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1 WINTER
지난 미국 여행에서의 마지막 기념품은 디즈니 스토어에서 산 알라딘 램프 오나먼트였다. <알라딘>에 나오는 그 모양 그대로 살짝 문지르면 펑 하고 지니가 지금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아 보이는 알라딘 램프.
나에게 램프의 요정 지니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다. 지니는 무지막지한 힘을 갖고도 어쩔 수 없이 코딱지 만한 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되는 그날을 꿈꾸며 살다가 이제야 그 소원을 들어줄만한 주인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거야말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아버지 우편으로 돌아갈 그날을 바라던 예수님과 데칼코마니가 아니던가.
그래서였을까. 나는 자주 그분을 지니처럼 여겼다. 제 세 가지(실은 무한) 소원 중 하나는 이거예요, 들어주세요. / 아, 이것도 있어요. / 여기 또 있네요. / 이거 이거 이거요. /
사실 내가 말하는 소원은 알라딘의 소원처럼 극적이거나 큰 것은 아니었다. 알라딘이 말했던 왕자로 만들어 달라는 거라든지 죽을 뻔했을 때 살려 달라고 한 것에 비하면 아주 소박한 수준이었다. 로또 당첨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요, 절세미인이 되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요, 프린스 차밍이나 도깨비 공유를 만나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레벨업을 바란 것이 전부였다. 조금 더 나은 직장, 조금 더 많은 월급, 조금 더 두둑한 통장 잔고, 조금 더 괜찮은 남자, 조금 더 좋은 랩탑 같은 것들 말이다.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브루스가 야훼닷컴에 접속했을 때 차고 넘쳤던 받은 편지함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그분께 올린 나의 결재 기안은 그것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일일이 Yes or No를 클릭하는 것이 귀찮았던 브루스는 Yes to all 하고 말았지만 그분은 그러시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상신함에 조회된 기안의 대부분은 반려되거나 혹은 무기한 결재 대기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이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제가 뭘 그렇게 큰 걸 바란다고요. 이런 작은 것도 들어주시지 않으면서 무슨 믿음을 가져라, 네 삶을 드려라 말씀하시는 겁니까!!,라고 나는 악다구니를 썼다. 결재는 여전히 "대기 중"이었다.
사도행전에서 나와 비슷한 한 사람을 발견했다. 8장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이었다. 사마리아에 입성한 빌립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 많은 이들을 회심으로 이끌었던 그때, 시몬도 그 무리 중 하나였다. 빌립 등장 바로 전까지만 해도 그는 빌립처럼 모두에게 추앙받았던 당사자였다. 사람들은 마술사 시몬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불렀다. 시몬이 보이는 마술에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의 작은 손짓 하나에도 열광했다. 그러나 빌립의 이적과 기사는 그를 깡그리 잊게 할 만큼 모두를 매료시켰다. 심지어 자칭 큰 자라 외쳤던 시몬 자신도 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거룩한 손으로 회심한 그들에게 안수했을 때 마침내 그들은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이적과 기사를 좇아 빌립이 가는 곳마다 족족 따라온 시몬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듯하다. 결국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찾아가 거래를 제안하고 만다(닥터 스트레인지가 도르마무에게 거래를 제안했던 것처럼). 성령? 이제 돈으로 사겠어, 가 시몬의 제안이었다. 시몬이 원했던 것은 성령 그 자체였다기 보다는 물론 성령을 통한 놀라운 일들이었겠지만. 그리고 그 후? 우리가 알고 있는, 예상 가능한 그런 내용으로 끝이 난다. 칼은 든 자는 칼로, 돈을 꺼내 든 자는 돈으로 망하는 결말로.
시몬을 생각하다가 문득 올해 여름에 읽었던 플래너리 오코너의 <현명한 피>가 떠올랐다. 저작 당시 미국 남부 바이블 벨트의 현장과 교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었다. 시몬처럼 성령님의 권능보다 성령님의 이름으로 얻을 수 있는 부차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는 많은 군상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때만 그랬던 걸까. 오늘날 그분의 이름으로 자신만을 배 불리려는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 심지어 그 이름들을 이제는 안방 뉴스에서까지 볼 수 있지 않았던가,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는 S앵커의 입을 통해서.
성령을 돈으로 사려는 아이디어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충만을 얻기보다는 그를 통해 나타내는 이적과 기사로 명성과 부를 얻고자 하는 뒤틀린 욕망.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더 신기하고 놀라운 마술, 그걸 본 관객들의 찬사, 이전보다 더 높아진 명성, 신의 손을 가진 듯한 느낌, 찾아오는 사람들로 두둑해지는 주머니. 성령을 사서 크게 한 탕 해보겠단 의도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게, 제사 말고 젯밥에만 정신이 팔린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엡 1:23)이신 그분의 속성은 차치하고 지극히 작은 미물인 나의 충만 만이 유일한 관심사였다.
자, 다시 <알라딘>의 지니로 돌아와서. 천하의 지니도 들어줄 수 없는 소원들이 있었다. 대신 사람 죽이기, 죽은 사람 살려내기,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들기. 이 세 가지 소원은 아무리 원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알라딘은 악당 자파의 손아귀에 놀아날 위기에 처한 왕국을 지니의 힘이 아닌, 자신의 기지와 희생으로 구해내고 자스민의 사랑을 얻는다. 결국 <알라딘>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생명과 사람을 사랑하는 진심, 그리고 그것이 가진 위대한 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분이 원하시는 바도 동일하다. 그분의 도움을 요행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함께 하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 나의 바람을 이루는 차원을 뛰어넘어 온전히 나를 채우는 충만함을 경험하는 것.
꽁꽁 싸맨 옷깃 사이로 칼바람이 파고든다. 적나라하게 몸매를 모두 드러낸 나무들처럼 내 마음도 날이 갈수록 앙상해진다. 몸과 마음 모두 차갑게 식어가고 버석버석하게 텅 비어버린 채 맞는 어두운 밤. 아무런 흥취도, 감동도 느낄 수 없이 경직된 가슴. 그리고 남은 공허함.
겨울은 밤과 잠을 통한 오랜 정지상태를 경험하는 계절이다. 내 맘 속의 겨울, 길고 외로운 밤.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내일이 되면 알 수 있나?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숨결과 손길이 말씀하신다. 내가 함께 한다고, 바로 지금 여기에(IMMANUEL, GOD WITH US).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눈 덮인 회색 빛의 나무는 천천히 새싹을 준비한다. 그렇게 그분은 옆에 계신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Rom 5: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Rom 8:32
_ WINTER / '17 11월 / HATC Season 1 EP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