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룩희 (2)

사나운 고양이

by 김주영

룩희의 발톱에 팔이 할퀴어, 붕대를 감고 다닌 한 달 동안 나는 룩희를 피했다. 룩희도 나를 보면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그로부터 룩희와 나는 1년 가까이 서로 소원했다. 룩희는 아내와만 지냈다. 가끔 용기를 내 조심스럽게 룩희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보려고도 했으나, 그때마다 룩희는 내 손가락을 물어댔다. 내 손과 팔뚝에 룩희의 이빨과 발톱 자국이 사라질 틈이 없었다.


그러다 1년 정도 지났을까,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룩희는 더 이상 나에게 위협적인 소리를 내지 않게 됐다.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을 때가 많았다. 간혹 손을 물더라도 강도가 약했다. 룩희가 점점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고양이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룩희와 나의 관계는 나아졌지만, 문제는 룩희와 다른 고양이들과의 관계였다. 룩희가 우리 집에 오고 얼마 안 있어, 페르시안 고양이 옥희가 왔다. 옥희는 지인이 키우던 고양이였는데 사정이 생겨 우리 부부가 키우게 됐다. 옥희가 오자, 룩희는 옥희를 괴롭혔다. 가만히 있는 옥희에게 달려들어 해코지했다. 집 안에서 옥희의 새된 소리가 들리면, 방바닥에 옥희의 흰 털이 한 움큼씩 흩어져 있곤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우리는 둘이 서로 마주치지 않게 최대한 분리했다. 우리 집에 먼저 온 룩희가 나중에 온 옥희를 시샘하는 거라 짐작했다.


몇 달 뒤, 고양이 라희까지 우리와 살게 됐다. 룩희는 라희도 괴롭히기 시작했다. 라희에게 달려들어 몸통의 털을 뽑아댔다. 라희는 쇳소리를 내며 도망쳤다. 맞서 싸우던 옥희와 달리, 라희는 늘 뒷모습만 보였다. 그런 라희의 행동이 룩희에게 더욱 집중적인 표적이 되었다. 다른 고양이를 사납게 대하는 룩희의 모습에 뾰족한 묘책이 없어 보였다. 결국 우리는 룩희를 방에서 따로 지내게 했다. 거의 10년 가까이 룩희는 다른 고양이들과 따로 지냈다.


그러다 작년 가을부터 룩희도 다른 고양이들처럼 외출냥이 되었다. 외출냥이 되어서도 룩희는 가끔 다른 고양이들을 괴롭히긴 하나, 예전에 비하면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몰라 룩희의 외출은 될 수 있으면 우리 통제하에 하고 있다.



룩희와 함께 산 10여 년을 돌아보면, 룩희는 지금껏 다른 고양이에게 친밀감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고양이 여럿과 살 때는 고양이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다. 서로 사이가 안 좋으면 집사나 고양이 모두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타고난 기질은 고치기 힘들어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룩희의 큰 변화이자, 동시에 나의 큰 변화라고 한다면, 룩희와 내가 한방에서 같이 자는 사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에 부쩍 내 곁에 붙어있으려고 한다. 룩희와 어색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룩희는 이제 노년의 티가 난다. 건장했던 몸은 왜소해졌고, 민첩함이 많이 사라졌다. 구내염이 심해 건사료를 씹다가 괴로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사는 건 반려동물의 생로병사를 함께하는 일임을 실감한다.


룩희가 늙어가는 동안, 나 역시 함께 나이를 먹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며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도 자연의 일부인 동물임을 알았다. TV를 없애고 그 자리에 캣타워를 놓았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다. 집 앞마당에서 뛰노는 고양이들을 매일 영화 보듯이 본다.


룩희는 지금 창가에 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만끽하고 있다. 그 뒷모습에 룩희와 함께한 10여 년의 세월이 비친다.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룩희가 야옹~거리다, 바로 내 손가락을 문다. 처음에 나를 위협했던 행위가 이제는 장난치는 놀이로 바뀌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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