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냥은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드나드는 고양이다. 집고양이와 길고양이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 사람과의 친화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야생성을 발휘하는 고양이랄까? 이 모험심 강한 고양이의 집사들은 고양이의 외출을 크게 괘념치 않아 보인다. 고양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전용 출입문을 두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 집고양이가 외출하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한 시도이다. 복잡한 골목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길고양이와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다. 특히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는 고양이의 목숨을 위협한다. 우리는 종종 로드킬의 현장을 마주하곤 한다.
십여 년 전 도시에서 처음 고양이와 살게 됐을 때, 아이들이 집안에서만 지내야 하는 게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창턱에 오랫동안 앉아서 창밖을 응시하는 고양이를 보고 있자면, 그 모습이 마치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처럼 보였다. 햇볕이 따스한 날이면 아내가 고양이를 안고 마당에서 바깥바람을 쐬어주곤 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고양이들은 이렇게 집에서 지냈다.
그런데 1년 전부터 우리 집 고양이들이 외출하는 고양이가 되었다. 시골에 온 지 2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우리 부부는 집 뒤뜰에서 새끼 고양이 다섯 남매를 구해 함께 살게 됐다. 마당과 별채를 드나드는 아이들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집 고양이들이 이듬해 봄, 마침내 마당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망설이는 것 같았다. 거실과 툇마루를 잇는 문이 열리면 빼꼼히 바깥으로 고개만 내밀었다. 주위를 두리번대다가 간신히 한 발 내디뎠다. 그러곤 코를 벌름대며 툇마루에서 서성이다가 다시 거실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아직 바깥공기가 낯선 모양이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툇마루 앞에 펼쳐진 마당까지 진출했다. 지금은 마당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건 물론, 몇몇 아이는 집 울타리를 넘어 가까운 곳으로 마실을 나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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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헤엄치듯 탐색한다. 집 안으로 한정됐던 자신의 후각을 꽃과 풀 냄새를 맡으며 확장한다. 햇볕이 따스한 날이면 일광욕을 즐기며 빛과 공기를 만끽한다. 눈요기만 하던 나비나 새의 비행을 쫓아가기도 한다. 거실 통창을 통해 마당에서 고양이가 뛰노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면 고양이의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때로 위험한 일도 생긴다.
아이들이 외출냥이 되고 그로부터 두 달 뒤, 손님들과 바깥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대문을 열었을 때, 늘 달려오던 옥희가 꼼짝하지 않았다. 툇마루에 납작 엎드린 채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하얀 털에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 등과 옆구리, 목덜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평소 우리 집 울타리를 넘어와 우리 고양이들을 위협하던 길고양이가 있었다. 유난히 덩치가 큰 수컷이었다. 이 길고양이에게 해코지당한 것이라 짐작했다.
그 뒤로 다른 고양이도 덩치 큰 그 녀석에게 봉변을 당했었다. 앙칼진 소리가 들려 나가 보면 우리 아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덩치 앞에서 꼼짝 못 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얼른 달려가 덩치를 내쫓았다. 다리가 물렸는지 어떤 아이는 한동안 다리를 절뚝댔다. 평화롭던 우리 집 앞마당에 긴장이 고조되던 때였다. 몇 번의 충돌 뒤, 덩치는 더 이상 우리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집고양이가 외출하면 위험에 노출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엇이 고양이를 위한 것인지, 결국 집사의 선택이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해가 뜨면 마당으로 나가고, 해가 지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어둠이 짙게 깔렸는데도 끝까지 마당에서 버티는 아이도 있다. 자기 이름을 몇 차례 불러야 그제야 엉금엉금 기어 오기도 한다. 복희는 이번 여름에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마당에서만 지낸다. 간식으로 유인해야 겨우 집 안으로 들어온다.
도시에서 살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고양이의 외출이 이곳 시골에 와서는 일상이 되었다. 우리 집 고양이들도 이곳 시골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나는 고양이들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마 시골이니까 가능한 선택이리라. 자유롭게 외출하는 고양이를 허용하는 일은, 결국 내 불안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