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1 AUTUMN
김영하 작가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이 몇 가지 있다고 했다. 일단 나와 비슷하지만 혹은 이해할 수 있지만 조금은 특별함을 가진 주인공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주인공에게 자기 잘못 때문이 아닌(물론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요인으로 인한 어려움이 닥쳐와야 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적어도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주어져야 한다. 이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이야기에서 독자 및 시청자들은 속 시원한 해결을 원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기대가 항상 작가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독자가 있어야 작품의 가치가 있기에 그 기대를 벗어나는 일은 흔치 않다.
최근에 내가 읽거나 본 이야기들 중엔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뇌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 철저히 감정을 배제한 상태로 끝까지 진실을 추적해 나아갔던 검사,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자신의 살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외계인을 쫓다 기억을 조작 당해 다른 이름으로 살던 형과 외계인과 나눈 비밀로 복제인간이 되어버린 동생, 아무도 관심 없던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몰래 숨어 들어온 독일 기자,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 본의 아니게 마녀 취급을 받아야 했던 여자까지. 비범치 않은 설정과 남다른 특징들로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는 캐릭터들이었다.
주인공이라면 한 번은 마주쳐야 하는,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그에게 반드시 주어져야 하는 이 문제 상황은 매우 흥미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맞닥뜨렸던 문제 상황이라는 것이 아주 새롭다거나 혹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경유착으로 썩을 대로 썩은 세상, 기억에 의해 결정되는 자기 존재의 가치,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한 정의까지. 무겁고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성격을 가졌지만 이 모두는 인간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사라지지 않은 문제들이었다.
그건 이야기들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나의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비슷한, 혹은 겉모습은 다르나 실상은 같은 문제들로 나는 가던 길에서 종종 멈추어야만 했다. 말일이면 날아 들어오는 카드 청구서, 화살처럼 귀에 꽂히는 ARS 기계음으로 확인해주는 통장 잔고, 버스며 지하철에 그득그득 들어찬 출근길의 사람들, 매달 아프고 힘들어서 정말이지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리통, 매주 주말마다 있는 교회 행사들, 각자의 일로 바쁜 분반 청년들의 사정들, 늦은 밤 퇴근길 불특정 다수에게 쌍욕을 시전 하시는 아저씨들, 불안한 청년 세대의 삶, 여성으로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유리천장, 현실과 영성의 괴리로 인해 완전히 이해되지 않고 정리되지 않는 원리들, 진정으로 그분이 내게 원하고 계획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픈 마음, 이런저런 생각들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그래서 쉽게 눈 떠지지 않는 아침. 경중과 양상은 다를 수 있을지 모르나 이건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가 아니던가.
그런 동일한 문제를 여러 모양으로 다루는 이야기들에 왜 나는, 우리는 열광하였는가. 물론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한 방식이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인물만이 가진 비범한 능력, 더하여 그런 인물들 사이의 관계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겐 항상 조력자 또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역경을 딛고 일어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었다. 황시목 검사에겐 한여진 경위가, 준혁과 우진이에겐 별이와 민영이가, 피터에게는 김 기사가, 엘파바에게는 피예로가 있었던 것이다. 시작한 일에 대해 자신조차도 확신할 수 없어 포기하고 싶었을 때, 그들이 끝까지 그 길을 갈 수 있게 했던 건 주변의 도움 때문이었다.
나의 이야기에서는 과연 어떨까. 최근 몇 주 간격으로 한동안 소원했던 내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고등학교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 온 친구 A와는 그동안 주로 진로와 학업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이번엔 특히 수험생 일상을 함께 나누며 뻔한 길 대신 매번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지는 그녀의 행보에 나도 큰 격려를 받았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닮았다며 무슨 관계냐 질문을 받는 B와는 멀리 떨어져 지내는 통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왠지 모를 동지애를 공유하는 사이다. 최근에 강남 어느 독립 책방에 다녀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내가 그녀가 사는 동네의 독립 책방을 소개해서 같이 가 보았다. 우리의 완벽한 취향저격 장소였기에 같이 독립출판과 내 작품의 시장성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못다 한 남은 이야기는 집에 가서 이름 모를 벌레들을 잡아가며 계속 이어갔더랬다. 크리스천 싱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친구 C는 그동안 치러왔던 자신과의 전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같은 처지에 있는 나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교훈들을 스스럼없이 나누어 주었다. 만났던 그날, 나의 무리한 요구에도 누구보다 적극 동조하고 밀어주었던 그녀의 배려는 또 얼마나 큰 도움이었던가. 조력자는 곳곳에 포진 중이었던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 John 15:12-15
누구보다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기꺼이 도와주시는 분. 그래서 우리를 종이 아닌 친구로 불러 주시는 분.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세상에 우리를 두고 떠나셨지만 이는 그저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적극 개입하여 세상에서 우리만 끌어올려 데려가려고 하시지도 않는다. 그러니 세상을 살아갈 때, 조력자라면서 바로 옆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이건 뭐 하자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분은 여러 모양으로, 특히 나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을 활용하여 그 관계들을 통해 삶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계시는 것이었다. 나의 이야기도 그렇다는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계속 반복되는 문제들에 그저 굴복하고 넘어지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분이 보내주신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일어나 다시 걸어갈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 John 17:14-16
_ AUTUMN / '17 9월 / HATC Season 1 EP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