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1 SUMMER
사람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것, 바로 꾸준히 한 가지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집 앞에 헬스장을 등록하고도 실제 운동을 한 회수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만을 남긴 채로 등록 만료 기한을 맞기도 하고, 호기롭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일에 쫓겨 반납하거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산 다이어리의 많은 빈 공간을 남기고도 연말에 새 다이어리를 살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글쓰기가 그렇다. 여러 지인들의 온정으로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손에 넣은 작년 12월. 올해는 꼭 일기를, 인스턴트 북저널을, 영화 감상 노트를 적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6개월을 훌쩍 넘긴 지금. 내 방 책꽂이에 마치 오래된 유물처럼 고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글쓰기를 하겠다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글감을 알려주는 어플을 설치하고도 푸시 알림을 끄기 바빴지 어플에 개설된 내 페이지에 남겨진 글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러니 구독자도 없지. 쯧쯧. 네팔에서 지낼 때 시작한 소설, 2년 전에 시작한 소설 모두. 이제는 워드 프로그램도 힘겹게 돌리는 나의 넷북에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매일, 꾸준히, 단 한 장이라도 글을 써야 한다고. 그래야 글을 쓸 수 있다고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는 달리기로 체력을 단련하고 돌아와 맥주 한 잔과 함께 글을 쓴다고 했다. 장강명은 신문사 기자로 일하는 중에도 퇴근하고 돌아와선 밤에 소설을 썼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책에서는 많은 여성 작가들이 어떻게 작품 활동을 했는지 정리했는데 전체 내용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모두 매일, 꾸준히, 빼먹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는 것. 그랬기에 지금의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최근 신나서 본방 사수하는 몇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영석 PD의 신작,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이다. 정말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화를 이어가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자주 보게 되었다. <알쓸신잡>에서는 주로 국내의 지방 도시들을 정해서 함께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방문한 장소들과 새롭게 알게 된 것들, 그리고 자기의 생각들을 특별한 포맷 없이 그저 저녁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한다. 최근에 방영된 3회 강릉 편에서는 에디슨 박물관 방문기를 나누며 에디슨의 이야기를 하던 중,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다. 진행자인 유희열이 김영하 작가에게 글을 쓸 때, 어느 순간 영감을 받아서 쓰는 것인지 아니면 쓰다가 영감이 오는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스티븐 킹의 말을 인용하며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뮤즈가 택배기사처럼 찾아온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과제로 쏟아지는 글들을 쓰기 위해 매진하던 당시, 어떻게든(좋던 나빴던) 쓸 수 있었다. 물론 정말 안 풀릴 때는 뮤즈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정말 말도 안 되는) 시도들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은 계속 쓰고 있을 때 다음 장면이, 사건이, 문장이 생각났었다. 정해진 미션이, 과제가 있어서 자판을 두드리고,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고, 노트에 개요를 적고 있을 때. 그녀는 어느새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내 옆에 와서 살짝 앉아주었다. 역시 그녀는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연인이 아니라 택배기사가 확실했다.
그럼 뮤즈만 택배기산가. 말고 누군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았다. 성령님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난 정말 혼잔가? 왜 내 곁에 그분이 안 계시는 것 같지? 어째서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는 걸까? 제가 이런 상태 이건만 대체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이와 같은 산적한 질문들은 왜 생겼던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소위 영빨(?)의 신호가 겁나 셀 때만 그분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건 아니었나.
내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 사실 생각해보면 항상 있었다. 성경을 통해, 강단 말씀을 통해, 다른 이들이 보내주는 카톡 메시지에서, SNS 뉴스피드와 타임라인에서 그분이 내게 보내시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으려고만, 들으려고만 했다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내가 그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왜 여기에 안 계시냐며 짜증내고 불평하기만 했다. 이 모두가 뭔가 크고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을 통해서만,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강단의 말씀을 통해서만 그분의 임재를 느끼고자 했던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나서서 자기들의 머리로 허사를 경영하는 때, 그런 그들에게 그분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지혜와 교훈을 얻으라 말씀하신다(시 2:1~2, 10).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 앞으로 돌아와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그분을 바랄 것을 촉구하셨다. 심지어 사람이 그분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을 위하여 수고할 때에도 그분은 늘 사람을 보호하고 지키셨다(호 12:6, 12~13). 말씀에 이미 이렇게 소상히 밝혀놓으신 부분들이 있는데도 나는 깨달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령님도 뮤즈처럼 택배기사셨다. 내가 그분을 바라며 열심히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말씀을 읽을 때. 그분은 어느새 내 옆에 앉아서 조곤조곤 설명해주셨다. 내가 상태가 좋을 때만, 말씀이 좋을 때만 그분의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보단 매일, 꾸준히, 빼먹지 않고, 규칙적으로 그분을 기억하고 말씀을 대할 때. 택배 상자를 한 가득 들고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시는 쿠팡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내게 배달된 영감이 가득 들어있는 택배들은 잊혀 그저 경비실에 쌓여가기만 할 뿐이다.
힘들게 배달된 뮤즈의 택배를 경비실에 그냥 두기엔 너무 아까운 일이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바로 그 일. 우선순위에서 그분을 미루지 않고 꾸준히 정해진 시간에 그분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택배를 받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판을 두드린다. 그리고 그분이 보내실 메시지를 궁금해하며 말씀 어플을 켠다.
뮤즈를 기다리지 말라. 대신 뮤즈가 몇 시까지 오면 되는지 알려줘라. - 스티븐 킹
_ SUMMER / '17년 7월 / HATC Season 1 EP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