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완벽한 원고는 없다

Heaven and the City Season 1 SPRING

by 사라리

얼마 전, 동방신기의 멤버 최강창민은 <나 혼자 산다>에서 자신의 일상을 공개했다. 스케줄 없이 쉬는 날에도 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요리학원까지 찾아가서 요리를 배우고 기타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 기타 연주를 배웠으며 운동도 빼먹지 않았다. 좀처럼 쉬지 않는 그에게 제작진은 요리에 이어 기타를 배우는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4차 산업혁명 때문에 로봇이 모든 걸 다 하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더 가지고 있는 거죠.”


철새처럼 한 철 살이 신세의 나도 그건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올 겨울을 날 곳을 찾아야 하는 나는 아주 잠깐의 안정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새로운 수업에 등록을 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장착을 위해. 하반기에 계획 중인 독립 출판 데뷔를 대비하고자 시작한 교정교열 실무 수업. 물론 나는 현직 실무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일단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고 하다못해 나중에 교정교열 알바라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밥벌이를 위한 뉴 프로그램 인스톨링 차원에서.

강좌를 맡으신 선생님은 출판계에서 오랜 경력을 갖고 계신 분인데 특히 문학 교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현직 종사자가 들려주는 출판계의 실상은 익숙하면서도 생경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건 이 세상에 완벽한 원고는 없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오탈자가 없는 완벽한 원고를 만들 수는 없단다. 그래서 교정본은 꼭 출력본에 빨간 펜으로 교정 부호 표시를 꼭 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썼던 원고들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는 건데.. 문득 걱정스러워졌다(여기도 엄청 틀린 거 많을... 망했다... ;;;).


그동안 나는 글을 쓰면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맹신하고 있었다. 교정은 했지만 출력을 안 하고 늘 프로그램 상에서만 했다. 한글과 워드 프로그램이 나의 실수들을 알아서 자동으로 교정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얘네들이 나보다 더 똑똑하네, 하면서 빨간 밑줄로 표시해 주는 것들만 고쳤다. 랩탑 화면 속에서 빨간 밑줄 없이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완성하고는 뿌듯해했던 내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었구나. 출력본으로 만들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렇게까지?, 라며 교정은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건 보통 잘못이 아니었다.


나의 삶 속에서도 그랬다. 이성적, 이상적 사고와 가치 체계, 나만의 주장과 목소리라는 소프트웨어를 맹신했다. 그것으로만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 이 편이 훨씬 스마트하고 효율적이었다. 교정은 원본대조가 제1 원칙인데 원작자이자 원본이며 편집자이신 그분은 한쪽으로 제쳐둔 상태였다. 그렇게 일일이 다 묻고 따져가며 확인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지, 라며 삶의 모든 선택과 결정, 문제와 해결에 있어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나는 딴지를 걸었다.


이런 나와 비슷한 잘못을 했던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국왕, 사울이었다. 그는 길갈에서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엄청난 수의 적군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습에 잔뜩 겁에 질려 덜덜 떨었다. 전군의 사기를 북돋우고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다. 사무엘의 부재는 사울에겐 악재였다. 처음에 그는 정해진 기한까지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렸다.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사무엘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급기야 전장을 이탈하는 무리들까지 나타났다. 가만히 앉아서 손 놓고 기다리다가는 모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릴 수도 있겠다 판단한 사울은 자기 손으로 직접 번제를 드린다(이상 삼상 13장). 제사 집전은 제사장 고유의 권한이었다. 누구도 이 일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더욱 신뢰했고 결국 그것을 따랐던 것이다. 황망하게도 번제를 마치자마자 사무엘이 당도했다. 사울 입장에선 이럴 거면 조금만 더 일찍 오면 뭐가 덧나나 싶었을 거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늦게 도착한 사무엘은 그런 사울을 오히려 크게 나무랐다. 그리고는 그의 나라가 길지 못하리란 저주 같은 예언을 남기고 휙 떠나버렸다.


사울의 편에서 생각해보자면 그는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처리를 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블레셋을 치러 가지도, 백성들을 다독이지도 못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리더로서 그는 손을 걷어붙이고 직접 일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사울의 사정과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런데 이게 잘못이라니! 아, 그럴 거면 빨리 오든가!! 그는 분명 억울했을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영화 <명량>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쟁 기간 내내 모진 나날을 견디며 싸우던 한 병사가 앞으로 있을 승산 없는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 무서워 도망갔다 결국 붙잡혀 온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의 항변을 들은 이순신 장군은 두말없이 그를 단칼에 베어버린다. 그리고는 군율은 지엄한 것이라 엄포를 놓는다. 심정적 이해와 군율은 다른 것이다.


효율을 기준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이미 사울은 일주일을 기다렸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된 거 하루 이틀 더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분 앞에 자신과 이스라엘을 철저히 의탁하고 그 시간들을 믿음으로 보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겠지. 진정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상황과 관계없이 그분의 원칙을 따르는 것,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으로 선하고 의로우며 올바르다. 그것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갑갑하고 때로는 버겁다 느낄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내 입맛대로 하나님을 시즈닝 하겠다는 건 얼마나 주제넘은 짓인지. 물론 하나님이 그렇게 내 맘대로 움직여 주실리 만무하지만 설령 그런 하나님이라면 굳이 내가 믿고 의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교정교열의 기준은 사전과 맞춤법이다. 선생님은 국어대사전을 준비해두라 하시면서도 돌베개 같은 사전이 고대 유물처럼 되어 버려서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마치 내가 말씀을 어느 순간부터 고리타분한 옛 것으로 대하기 시작했던 것과 비슷하다 느껴졌다. 글쓰기도, 퇴고와 교정도, 번역도 모두 오랜 시간과 품을 들여야 모양새가 갖춰진다. 정해진 기준을 따르면 더욱 정확하고 올바르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원리를 따라 오랜 시간, 부단한 연습을 통해 더욱 그분을 닮아갈 수 있다. 완벽한 원고가 없듯 완벽한 신앙도 없다. 늘 더 나은 것을 고민하고 수정하는 것, 단지 그뿐이다. 그 과정을 통해 원석은 제 빛을 찾아간다.


_ SPRING / '18 4월 / HATC Season 1 E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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