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 사도 요한
Luke 22:54-62, John 21:17
저는 물고기를 잡는 한낱 어부였습니다. 선생님이 부르신 그날부터 그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과 그분의 삶을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우게 되었지요. 선생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모두가 그것을 알기를 원하셨어요. 병든 자들을 고치고 가난한 자들을 먹이셨으며 불쌍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선생님은 왜 그렇게 돌아가시게 된 걸까요.
선생님이 잡혀가시고 우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바로 선생님의 본가를 찾아가서 사람들이 선생님을 죽이려고 잡아갔다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제 말을 듣고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셨어요. 저더러 거기가 어디냐고, 앞장서라 하셨지요. 쓰러지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들의 마지막을 보셔야겠다는 어머니를 차마 막을 수 없었어요. 우리는 함께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 올라갔습니다. 모든 시간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십자가 밑에 쓰러지셔서 계속 눈물을 흘리셨어요.
선생님은 그런 어머니와 함께 있는 저를 내려다보셨지요. 그리고는 제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그 순간 어제 식사 시간이 갑자기 생각나더군요. 선생님은 저를 안고 계셨어요. 제 친형 야고보도 그렇게 저를 안아주는 일이 거의 없는데. 선생님은 저를 참 많이 가까이해주셨습니다. 저를 품에 안으셨던 선생님처럼 제가 어머니를 안았습니다. 떨리는 어머니의 어깨를 안고 그렇게 선생님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습니다.
[해설]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 대부분의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하던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만큼은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던 제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각별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요한의 이런 사랑을 잘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남긴 글들은 '사랑'의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쓴 복음서에서 자신을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적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가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분명히 전제하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요한으로 하여금 그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함께 걷도록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