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고양이

by 김주영


하늘은 맑고 해는 중천이었다. 집 마당을 돌아다니던 우리 집 고양이 복희가, 밧줄처럼 생긴 걸 입에 물고 의기양양하게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나는 거실 창밖으로 이 광경을 바라봤는데, 처음엔 낡은 밧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복희가 가까워질수록 그것이 살아 있는 뱀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놀란 마음에 얼른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복희는 물고 있던 뱀을 자기 앞에 떨구고는, 뱀이 도망가지 못하게 앞발로 몸통을 지그시 눌렀다. 복희는 이 상황을 자랑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마치 전쟁에 이기고 고국으로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기운이 넘쳐났다. 마치 나의 환호와 박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뱀은 길이가 사람 팔 정도였고, 두께는 사람 손가락 정도였다. 몸통은 녹색 비늘에, 검은 점과 주황색 무늬가 일정한 패턴으로 수놓아 있었다. 뱀은 기척이 없었다. 혹시 죽은 게 아닐지 우려됐다. 그때 뱀이 미세하게 꿈틀대는 게 보였다. 이대로 두면 복희가 뱀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얼른 빗자루와 삽을 들고 와 뱀을 삽 위로 옮겼다. 다행히 그 와중에 뱀은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만약 뱀이 몸부림을 쳤더라면, 이를 지켜보던 복희가 다시 공격에 나설 게 뻔했다. 그랬다면 구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삽 위에 올려놓은 뱀을 빗자루로 살짝 누른 채, 뒤뜰 후미진 곳으로 가 뱀을 놓아주었다. 그제야 뱀은 안심한 듯 몸을 조금씩 움직여 집 바깥 풀 사이로 스르르 미끄러져 갔다.


뱀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다, 나는 뱀을 보면 반사적으로 혼비백산하는 겁 많은 남자라는 걸 문득 상기했다. 그런 내가 뱀을 구조하게 될 줄이야. 고양이 복희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나. 이 일을 계기로 뱀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피하고 싶은 대상과 직면하는 건 이렇게 갑자기 닥친다. 그리고 막상 직면하면 아무것도 아닌 걸 그제야 알게 된다.


뱀을 물고 온 복희를 보며 고양이의 야생성을 새삼 깨달았다. 이날 이후로 고양이들은 수시로 뱀을 잡아 우리 부부를 당황하게 했다.


그 뒤로 며칠 뒤, 나는 본채에서 노트북을 막 펼치려던 참이었다. 그때 별채에 있던 아내가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별채에 뱀이 있다고 말했다. 얼른 별채로 갔다. 거실 한 귀퉁이에 뱀이 둥글게 몸을 말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집 고양이가 잡아다 놓은 모양이다. 이미 복희로부터 뱀을 구한 전력이 있던 나는 능숙하게 빗자루로 뱀을 밀어 삽 위로 올렸다. 빗자루로 지그시 뱀을 누른 채 집 바깥으로 나가, 근처 풀밭에 놔줬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집 안과 바깥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러다 보니, 간혹 고양이들이 잡아다 놓은 쥐며, 새, 뱀 등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에는 곤충도 잡아 와서 늘어놓는다. 하루는 별채에 들어섰는데 잠자리와 벌, 매미, 사마귀 같은 곤충 사체들이 한두 뼘 간격으로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순간 초등학교 때 하던 곤충 채집이 떠올랐다.


어느 날엔 가는 거실 바닥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시커먼 털 뭉치가 있었다. 처음엔 고양이 변인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움찔했다. 손으로 만져보고 들어보니 그제야 그게 새끼 두더지라는 걸 알았다. 뾰족한 주둥이, 갈퀴처럼 생긴 앞발, 두더지가 분명했다. 난생처음 보는 두더지를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잠시 죽은 두더지를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고양이가 죽인 사체들은 뒤뜰에 묻어준다. 벌써 수십 차례 묻었다. 사체를 묻을 때 고양이 대신 애도를 표한다. 집고양이가 집 안팎을 자유롭게 돌아다닐수록 집사의 일은 늘어만 간다.


고양이의 사냥은 본능에 가깝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양이들이 물어 온 사체를 마주할 때마다 내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난감하다. 최대한 고양이들의 살생을 막으려고 애쓴다. 나는 오늘도 고양이들에게 하릴없는 부탁을 한다. 노는 건 우리와 하고, 살생은 하지 말아 다오.


살생을 멈춰달라는 내 말이 고양이들에게 먹힐 리 없다. 고양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 곁에서 아기처럼 자고 있다. 그렇게 또 하루를 같이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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