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1 WINTER
교수자의 숙명이자 본질적 존재 이유, 바로 평가다.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늘 고민인 자들. 바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그동안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배웠는지, 공부한 것을 알고 있단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바로 시 to the 험. 시험을 앞둔 선생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는 예술가와 다름없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매력적인 오답에도 걸려 들지 않고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백번 고민하며 출제에 고심한다. 난 지금도 일주일에 몇 번씩 그런 고민을 하면서 문제 내는 삶을 살고 있다.
선생은 그렇다치고. 시험을 치러야 하는 학생은 어떠한가. 시험지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외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질문의 8할 이상은 알맞은 답을 고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2, 3번 또는 4, 5번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하고 아예 구별 자체가 어려울 때는 찍신의 운에 운명을 맡겨 보기도 했다. 이렇듯 객관식은 그럭저럭 넘겨볼 수 있었지만 서술형 주관식 문제는 늘 난감 그 자체였다. 준비하다 결국 때려치운 임용 고시 시험이 딱 그랬다. 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들만이 수두룩했다.
삶에도 늘 시험이 있다. 나는 늘 수험자다. 문제 유형은 그때 그때 다른데 문제에서 다루는 내용에 따라 양자택일인 경우(A회사 or B회사)도 있고 서, 논술형 (주어진 상황에 대한 깊은 빡침의 이유와 근거를 논하시오)인 경우도 있다. 유형에 상관없이 답을 찾는 건 항상 어렵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지문 속에 답이 있다, 전후 맥락을 고려하여 답을 찾아야 한다 등등 사람들이 말하는 문제 해결 전략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난(벌써 '지난 해'로 지칭해야 하다니 ㅠㅠ) 해,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험지의 이 문제 저 문제를 헤매고 다녔다. 무엇 하나 속 시원히 답을 낼 수 없는 것들 천지였다. 호기로운 도전 및 재도전도 한 두번이지 결국은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답은 모르겠는데 시험 시간은 끝나지를 않으니 이거야말로 분통 터질 일이었다. 백지로라도 답안지를 내고 끝내버리고 싶은데 종료령은 대체 언제쯤 울리는 건지. <문제적 남자>처럼 문제를 다 풀 때까지 끝나지 않는, 그렇다고 집단 지성을 쓸 수도 없는 네버엔딩테스트. 아무리 찾고 찾아도 답은 내지 못했다.
내게 헤매고 다녔던 그 세계의 정답은 사실 하나였다. 그걸 깨닫게 된 것은 문득 떠오른 욥기 말씀 때문이었다. 10년도 더 전에, 저 아래 남반구에서 살던 시절 들었던 바로 그 말씀.
Does Job fear God for nothing? - Job 1:9
욥기의 중심 구절로 꼽아 전해주셨던 바로 이 말씀이 뇌리를 스칠 때, 이것이 정답이었음을 직감했다. 나는 그동안 다른 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려고 했다. 사실 경외보단 인정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허락하실 때, 문을 여실 때, 실마리가 풀려갈 때 나는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했다. 역시 하나님이니까 이렇게 하실 수 있으신거지, 내가 이래서 하나님 믿어요, 하나님 믿으니까 살만 하네요, 가 나의 고백이었다. 내가 바라던대로 풀려갈 때. 그 때 하나님은 나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셨고 나는 그의 양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그분은 내 하나님이 아니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었을지는 몰라도 나의 하나님은 아니었다.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을 일거리 던져주는 부장님처럼 산적히 쌓아두시는 분은 나에게 하나님이 아니었다. 악랄하고 잔인한 독사 교관 같은 존재를 하나님으로 인정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거 아니라고, 다른 것을 내놓으라고 발을 굴렀다. 그러면서 앨리스의 여정은 시작된 것이었다.
그분을 주와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은 내가 그분을 필요할 때만 찾아 쓰는 치트키로 삼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어느 순간에서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그동안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배웠는지, 공부한 것을 알고 있단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평가를 하는 것처럼 그분을 진정 주인 삼아 사는 것을 제대로 배웠는지,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 평가하시는 그분의 시험지 앞에 나는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미 나만의 정의로 뒤틀려 버렸기에.
새해 첫 신년사로 들었던 것처럼 시험지는 또 다시 앞에 놓일 것이고 난이도는 조금씩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늘 어렵고 고달플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순간에도 그분을 끝까지 경외한다면 아름다운 답안지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문제적 남자>에서 하석진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정답을 찾아내는 딥러닝으로 일명 하파고(feat.알파고)라 불린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정답을 맞히는 재미를 보게 된다. 나도 그렇게 그분의 시험에 답 맞히는 재미를 찾아가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 Deut 8:2-3
우리를 비천한데서 기념하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Ps 136:23-26
_ WINTER / '18 1월 / HATC Season 1 EP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