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워라밸

Heaven and the City Season 1 SUMMER

by 사라리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것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2015


내가 써야 했던 책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충격에 빠뜨렸던 책이었다. 주인공인 계나는 몸이 끼이다 못해 쇄골이 다 아픈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며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이러나, 주변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은 건가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그런 “한국이 싫어서” 그녀는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나는 씁쓸한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건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지 않나 혼자 반문했었다. 그러나 사람이 그득그득 들어찬 출근 지하철을 타고 출근역정을 경험하면서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종영한 <알쓸신잡> 전주 편을 보던 중, 잊고 지냈던 이 책이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 방송분에서는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화제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왔다. 워크(work)+라이프(life)+밸런스(balance)의 각 앞 글자를 딴 신조어로 요즘 청년들에게 유행이라는 이 워라밸은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으로써 일을 찾아 적당히 일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을 뜻하며, 이것이 오늘날 청년들이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정재승 박사는 설명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나도 그렇지 않았던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적성에도 잘 맞아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이왕이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그런 일. 나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늘 하나가 맞으면 하나가 안 맞았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했다. 그건 바로 크리스천 워라밸 때문이었다. 사실 우린 워크(work)+라이프(life)+밸런스(balance)에 +α 인자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교회로 대변되는 신앙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내게 있어 일을 구할 때, ‘교회’는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래서 워라밸 플러스 그 알파인자까지 모두 갖춘 완벽한 크리스천 워라밸을 가진 사람을 나는 가끔은 시기 어린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그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면은 바로 이 '교회'라는 +α 인자 때문에 나의 워크와 라이프가 잠식되는 것만 같다고 느끼는 감정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데 나는 여기에 묶여 있는 것만 같은 걸까. 교회에서도 일, 사회에서도 일. 왜 난 늘 희생 당하는 것만 같은 느낌인건가. 대체 나의 삶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런 불편함을 가지고서도 계속 교회의 일을 하는 게 맞는 건가. 나의 영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은 될까? 나는 그저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섬기고 싶을 뿐인데 왜 그게 어려운걸까.


그러나 그게 나의 욕심인가. 누구나 다 그런 걸 바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적당히 일하면서, 너무 힘들지 않으면서, 경제적으로 부담도 없고 주말의 여유도 좀 느끼면서 신앙생활도 평타로 할 수 있는 그런 삶. 내 밥그릇, 내 잇속도 챙기면서 그 어디에서도 기 빨리지 않는 그런 삶. 교회에서도 일에 치여 허덕이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준 정도만의 사역을 갖고 적당한 정도로 신앙생활 하는 것. 이와 같은 바람이 정말 다 잘못된 것일까. 워라밸에 대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이런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 고리가 툭 끊어지게 된 것은 이 밸런스라는 개념 자체가 어디서 온 것인가를 생각하면서였다. 성경 어디에서 우리더러 그런 밸런스를 유지하라 얘기했었나. 그런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정녕 있긴 한가. 그분이 언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요구하신 적이 있었나. 나는 이런 질문들에 속 시원히 답할 수 없었다. 곰곰이 곱씹어보니 그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였단 생각이 들었다. 소위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잘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이라는 교회 안에서의 성공 지향적 이미지가 자리 잡으면서 생긴 것이 아니었던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제자의 삶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다. 70인 제자를 짝지어 보내실 때 예수님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떠나 사역지에 도착해서는 예비하심을 따라 그 값을 받으라고(10:4~7) 하셨다. 무엇이 필요한지 아버지는 다 아시니 필요한 것을 구하기보단 그의 나라를 구하라(12:30~31)고도 하셨다. 자기의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14:33),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는 것(16:13)이라며 예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정과 균형과는 완전히 다른, 밸런스의 개념을 해체하는 것에 가까운 말씀들을 남기셨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 사역을 앞둔 시점에서는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 Luke 21:12-13, 16-19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크리스천 워라밸이다. 사람들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의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기에 매진하는 것, 바로 그것 말이다. 예수님도 인간을 위해 결국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던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두려움에 흔들리고, 고독하고, 생채기가 나는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끝끝내 견디며 그분 따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길 위에 서는 것(p000, 마가복음 뒷조사, 김민석 참조). 그래서 마침내 인내로 영혼을 얻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이다.

크리스천 워라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 친구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면 무엇을 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 말해 주었다. 그게 맞다. 그분의 말씀을 따른다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상관 없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곳이 바로 천국(계 21:3)임을 깨닫는 매일을 보낼 수만 있다면.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 넌 참 크리스천 워라밸이 좋구나.


_ SUMMER / '17 8월 / HATC Season 1 E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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