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인간 사이에 공통된 애정 표현은 스킨십이다. 사람이 고양이에게 하는 애정 표현은 주로 쓰다듬기다. 반면에 고양이가 인간에게 하는 애정 표현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얼굴로 비비기, 이빨로 깨물기, 혀로 핥기, 두 발로 움켜쥐기 등,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 사이에나 할 법한 과감한 애정 표현을 고양이는 시도한다. 무엇보다 스킨십의 절정은 일명 꾹꾹이라고 부르는 동작이다. 아기 때 어미의 젖을 물고 젖이 잘 나오게 하려고 앞발로 번갈아 가며 젖을 꾹꾹 누르던 행위다. 이 꾹꾹이를 내 배나 허벅지에 대고 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내가 마치 고양이의 어미가 된 기분이다. 인간 아이를 키우던 늑대의 기분이 이랬을까.
우리 집 고양이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스킨십이 있다. 마치 사람의 특정 부위에 집착하는 페티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양이 라희는 얼굴 핥는 걸 즐긴다. 새벽에 자고 있으면 갑자기 다가와 얼굴을 마구 핥곤 한다. 사포처럼 까칠까칠한 혀 돌기가 내 뺨을 연신 훑는다. 고로롱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은 고양이 침으로 범벅이 된다. 라희의 유별난 애정 공세이다. 잠에서 깬 나는 비몽사몽 라희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자다가 악몽이라도 꾼 것일까? 그래서 누군가 옆에 있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라희의 고롱대는 소리가 새벽의 고요 속에 퍼진다.
고양이 순희는 내 머리카락에 눈을 떼지 못한다. 방바닥에 누워있으면 순희가 다가와 자기 머리를 내 머리에 비비다가, 이내 머리카락을 핥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댄다. 그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한다. 그나마 적은 숱이 더 줄어든다. 순희는 가늘고 기다란 줄 같은 걸 좋아한다. 전선 가닥이나 책갈피 끈, 신발 끈, 실오라기, 빵 봉지 끈 등 가리지 않는다. 전생에 누에였거나 베틀의 장인이었거나 아니면 유명한 리본 리듬 체조 선수가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본다.
고양이 룩희는 손가락 무는 걸 좋아한다. 내가 룩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재빨리 앞발로 내 손을 움켜쥔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살며시 깨물고, 이내 힘을 준다. 예전에는 너무 세게 물어 손가락에 상처가 나기도 했는데,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물어도 심하게 아프지는 않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어쩌면 룩희는 손가락 무는 걸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야생적인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좋아서 그러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아프게 물 리가 없다. 인간이건 고양이건 무는 쾌감이 있는 모양이다.
고양이 옥희가 집착하는 건 나 자체다. 나는 옥희의 쿠션이었다가, 스크래치였다가, 캣타워였다가, 때로 나비도 된다. 옥희는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내가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안다. 내 리듬에 맞춰 나를 탐한다.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 타이핑을 하고 있으면 옥희가 헤엄치듯 걸어와 내 무릎 위에 앉는다. 마치 내 몸이 자기 것인 양, 너무도 자연스럽게 올라탄다. 내가 양반다리로 앉아 있으면 앞발과 뒷발을 각각 오른 허벅지와 왼 허벅지에 대고 몸을 쭉 펴 머리, 가슴, 배를 허벅지에 최대한 밀착해 자기 몸과 내 몸 사이의 틈을 없앤다. 흡사 내 양 허벅지를 다 덮을 정도로 커다랗고 하얀 찹쌀떡이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순간 나는 옥희의 쿠션이 된다. 나와 한 몸이 되고 싶은 옥희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본원적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옥희가 내 허벅지에서 잠이 들면, 점점 저리는 다리의 통증을 참느라 내 어금니에 힘이 들어간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내 몸을 나눠 즐긴다. 고양이에 의해 나눠진 내 부위는 각각 특별한 감각을 경험한다. 스킨십은 동물의 가장 원초적인 언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 따뜻한 마음이 번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