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그러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

Heaven and the City Season 1 SPRING

by 사라리

천연기념물. 여중-여고-여대를 졸업한 사람에게 붙이는 별명이 한때 있었더랬다. 이성을 접할 수 없는 환경에 비교적 오랜 시간 노출되었던 여자 사람에게 붙이던 별명. 물론 이제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그 전철을 밟지는 않았으나 주로 여초 배경이 익숙한 사람이다. 여초 성격이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전공과 직업 분야를 선택한 결과였다. 그래서 요즘 많이 회자되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겪은 적은 없었다.

굳이 꼽자면 고등학교 때 원치 않는 체조를 시켰던 중년의 남성, 독서 과목 선생님 하나 정도랄까. 하복 블라우스가 더블 버튼 스타일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앞으로 몸을 숙이면... 이후는 유노 왓암생..? ㅋㅋ 그런데 그 남 선생님은 반드시 자기 수업시간엔 체조를 해야 한다며 유독 앞으로 구부리는 자세를 많이 시켰었다.

아! 이것도 같은 맥락일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생각난 김에 하나 더 추가. 대학 때 제일 골치 아픈 과제는 2주 완성 단편소설이었다. 정해진 분량을 맞추어 2주마다 하나씩 완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소설 창작 과목. 그런데 항상 내 작품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는 별로였다. 물론 소설 평가라는 게 워낙 주관적이긴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수준이라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 차였다. 내가 진짜 못 쓰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 사람의 기준에 안 맞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던 그 타이밍에 바람처럼 불어온 소문이 하나 있었다. 야한 거 쓰면 점수 잘 준다더라는 카더라 통신. 동기들 중 몇은 그런 장면을 좀 넣었더니 점수를 잘 받았다고 말했다. 영감을 받으려면 몇 시, 어느 채널을 보면 도움이 된다 이런 팁도 같이 돌았다. 고민했다. 성경에도 삼라만상이 다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기도하고 성경을 차용해서 몇 장면 넣었다. 그 다음 주, 돌아온 페이퍼엔 처음 보는 A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사실 귀여운(?) 수준이겠지. 요즘 들리는 이야기는 도가 넘쳐도 너무 넘치는 내용들이다. 이전에 없었던 일들이 아니었겠지만 하나 둘 잇따라 터져 나온 말들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누구보다 정의로워야 할 검사, 존경받는 작가, 뛰어난 연출가, 인상적인 배우, 열렬한 지지를 받은 정치가들이 당사자였다는 것은 더 큰 충격이었다. 그들이 가진 지위와 권력으로 이루었던, 이루려 했던 것들은 욕망을 채우려 도모하던 흔적들로 모두 가려졌다.


2년 전, 우리는 황망한 죽음을 목격했다. 평일 밤, 그 사람 많이 붐비는 강남역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자가 저지른 참담한 사건. 누군가는 그날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로 경악을, 누군가는 그와 반대로 그날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로 안도를 느꼈을 것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엔 포스트잇 메모들이 나붙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여자로 태어나지 말아요, 라는 망자에게 남긴 한 마디가 나는 너무 슬펐다.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여성이라면. 살해의 위협이 이럴진대 성폭력은 오죽할까.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그 어느 곳보다도 더 큰 차별과 부당함, 공포와 폭력을 당한다. 그동안은 더 큰 차별과 부당함을 피하기 위해 참아왔지만 그 임계점을 넘어섰고 할리우드에서 촉발된 바람에 더불어 이제는 저항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때가 온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응들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한 편은 피해자들과 용기를 내어 사실을 밝히고자 한 사람들과 뜻이 같이 한다며 동조와 응원의 한 마디를 남겼고 다른 한 편은 이제 여성들과는 같은 자리에 있지도, 말 한마디 섞지도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이념과 세대에 이어 이젠 성별마저 구분선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사는 곳에 문제가 없을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지만 그 문제 때문에 사람을 멀리하겠다는 건, 특히 남녀가 이토록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야만 한다는 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우리 중 엄마, 아빠 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디 하나라도 있던가.


작금의 사태를 보며 생각한 건 두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그래도 나는 상당히 보호받은 편이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주로 남성 위주 혹은 남성 우월 배경에서 해당 사건들이 일어났기에 나에게 주어진 여초 배경이 그걸 막는 몫을 톡톡히 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그분을 알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환경에서 자라온 배경 역시 보호막이었단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진리를 알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높은 연배의 여성은 어머니를, 젊은 여성은 여자 형제를 대하듯(딤전 5:2) 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년의 남성들에게는 절제와 경건, 근신과 인내로 온전케(딛 2:2)함을, 젊은 남성들에게는 근신함과 선한 본을 보일 것(딛 2:6-7)을 권면하여 남성들로 이 시대를 깨우는 신실한 일꾼이 될 것을 말씀은 교훈하고 있다. 그 교훈을 따르는 모습들을 보고 배우며 자랐단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이전엔 깊이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해 취해야 할 자세와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피해자들을 이해하고 끌어안아 위로하고 어그러지고 잘못된 것들은 바로잡아 또다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함이 당연하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버려진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의 옆엔 항상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했다. 특별히 여자들이 많았다. 그분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것은 두 마리아와 살로메였으며 그분과 특별한 교감을 나누었던 사람들은 마르다, 마리아 자매들이 아니었던가. 그분을 안다고 말하는 우리들은 본을 따라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들의 편에 서 주어야 한다.


마지막 때에는 거룩하지 않으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거라(딛후 3:2-4)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매일 새롭게 그걸 목격하고 있다. 그렇기에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각각 그분이 주신 교훈대로 따라야 한다. 언제든,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특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딤후 3:5) 몇몇 사람들의 전철은 철저히 반면교사 삼아야 하리라.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 그러나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 이건 우리의 어머니, 아내, 언니 누나, 여동생, 여자 친구, 여자 사람 친구, 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 않을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해야 한다. #with_you



_ SPRING / '18 3월 / HATC Season 1 E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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