발까지도 모두 내 사랑(?)과 관심이다. 한 쪽 발을 제대로 못 쓰니 몸의 균형이 틀어지는데 이것은 허리 통증으로 이어진다. 다치지 않은 발에 체중을 싣다보니, 이 다리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드디어 몸이 배배 꼬이기 시작한다. 기약조차 없는, 장장한 시간을 견디고 나면 인간꽈배기가 하나 탄생할 지도 모른다.



이야기 둘,


“읽는 자 결국은 쓰게 된다.”, 자칭 ‘활자중독자‘인 김미옥(평론작가)의 말이다. 내게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바램-욕심이라 해두자-이 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하는 데에 시간을 제법 할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읽는 자가 결국은 쓴다,라는 이 말에는 잘 쓰게 될 거라는 희망 고문은 없다.

희망을 품는 일은 사행성이 다분하여 생을 낭비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 나는 지금 희망없이 살다죽어도 괜찮은 나이를 살고 있다. 읽는 것도 취미고 쓰는 것도 취미라면 더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

민음사에서 출판한 ‘홍길동 전‘을 읽고 있다. 책장이 빛의 속도로 넘어간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이것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길동의 슬픈 탄식이다. 서얼차별이 엄격했던 시대에 적자로 태어나지 못했던 길동의 이야기를 읽다말고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잡아서 윗글을 썼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홍길동 이야기에 공통점이라곤 없어보이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강제 집콕으로 인한 맨탈해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문화 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