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팀

Heaven and the City Season 1 SPRING

by 사라리

나와 스포츠 사이에는 꽤나 역사 깊은 연결고리가 있다. 나의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은 86년 아시안게임 개막식이다. 큰 운동장과 알록달록한 인파들이 흐릿하지만 분명히 기억이 난다. 심지어 내가 태어났을 때는 하필 LA올림픽 기간 중이라 아빠는 병원에서도 올림픽을 계속 보셨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는 올림픽에 밀렸다. ㅋㅋ 스포츠 광인 아빠 덕분에 딸들인 우리는 많은 운동 경기를 섭렵하게 되었다. 심지어 씨름까지(주로 명절 때) 시청할 정도로.

신장 미달, 유연성 제로, 기초체력 부족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스포츠를 정말로 좋아한다. 물론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더 좋다. 응원으로 목이 터져도, 결과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는 각종 운동 경기들. 그래서 나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 선수 때문에 고3 시작부터 쇼트트랙 서포터스에 가입해서 몇 번을 쫓아다녔고 가장 가열하게 스퍼트를 올려야 할 고3 여름엔 학교를 박차고 광화문으로 뛰쳐나갔으며 타국에 나가서도 겨우 겨우 스포츠 채널을 찾아내 제대로 알아듣는 내용이 하나도 없는 영어 해설을 무릅쓰며 대한민국 국대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전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겨울 전까지는 야구 직관과 응원을, 겨울에는 배구리그 관전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은 큰 이슈였다. 원래는 진짜 보러 가고 싶었는데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말을 듣고 직관은 쿨하게 포기, 대신 중계방송을 본방 사수하기로 작정했다. 지루한 겨울, 평창 올림픽은 나에게 거의 유일한 활력소였다. 믹스더블 컬링으로 시작된 올림픽은 남자 쇼트트랙 금메달로 문을 열었고 이내 흥미진진한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주요 경기의 재방, 삼방 그리고 미중계본인 설상 종목들의 하이라이트 버전까지 두루 섭렵하고 나면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칠 사라흐가 아니었지.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흥분과 짜릿함을 품고 잠이 들었다. 20일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참 많은 것을 남겼던 올림픽이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팀플레이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팀플레이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여기서 몇 가지만 짚어보기로 한다.


장면 하나.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미터 예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의 막내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미처 터치도 하지 못하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른 언니가 서둘러 턴을 이어받아 레이스에 나섰다. 거의 한 바퀴 이상 차이가 나던 레이스는 어느 순간 점점 좁혀지더니 결국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야 말았다. 이 얼마나 심장 쫄깃한 순간이었던가.
장면 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준준결승.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를 보고 난 후라 모두의 기대는 여전히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턴을 남겨두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팀추월의 경우, 마지막 주자의 피니쉬 라인 통과 시간을 최종 기록으로 책정하는 규칙을 갖고 있기에 세 사람이 한 몸이 되어 트랙을 도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표팀은 2+1의 형태로 분리되어 마지막 주자를 저만치 뒤에 두고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팀으로 레이스를 시작했으나 개인 기록경기처럼 트랙을 탔다. 그 결과, 준결승에 오르지 못하고 최하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장면 셋. 여자 컬링 준결승. 상대는 우리의 영원한 숙적, 일본. 일본은 끝내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가서 우리는 더욱 마음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마지막 스톤만을 남겨둔 상황. 안경 선배의 손을 떠난 스톤은 얼음판을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선수들은 하나 같이 스위핑에 열중했고 스킵과 서드는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스톤은 자석처럼 끌려 버튼 안쪽으로 안착하며 대한민국의 승리를 안겨 주었다. 팀 킴은 서로를 얼싸안았고 하나 되어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팀 경기에서 마주한 극과 극의 상황들. 우리는 팀플레이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이들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럿이 하나로 움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개인이 출중하다 해도 하나가 되어야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 개인 능력은 원색을 잃고 퇴색될 뿐인 것이다.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이 바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였다.

우리는 지금 각자도생의 삶을 살고 있다. 무한 스펙 쌓기와 과도한 경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대학 조별과제에서도, 회사 업무에서도 어떻게 서든 자기 성과를 어필하고자 애쓴다. 그러다 보면 바라던 바와 반대로 원하던 결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관계가 틀어지게 되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뛰어난 내’가 인정받고 싶지 ‘뛰어난 우리’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특히 나는 ‘뛰어난 내’가 각자 맡은 바를 잘 감당하면 ‘뛰어난 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뛰어난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맡은 바 충실 + 마음을 같이하여 희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의 레이스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레이스를 잘 지켜봐 주어야 하고 나도 힘들지만 더 뛰어줄 필요도 있으며 뒤떨어지는 동료의 뒤를 밀어주면서 목청 터질 때까지 소리를 질러야 하는 것이다.

이곳에 우리는 그분의 대사(고후 5:20)로 있다. 그렇지만 이 자격은 내가 ‘뛰어나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주어진 것인데도 언젠가부터 난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나름 열심히 하는데 왜 다들 자격에 맞게 살지 않느냐며 난 다른 이들에게, 그분께 화를 냈다. 그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걸 도와야 하는 것이지 왜 못 따라오냐고 다그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자격도, 지위도 없었다. 팀플에 취약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러나 아직 실낱같은 희망이 하나 있다. 이런 나에게 그분이 함께 하신다는 것. 그래서 그분으로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안도가 되어 주었다. 사람의 특성을 잘 아시는 그분께서 미리 이렇게 아버지께 간구하셨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John 17:11


이제 기록 경쟁, 순위 경쟁이 아닌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할 때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함께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한 발짝 먼저 뛰고 한번 더 독려하며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어야 한다.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으로 들어와야 모든 노력과 훈련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마지막에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내가 되길 바란다. 영미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던 여자 컬링 팀 킴(영미, 영미 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 친구, 영미 후배)처럼. 우리도 그분을 힘입어 하나가 된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John 17:21



_ SPRING / '18 3월 / HATC Season 1 E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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