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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Oct 14. 2021

이렇게 결혼하고 말았다

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03

SATC의 캐리 언니는 ‘You are the one!’이라고 말해 줄 한 사람을 찾고 또 찾았다. 나를 길들이기보다는 나와 함께 달려줄 사람을 만나고자 했던 캐리. 마침내 나타난 자신이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 그래서 그와의 결혼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는 결국 상대에게서 자신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본인에게는 그렇게 말했으면서 새로 만난 그녀와는 만난 지 몇 주 만에 그냥 모든 게 너무 쉬웠다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결혼을 택했던 남자. 그녀는 그런 그를 한동안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그 후로 몇 번의 다른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그는 여러 인연의 쳇바퀴를 돌고 돌았다. 그러나 결국엔 모든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말 그대로 징글징글한 인연이었던 그 남자, 미스터 빅과 함께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녀의 일생 동안 간절히 듣길 원했던 말을 바로 그 사람에게서 들으면서. 

“Carrie, you are the one.”


너무 로맨틱 하기만 한 걸까. 정말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것일까. 많은 날을 내가 그저 공상에 불과한 일에 골몰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인지를 되물었다. 그렇지만 그게 판타지라고 치부해 버리긴 어려웠다. 내가 바라는 게 그렇게 큰일인가. 그저 내가 그랬듯이, 나에게도 내가 기다려왔던 사람이 바로 너였다는 말을 듣고 싶은 그 바람이. 그게 그렇게 과한 요구인가.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십, 수백 번 SATC를 돌려보면서 계속 생각해봤다.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해보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캐리에게 설득당했다. 그녀의 욕망이 맞았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나는 SATC, Wonderful Single Life 같이 싱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을 즐겨 보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크리스천이기도 하다. 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바라면서 하나님을 따라 살았다. 20대 초반에는 연애엔 크게 관심 없었고 대신 주를 위해 사는 삶을 더 알고 싶었다. 그러다 뭣도 모르고 외로움에 시작한 연애에 크게 데고는 그 생각은 더 하지 않기로 해버렸다. 중반에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살길 찾기 바빴고, 후반에는 공부와 시험에 신경을 더 쓰다 보니 어느 순간 30대가 되어 버렸다. 크리스천 싱글 여성이라면 각자 가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세부 사항은 다르겠지만 동일한 한 가지 대 원칙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바로, 상대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 것,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일 것. 그렇다 보니 만남의 시작이 설정되는 지점과 범위가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신앙인이건 아니건 모두 동의할 수 있듯이 교회는 여초 집단이다. 전체 구성원 중에 여성들이 절반 이상이다. 잠재적 만남의 상대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이제 결혼이란 걸 생각해보자 하니 이미 난 싱글 라이프 구력 30년을 넘겨버렸다. 내가 바라는 그것을 생각해 보기도 전에 결혼이란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500불 마놀로 블라닉 스트래피 샌들을 일시불로 결제할 배짱은 없고, 뉴요커도 아닌 나는 캐리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가고 싶은 곳으로 대차게, 거침없이 달려 나가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K-도터, K-장녀로 살아왔기에 나에게 주어진 방식에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음을 바꿔 먹어 보려고도 했다. 내가 나를 어떻게든 길들여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생긴 대로 살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 성격이 어디 가겠나. 나의 노력은 부자연스러웠다. 나에게 맞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사자인 내가 이렇게 느끼는데 그 모습을 대해야 하는 맞선 상대들도 알 수 없는 이상함을 감지하고도 남았으리라.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서로에게 못할 일이었다 싶다.


몇 번의 철저히 결혼을 위해 주선된 만남을 가져보며 내가 느낀 것은 지난함이었다. 평소에 하지 않는 화장과 옷차림을 갖추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 나의 강점과 잠재력을 어필해야 하는 장으로 나는 초대되었다. 워낙 많은 구직 현장의 면접을 치러온 터라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너무 피곤했다. 나의 응함에 자의가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건 구직 현장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직접 그 회사에 지원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 자리에서 내가 어필할 수 있는 강점과 잠재력은 업무 적절성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다 덮어놓고 기회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할 자리가 아니다. 거기서 나는 결혼 상대자로서의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했다. 그 압박감이 나를 더욱 갑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너무 적나라하지 않게, 적절히 치고 들어가야 하는 아이스 브레이킹, 적당한 웃음과 리액션, 안 되는 대화를 억지로 이어 나가야 하는 시간들. 그 어떤 압박 면접도 이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이 모든 시간이 과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그러는 새, 나는 법정 청년 기준인 만 34세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여있는 물 마냥 지내기를 몇 년. 이런 나를 보며 누군가는 눈이 높다고 했을지 모른다. 나이 생각 안 하고 아직 제 주제를 알지 못한다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난 나와 함께 달려 줄 사람을 찾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러한 나의 싱글 라이프는 모두 크리스천 라이프라는 틀 안에 제한되어 있었기에 글을 읽는 모두에게 설득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크리스천 싱글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정말 어쩌다 한 번이라 하더라도 한 번쯤은 이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거라 꽤나 확신한다.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그즈음, 나의 친구 J가 오랜 고민과 기도 끝에 이전에 몸담았던 교회보다 더 큰 다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단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의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잘 알고 공감하고 있었기에 그가 했을 고민의 무게를 생각하면 안타까움보다는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거기서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나의 바람처럼 그는 그곳에서 오히려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고 더욱 아름다워졌다. 그런 변화를 접하면서 나도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 또래 다른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들의 신앙생활은 어떤가. 더 많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서로의 배경은 너무나 달랐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 나는 돌 탁자와 케어 패러벨의 외양을 머릿속에 그림으로 펼쳐 상상하면서 나니아를 읽는데 그는 텍스트로서 나니아를 읽었다. 그렇게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상황과 환경, 서로에 대한 많은 것들에 대해 나로 더 넓게 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끝까지 설득하고 자신의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모습을 알게 해 주고 나를 나답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라면, 한번 해볼 만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결혼하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나의 이야기는 싱글 탈출기도 아니요, 결혼 성공기도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나는 이렇게 승리하고 쟁취하였다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실 내가 잘한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내 사람들은 이런 나 때문에 적잖이 어렵고 힘들었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결혼하고 만 것은 그런 지난한 시간들을 괴로워하고 슬퍼하면서도 내가 나와 함께 달려줄 사람을 찾으려 노력하였고, 작은 용기를 내어 보았고, 마침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여러 우연의 중첩에 따른 결과이지 않았나 싶다. 이것을 나는 하나님이 내게 허락해주신 섭리라고 부르고 싶다.


나의 결혼 소식을 전했더니 한 친구가 글의 제목을 이렇게 붙여보라고 추천해주었다. 결혼하고 이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파일을 만들어 두었는데 좀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얼마 전, 싱글 라이프의 어려움과 고민들을 결혼했어도 계속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소원을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걸 글로 잘 써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격려들에 힘입어 이 글은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 글도 나 혼자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안다. 그러나 사실 항상 지나고 깨닫게 되지 않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감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뭔가 하고 계신다. 그리하여 지난한 싱글 라이프를 보내고 있는 당신의 지금, 오늘. There must be something. I can feel it.  




But I have written very boldly to you on some points so as to remind you again, because of the grace that was given me from God,

- Romans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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