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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Apr 14. 2022

Were you there _ 4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 구레네 시몬


Mark 15:13-25, Rom 16:13


아들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을 제대로 보고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그렇게 며칠을 걸려 도착했는데 막상 와보니 예루살렘은 어지럽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외침과 소요가 끊이지 않더군요. 서로를 떠밀며 올라가는 많은 무리에 어쩌다 보니 우리도 휩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부르는 자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날이었어요.

저는 아이들을 챙겨 빨리 그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군병이 갑자기 제 멱살을 잡고 무리 앞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니 저의 생김새만 보고 노예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저더러 이 사형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걸으라고 하더군요. 강압적인 군병 앞에 항의도 제대로 못하고 결국 십자가에 깔려 쓰러진 그를 부축하며 십자가를 함께 짊어졌습니다. 어찌나 무겁던지요. 온갖 고문으로 피를 뚝뚝 흘리며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그가 절대 혼자 짊어질 수 없는 무게였습니다. 걸으면서 곁눈질로 쳐다본 그의 얼굴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덕지덕지 핏자국이 엉겨 붙은 얼굴 사이로 그의 눈동자는 처연하게 빛나고 있었거든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것은 자신 있게 보여주려던 예루살렘의 모습이 아닌 이 사람의 얼굴이었다는 것을요.


[해설]

구레네 사람인 시몬은 아들인 루포, 알렉산더와 함께 예루살렘에 왔다가 억지로 십자가 사건에 휘말립니다. 구레네(Cyrene)라는 지역은 지금의 리비아에 해당하는 아프리카 지역입니다. 그렇다 보니 시몬이 흑인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억지로 사형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시민들과는 구분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시몬의 이야기는 성경에 더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아들 루포가 로마의 지도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교회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통로로 복음이 전파된 땅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면서 시몬은 그가 짊어지고 가는 고통의 크기를 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나중에 그 희생이 자신을 대신한 것임을 알았을 때 그가 느꼈을 은혜의 크기는 십자가를 져보지 않은 사람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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