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1 SUMMER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새로운 세상(New world)이란 슬로건처럼 우리에겐 미지이며 새로운 세상인 남미 대륙에서의 첫 번째 올림픽이었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내 생일인 6일, 개막식이 열렸고 법적 생일인 20일, 대한민국의 마지막 금메달 소식을 안겼다는 점에서 나에겐 더욱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되었다(사적 의미부여 작렬.. ㅋㅋ). 많은 경기가 있었고 놀라운 기록들을 남겼지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묻는다면 단연코 다음의 두 장면을 꼽고 싶다.
15점을 먼저 내면 승리하는 펜싱 에페. 그는 분명 9:13으로 2라운드를 마친 상태였다. 3라운드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그에게 들린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한 마디 외침.
"할 수 있다!!"
그는 조용히 되뇌어보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래 나는 할 수 있다. 3라운드가 시작되었고 스코어는 어느새 10:14가 되었지만 그의 되뇜은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결국 그는 14점에 상대를 묶어두며 대반전을 만들어냈다. 마지막 공격이 들어가면서 켜진 전자 호구의 점등. 그는 우승을 확정 지으며 포효했다. 올림픽 처녀출전의 이 대한민국 청년은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말도 안 되는 역전승 덕분에 해설자로 데뷔한 선배 중 한 명은 극도의 흥분 해설 때문에 전무후무한 영상의 주인공으로 남게 되었다(feat. 최병철 해설위원).
마지막 18번 홀, 버디 퍼팅. 이미 후위 그룹과는 4타 차, 우승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신중을 기해 퍼팅에 임했다.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된 그때. 공은 홀컵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고 결국 그녀는 세계 유일 골든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말았다.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고도 그녀는 단지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을 뿐. 골프채나 모자를 집어던지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샴페인 세례를 퍼붓지도 않았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고 별일 없었단 듯이 그저 "Thank you."라는 인사말과 함께 환호하는 갤러리와 중계 카메라를 뒤로 하고 유유히 그린을 빠져나갔다.
펜싱 박상영 선수, 그리고 골프 박인비 선수. 나는 이 두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자신에게 허락되는 최고의 순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 없던 그 순간, 포기가 더 쉬울 것만 같았던 순간에 찾아온 한 마디에 반응했던 청년은 마침내 그 말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하마터면 이 날은 그에게 최악의 순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최고의 순간으로 뒤바꾸어 놓고야 말았다. 누군가 지금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큰 목소리로 외치지 않았다면, 박상영 선수가 그걸 듣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것을 되뇌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리플레이로 수도 없이 봤던 그 장면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이룬 한 사람. 그녀가 설사 올림픽에 나오지 않는다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심지어 부상이 겹치는 상황 때문에라도 그녀에게 올림픽 출전은 무리한 선택이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에 있었던 국내 경기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그녀에게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고 올림픽 출전을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믿고 원래 하던 대로 경기에 임했다. 모두가 환호하는 순간을 맞은 그때에도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시크하고 당당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올림픽 우승도 그녀에겐 한 경기였을 뿐이었다. 그녀가 보여준 자신에 대한 완전한 신뢰는 확실한 우승이란 결과로 나타났다.
포효와 미소. 경기의 특성상, 그리고 두 사람의 성향상 최고의 순간을 맞은 그들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랐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최고의 순간을 맞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은 동일한 하나.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그들이 쉬지 않고 걸어왔던 4년(아니, 선수 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더 정확하겠다)과 그 기간 동안 익히게 된 모든 것들에 대한 믿음이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어려움을 견뎌왔다. 칼에 수없이 찔려 멍투성이가 된 두 다리와 햇볕에 그을려 까맣게 되어버린 두 팔이 바로 그 땀과 눈물을 온몸으로 말해준다. 그저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던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 리우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체력은 늘었고, 실력은 자랐고, 담력은 커졌다.
시간은 늘 똑같이 흐른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무대가 우리에게도 열린다. 우리는 그분의 대사(大使)의 자격으로 이곳에 와 있다(고후 5:20). 올림픽 국가대표와 다를 바가 없다. 경기는 예측불허. 누가 승자와 패자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 앞에 열린 무대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경기는 늘 쉽지 않고 주도권은 항상 상대에게 있는 것만 같아 보인다. 스코어는 늘 뒤져있다. 정말 최고의 순간이 올 수 있을까?
포기하고 싶을 때,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그때,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 없을 때. 당당히 나 자신에게 외쳐야 한다. 크게 외칠 자신이 없다면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하며 되뇌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해야 한다.
나 자신은 믿을 수 없지만 이곳까지 나를 인도하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한다고.
그분만이 나의 힘이시라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을 힘입어.
이 한 마디, 마음 속 외침은 종내 포효가 되고 미소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confidence)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 Heb 10:35
_ SUMMER / '16년 8월 / HATC Season 1 EP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