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룩희 (1)

집사와 충돌

by 김주영


룩희는 우리 집에서 가장 나이 많은 고양이다. 대략 16살, 사람 나이로 치면 팔십 대 노인이다.


룩희는 12년 전, 안락사를 앞두고 우리에게 왔다. 아내가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보호소에서는 품종묘나 어린 새끼만 주로 입양된다. 룩희처럼 다 자란 성묘는 기한이 지나면 안락사를 맞는다.


룩희가 우리에게 온 날, 아내는 룩희가 있던 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룩희가 울타리 안에서 종일 울어대더란다. 보다 못한 아내가 룩희에게 목줄을 메어 산책을 시켜줬다. 룩희는 아내를 보자 어서 자기를 데려가달라고 신호를 보낸 듯하다. 그래서일까. 그날 룩희는 작심한 듯 아내를 따랐다. 그날 아내도 짐작했을 것이다. 이 아이는 우리와 같이 살 인연이라고.


룩희는 갈색 코숏이다. 룩희가 아내를 잘 따랐던 것으로 보아, 집고양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집에 온 날, 룩희는 왠지 낯빛이 어두워 보였다. 무언가 상처가 있는 아이 같았다. 무슨 사연으로 보호소까지 왔던 것일까?


우리 집에 온 룩희는 아내를 대하는 것과 달리 나를 경계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른 남자를 경계했다. 가전제품을 수리할 일이 생겨 AS 기사가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룩희는 그를 보자 사납게 돌변했다.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AS 기사를 위협했다. 우리 부부는 놀라 룩희를 얼른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어른 남자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 뒤로 집에 손님이 오면 룩희는 늘 방에 따로 있게 했다. 지인들이 룩희를 아무리 보고 싶어 해도, 룩희에게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게 늘 주의를 기울였다. 룩희는 우리와 10년을 넘게 사는 동안 우리 부부 외에 다른 사람에게 손길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새끼 고양이를 대하는 것과, 다 자란 고양이를 대하는 건 전혀 다르다는 걸 룩희를 통해 알았다. 마치 가치관이 확립된 타인과 관계 맺는 것과 비슷했다. 룩희는 고집이 세고 사나웠다. 룩희는 우리 집에 오고 몇 달 동안 집 바깥으로 나가려고 시도했다. 나는 고양이에게 위험할까 봐, 고양이의 외출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러다 결국 룩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고양이의 발톱이 생명체에 심한 타격을 가할 수 있으리라고는 아직 생각 못 할 때였다.


룩희가 오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나는 퇴근하고 집으로 왔다. 아내는 학원 일로 집에 없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데, 룩희가 순식간에 열린 문틈 사이로 뛰쳐나갔다. 나는 놀라 룩희를 쫓았다. 룩희는 앞마당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담 위에서 멈춰 섰다.


나는 부리나케 룩희의 몸통을 부여잡고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 과정에서 룩희는 몸을 비틀며 발버둥을 쳤다. 나에게 잔뜩 화가 난 듯했다. 룩희와 나는 거의 코앞에서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인간 남자가 흔히 그러하듯 나는 기선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동물에게 소리로 윽박지르면 통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물을 어르고 달래는 법을 몰랐다.


평소 나답지 않게 위협적인 목소리로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위협감을 느꼈는지 룩희는 나에게 공격을 감행했다.


순식간이었다. 룩희는 어느새 뛰어올라 발톱 네 개를 내 왼 팔뚝에 꽂은 채 낙하했다. 마치 영화 속 ‘울버린’의 공격처럼 앞발에 숨겨진 비밀병기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의 왼 팔뚝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가 쉽게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수건으로 왼팔을 동여매고 택시를 잡아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 알았다. 고양이에게 (어쩌면 다른 동물에게도) 가까운 거리에서 소리를 질러 위협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는 것을.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아내에게 이 유혈 사태를 전화로 보고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한 아내의 반응에 나는 서운해했다. 게다가 나보다 룩희를 더 챙기는 듯한 아내의 목소리에 팔뚝에 난 상처보다 더한 상처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 뒤 나는 한 달 정도 왼팔에 붕대를 감고 출근해야 했다. 룩희와는 잠시 격리 상태로 지냈다. 고양이 발톱이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그때 알았다. 룩희에게 공격을 당하고 나는 한동안 룩희가 무서웠다. 룩희와 같이 살 수 있을지 고민됐다. 그러나 룩희가 이대로 파양 되면 더 이상 인간과 교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룩희를 내칠 수는 없었다. 룩희와 함께 살려면 내가 변해야 했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고양이와 같이 산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집고양이가 집에서만 지내지 않고, 외출하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했다.


반려동물과 사는 걸 너무 쉽게 여겼다. 갈등도 충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때 상처는 아직도 내 팔뚝 한가운데 훈장처럼 남아있다. 룩희의 발톱 자국 네 개는, 집사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걸 알려준 첫 교훈이었다.


그 후 나는 룩희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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