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는가

Heaven and the City Season 1 SPRING

by 사라리

어느새 3월. 2017년 새해의 시간은 살같이 흘러 3개월 차를 맞았다. 나에게 유독 3월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달이기도 하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생활해온 지 어언 8년차. 어느새 나의 새해 기준은 새 학기 시작 기점인 3월로 고정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3월이 되어야 몸과 마음이 무언가 새롭게 되는 기분이 든다. 사실 그분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으로 매년마다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던 루틴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쇼윈도에 걸려 있던 무채색 계열의 옷들이 파스텔톤으로 바뀌고, 카페들이 딸기와 벚꽃 음료를 시즌 주력 상품으로 삼아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는 것도 3월이다. 지난한 겨울을 기어이 떨쳐내려 애를 쓰며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고대하기 시작하는 시간. 이처럼 나에게 3월은 윈도우 시작 배경화면인 ‘새로운 시작’ 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맘 같지 않은 겨울은 아직 떠나기를 주저하며 마지막 발악 같은 맹추위를 과시하는 중이다. 정리해서 넣어 두려 했던 겨울옷들을 다시 꺼내 입는 요즘의 날씨는 물론이고 더하여 나는 아직도 새둥지를 찾지 못했다. 이미 학기는 시작되었고 오늘 학생들은 올해의 첫 모의고사를 치렀다. 그 사실을 나는 뉴스로 접했다. 보낸 메일함의 구직 지원 메일들은 점점 쌓여가고 전화기는 울리지 않는다. 밖도, 안도 아직 봄을 맞지 못했다. 그전에도 물론 이런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나의 모든 커리어는 비정규, 계약직에 한정되었기에 그동안 여러 번의 부침을 겪어왔다. 다만, 이번은 느낌이 달랐다. 다년간의 구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올해의 상황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정도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학생들 숫자가 줄어서, 복직률이 높아져서, 나이가 많아서, 아니면 여자라서? 사실 이 모든 조건은 항상 존재하는 리스크이자 고정적으로 적용되던 어려움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학교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던 건 그분의 신실하심이었다. 내 밥줄 가지고 절대 장난치지 않으신다는 것. 나의 필요를 그 누구보다 잘 아신다는 사실을 나는 경제활동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인지 계약직 봇짐 장수 신세여도 나름 괜찮았었다. 감당할 만한 것이었고 이를 통해 그분의 역사를 경험하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자부해왔다. 그렇게 지낸 것이 근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다시 기로에 선 것이었다. 정말 괜찮은가. 내가 알고 있던 건 확실한 건가. 달력이 3월로 넘어가는 그 순간, 나는 약간 사선에 다가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진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정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난 터키-그리스 여행은 나에게 던져주는 물음이자 답이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이며 어디로 갈 것인가. 당시 바울은 복음전도라는 단 하나의 목적이자 목표를 가지고 자신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전에 가보지 않았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 모를 그 길을 걸어갔다. 앞으로의 삶을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을 인도하셨던 그분이 나의 길도 인도하시리라 확신하며 크레타의 노을을 뒤로 하고 돌아온 후, 오히려 홈그라운드에서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모든 길은 막혔고 내 앞에 있는 건 바울이 드로아에서 목도했던 에게해 같았다. 내가 알던 그분은 어디 계시는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 건가.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분의 신실하심을 바라는 것은 마치 수심을 모르는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일 같았다. 이렇게나 아무런 답 없는 나날들을 보내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 그냥 이러고만 있어도 되는 건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 터키-그리스 여행 중 드로아 여정에 대해 이런 말씀을 들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 여러 문을 두드렸던 사도들은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셔서 결국 에게해를 앞에 둔 드로아까지 밀려왔는데 그 곳에서 환상으로 나타난 마게도냐로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분이 한 문을 막으실 때에는 다른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이며 내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하신다는 것을 K교수님은 강조하여 설명해 주셨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한참을 미뤄두고 펴보지 않았던 어느 한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1882년, 니체는 대담하게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했다. 이를 통해 니체가 하려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믿음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로 “하나님이 죽은” 자리에서 참된 믿음이 시작한다. 하나님의 영광인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에 대한 모든 거짓된 개념들을 처형하셨다. 예수님이 성부께 부르짖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리신 바로 그때(히 9:14),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상상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계시하신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무한히 더 나은 하나님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곤경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하나님이 아닌, 인격적으로 우리의 모든 곤경의 근원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본다. 바벨론의 신인 마르둑은 인간이 자신의 노예로 존재하기를 바랐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 The Good God(선하신 하나님) by Michael Reeves 中


신은 죽었다고? 아니, 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 빅 픽쳐를 준비하시는 중인 것이다. 나의 인생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건 0으로 수렴되는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비록 무엇을 위한 제로베이스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나온 나의 인생에서도 그랬고 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당시에는 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 길을 여러 혼란과 방황에도 끝내 통과해내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의 특징은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여러 요인으로 상대적으로 봄/가을은 짧아지고 여름/겨울이 길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사계절은 자기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3월, 그러나 눈발이 날린다. 겨울은 아직도 맹위를 떨친다. 그렇지만 나무는 새 움을 틔우려 고군분투 중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 꽃샘 추위만 지나면 분명히 새싹이 올라오고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곧 연둣빛 잎사귀들로 마른 나뭇가지는 새 옷을 입을 것이다. 모아나가 할머니의 인도를 따라 먼 바다로 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곧 그분의 새로운 순풍을 받아 나도 어딘지 모를 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비교적 길었던 나의 겨울시즌 아웃도 멀지 않았다. 신은 죽지 않았고 나도 죽지 않을 것이다.


_ SPRING / '17 3월 / HATC Season 1 EP 10

이전 03화트루 로맨스(TRUE RO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