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로맨스(TRUE ROMANCE)

Heaven and the City Season 1 SPRING

by 사라리

스물셋, 그리고 열아홉. 둘이 처음 만났던 때의 나이.


혈혈단신 상경하여 눈물 젖은 빵으로 한 끼를 겨우 때우던 그 시절, 둘은 고속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그녀가 서울 이런저런 동네의 일자리를 전전하고, 지금과 비교하면 긴 군 생활을 그가 보내고 난 후, 그렇게 그들은 부부로 이어진 인연을 받아들였다. 출산으로 어린 그녀는 몸에 칼을 대야만 했고 그 수술비 때문에 그는 중동의 모래바람을 맞아야만 했다.


그녀가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지 못하고 영혼이 말라가던 때, 그분을 만나 새 생명을 얻었고 그는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기고서야 창조주이신 그분에게 엎드러졌다. 그분의 사랑을 깨달은 후, 그들은 이제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영광을 위해 그분이 허락하신 새 삶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대했다. 작은 사글셋방에서 시작해 몇 번의 이사를 거쳐 더 이상 설움 없는 내 집 장만을 하기까지 참으로 그들은 열심히 살았더랬다.


그렇게 함께 지내온 세월이 35년, 어느새 중년에 접어들어 그는 희끗한 머리의 나이 예순이 되었다.

이상, 우리 집 어른들 이야기되시겠다. ㅋㅋ


남들은 환갑 선물로 결혼 상대자 및 손주를 안겨 드린다지만 해당사항 없는 나는 나의 최측근, 리틀 시스와 함께 세상의 속설(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을 사실로 증명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가열하게 몰아닥친 오후 보충수업은 해외여행비로 차곡차곡 쌓여 결국 우리를 지구 반대편으로 데려다주었다. 너네는 주야장천 비행기 타면서 어째 우리는 한번 타보질 못하냐 하시더니만 정작 그렇게 비행기를 타던 우리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자동출입국 심사시스템에 등록까지 하는 저력을 보이신 두 분이셨다. 이 일로 나는 나름의 약속이 자면 약속이고 속설이 자면 속설을 제대로 지켜냈다고 목에 약간 힘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동안의 해외여행 내지는 방문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은 온전히 두 분을 위한 것이었다. 가이드로, 안내자로, 통역사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딸들의 1년 장기 프로젝트는 로맨틱. 성공적. 이었다.

그리고 몇 주 전, 두 번째 프로젝트로 손재주 좋은 작은 딸의 통솔 하에 흐드러진 꽃들과 푸르른 나무를 배경으로 야외 스냅 촬영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구도와, 소품과, 의상을 고르고 궁리하며 며칠을 보냈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적재적소에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컷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즐거워했고 이내 베스트 컷을 뭘로 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예비부부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한껏 멋과 사치를 부려 가면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무엇보다 서로를 그 어느 때보다 사랑하는 순간을 담기 위해 스튜디오 웨딩촬영을 한다. 여러 번 지켜봐 온 바, 그것이 찬란한 순간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는 깨닫게 되었다. 주름진 이마와 희끗한 머리에 멋 부림 없는 차림이라도 30년을 넘게 둘이 하나 되어 투박한 손을 붙잡고 있던 그 찰나가 젊음이란 이름, 그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부부들의 그것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 것인지를.


두 사람의 세월과 경험과 추억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는 그때. 나는 이 두 분이 나의 부모님이라서, 그리고 충만하고 견고한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재주를 가진 나의 최측근 리틀 시스도 고마웠고.


무엇보다, 꿈꾸겠다면 이런 모습, 이런 사랑을 꿈꾸겠다고.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면 이렇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_ SPRING / '16 어버이날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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