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아니고 난장

Heaven and the City Season 1 WINTER

by 사라리

그 언니를 실제로 본 건 어느 토크콘서트에서였다. 싱글라이프를 주제로 하는 토크콘서트의 사회를 맡은 언니는 깔끔하고 센스 있게 청중과 호스트 사이를 조율하며 행사를 진행했다. 그날의 행사는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Q&A 시간에는 내가 낸 질문도 선택해 주시고 말이지. 언니는 싱글라이프라는 주제에 참으로 걸맞은 진행자였다. 옛날에 난 언니가 유재석과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노부부로 둘이 함께 짠 콩트에서 둘은 완벽한 파트너였거든.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하나는 예능의 신이 되었고 하나는 남편과 아이가 없어 불러주는 곳이 없다 말하는 예능프로 패널이 되어 있었다.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예능인들과 동기였으나 허락되는 자리는 많지 않았고 일이 없어 고민하다 결국 자신들이 그만두지 않는 한 짤릴 일 없는 방송을 만들기로 결심, 본인들만의 루트로 새 판을 짠 언니. 그리고 그 판에서 재발견된 다양한 인재들. 1인으로 시작한 회사를 이제는 십여 명 직원의 근무지로 만든, 자칭 팬츠 CEO, 바로 송은이 언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은이언니 사인도 받아두는 건데. 아쉽다.


언니들의 팟캐스트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시작으로 이 정도의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건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다. 어디 감히 남자가 목소리를 높여 담장 밖을 넘어가게 하느냐 타박하는 퓨리오숙이나 노동이즈베리임폴턴트를 기조로 스튜핏을 날려대는 김생민도 사실 언니들의 팟캐스트에서 태어난 캐릭터들이었다. 사람들이 전에는 잘 몰랐던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하고 꽃 피우는 장을 만들어 주었던 건 방송국이 아니라 은이언니였다. 유튜브로 본 어느 일본 여고생들의 댄스를 커버 영상으로 만들어보자 제안한 후배의 반짝 아이디어를 멤버들을 모아 <셀럽파이브>로 실현시켜 준 것도 은이언니가 장본인이었다.


언니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 나의 돌파구는 이것이겠구나. 장난처럼 던진 한 마디 말로 시작된 기획이 획기적인 난장 한 판이 되는 순간. 평균 나이 30대 후반의 셀럽파이브가 원래 본인들이 하던 직업정신 그대로 그저 함께 즐겁게 해 보자고 연습한 안무. 그 격정의 안무가 끝나고 카메라를 응시할 때. 언니가 가능성의 한 틈을 열어 보여준 것이었다. 아, 이렇게 하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나에게 붙은 딱지를 하나씩 나열해 보기로 한다. 여성, 30대, 미혼,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사실은)비정규직, 문과계열, 대한민국, 그리고 크리스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는 용기를 가상히 칭찬할 만한 도전정신 외에 건질 것이 하나도 없었던 작년 한 해를 보내고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도전 정신이란 말이 지금 이 나이에도 맞는 말이긴 한 건지. 딱지 하나하나가 엄청 갑갑하게 느껴졌다. 이것들에 눌려 나는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훅 밀고 들어왔다. 그러던 차에 마치 운명처럼 은이언니를 다시 조우한 것이었다.


삶이, 환경이, 주변 인물이, 나 자신조차 단 한 번도 안정적인 적은 없었다. 변화무쌍이 예사였는데 대체 언제부터 안정을 1순위로 두기 시작했던 건지. 내 마음부터가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왔다 갔다 하는데 말이다. 애초에 안정이란 인간에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단 걸 절감했다. 지금 붙어 있는 이 딱지들을 다른 걸로 바꿔본다 한들 정말로 안정을 찾을 순 없을 테니까. 그래서 새 판이 필요하다. 아무리 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하기보단 내 팔이 닿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여 꽃 피우는 것. 그걸 하기 위해 벌이는 새로운 판이 필요한 것이다. 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고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로 여러 통의 구직 지원 이메일을 보냈다.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동서남북 퍼져 나간 메일에 하나 둘 답신이 있었다. 이전의 나라면 이 정도로 철판 깔고 이런 일을 하진 못했겠지. 비록 이번엔 무위로 돌아갔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명한 확인. 그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


다른 하나는 저작 활동이다. 작년 11월,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UE10(언리미티드 에디션 서울 북페어)에 갔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창작물들을 소개하는 자리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사실 나는 엄청 한갓질 거라고 예상하고 여유롭게 부스들과 작품들을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사람에 밀리고 치여 어어어 하면서 헤매고 다니다 왔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만난 프로파간다 최 대표님은 전에 리틀 프레스에서 소개한 당시 구상하고 있다던 아카이브 북을 만들어서 이번 페어에 갖고 나왔다. 진심 감동+존경스러웠다. 그 책 때문에 이번 평창올림픽 성화봉송도 하시고 서울시의 지원과 초대로 서울역사에 전시부스도 하나 차리셨다고 들었다. 더불어 2쇄까지 하신다고...(독립출판에서 2쇄라니, 2쇄라니!! 것도 나온 지 두 달만에!!!)
정말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쓴다고 쓴다고 말만 했지 사실 글쓰기는 귀찮은 일 중에 하나라서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나의 주인공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다. 그러나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한 달 기준 연재의 이 HATC를 보름 주기로 마감을 당겨보려고 한다. 횟수를 늘려야 글감도 늘고 쉬지 않고 구상하고 쓰는 걸 습관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한 결심이다. 잘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책을 내려면 적어도 그 정도는 해야지 않겠는가. 근데 2주 만에 뭐 하나 쓴다는 건 진짜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 다닐 때, 다 좋았는데 이 2주 간격 과제가 제일 힘들었었다. 이렇게 뱉어 놓고 약속 못 지키면 안 되는데. 내 무덤을 내가 파고 있는 이 느낌을 어찌해야 한담. 하아…


바울은 율법사로서의 탄탄대로를 걷어 차고 믿음을 따라 도전을 감행한 사람이다. 그런 그의 행보를 성공적이었다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불러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오히려 많은 학문으로 미쳤다, 말로 자신들을 현혹시키려 한다며 그가 하는 말을 믿지 않고 그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했다(행 26:24~29). 전도여행으로 지중해를 가로질러 여러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던 그는 로마 시민임에도 감옥에 투옥되고 만다. 그렇게 모든 문이 닫혔을 때에도 그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자신의 상황으로 새로운 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노라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빌 4:13).


나도,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분이 열어주시는 새로운 국면, 혹은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장을 열어젖혀 난장 한 판을 벌이는 것. 그래서 그를 통해 그분을 더 깊이, 진하게 경험하여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나와 우리 앞에 주어진 일이다.


새로운 난장을 시작하는 자에게 박수와 격려, 그리고 적극적인 동참을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미 이 세계에 한 발을 담근 것이니 내뺄 생각일랑 하지 말고 함께 궁리해 줄 것을 당부한다.


...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Phil 1:18 b


_ WINTER / '18 2월 / HATC Season 1 E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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