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 본디오 빌라도
Luke 23:13-25
예루살렘은 다스리기 힘든 도시입니다. 백성들이 매우 거칠어서 수시로 폭동의 두려움을 느꼈거든요. 저는 그들의 동태를 살피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임기 동안만 잘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어요. 대제사장들은 그가 성전을 모독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며 신성모독을 했다면서 그를 죽여달라 요구했지요. 저는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죄목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로마 법에는 없다 설명했습니다. 정 원한다면 유대법을 따라 알아서 처벌하라 했지만 자신들에게는 권리가 없다며 막무가내로 덤벼들었지요. 그러면서 직무에 태만하며 로마에 충실치 않은 관리라며 저를 압박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일단 예수를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변호하거나 선처를 구하려 갖은 애를 쓰던 보통 범죄자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더군요. 관저를 뒤흔드는 소란 속에도 그는 침착하고 조용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해보았지만 내란죄가 그의 죄목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사형은커녕 사실 그 어떤 처벌도 적용하기 어려웠지요. 성난 군중을 잠재울 생각으로 예수를 채찍질하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은 오직 그의 죽음만을 원할 뿐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식민지를 잘 관리하지 못하고 혼란만 방조한 관리로 남게 될 것이 뻔했어요.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오라고 하여 손을 씻는 것으로 겨우 그들의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어요. 예수의 뒷모습이 계속 남았기 때문이었지요.
[해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의 식민지를 통치하는 총독이었습니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꽤 유능한 관리였지만 그가 다스리는 땅의 사람들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서 그는 몇 차례 실정을 저질러 유대인들의 저항에 부딪혔던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성전에 로마군의 깃발을 들여놓은 사건이었고 두 번째는 성전에 있는 돈을 가지고 수로를 건설하는 데 사용했던 일입니다. 두 사건 모두 유대인들의 극렬한 저항을 불러왔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 따위는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그들의 저항에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빌라도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불안정해져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못 박으라며 관저로 몰려왔을 때 빌라도는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는 현실을 위해 진리를 외면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