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하루

by 김주영

고양이와 함께 살 때 생기는 호사는 아침에 눈을 뜨며 시작되고, 밤에 잠자리에 들며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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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고양이 순희가 기다렸다는 듯 머리맡으로 달려와 앵앵거리며 알람 소리를 대신한다. 자기 볼을 내 얼굴에 반복적으로 비비적대며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얼른 자기와 놀아달라며 아양을 부린다. 나는 잠자리를 물리치고 순희를 쓰다듬는다. 아침잠 많은 나는 아침잠 없는 순희 덕에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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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청소를 마치고, 거실 탁자에 앉아 책을 펼치면 고양이 옥희가 다가와 내 눈을 쳐다본다. 나도 가만히 옥희 눈을 바라본다. 옥희가 내 품에 들어온다. 나는 고양이가 편안히 있게 몸을 고쳐 앉는다.


고양이와 내가 서로 마주 보는 시선 사이에, 사람의 영역도 아니고, 고양이의 영역도 아닌, 제3의 공간이 만들어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공간에서 서로는 어떻게 애정 표현을 해야 할지 잠시 머뭇댄다. 고양이는 고양이 나름대로, 나는 내 나름대로 친근감을 드러내려 애쓴다. 나의 애정 표현과 고양이의 애정 표현이 때로 충돌하기도 한다.


고양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정 표현이라는 듯, 이빨로 내 손가락을 물고 발톱으로 내 뺨을 긁는다. 나는 가벼운 통증에 순간적으로 고양이에게서 물러난다. 내 반응에 옥희의 앞발이 허공에서 길을 잃는다. 나는 다시 옥희를 쓰다듬으며 눈빛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고양이와 나 사이에 펼쳐진 제3의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애정 표현은 없을지 궁리해 본다. 옥희는 내 허벅지 위에서 편안히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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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방향이 남서쪽이어서 오후 5시경이면 거실 통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루 중 거실이 가장 환해지는 순간이다. 아울러 우리 집 고양이 몸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털 한 올 한 올에 햇빛이 스며, 독자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고양이 콧수염이 가늘고 날카로운 빛처럼 빛난다. 콧수염 한 올이 그리는 빛을 따라가다, 끝에 이르면 방울로 맺혀 떨어질 듯하다.


빛과 그림자가 거실을 채색하는 시간이다. 나와 고양이는 기꺼이 그 붓질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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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자리에 들 때 고양이 룩희가 기다렸다는 듯 품 안으로 파고든다. 룩희의 보들보들한 갈색 털이 내 가슴과 배를 푹신하게 덮는다. 이윽고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낸다. 룩희의 가르릉 소리와 내 심장 박동이 하나의 품에서 공명한다. 두 개의 울림이 번갈아 가며 서로의 몸에 퍼지다가 하나의 리듬으로 합쳐질 때 나는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밤잠이 없는 나는 밤잠 많은 룩희 덕에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를 내가 고양이 곁을 지킨다. 아니, 고양이가 내 곁을 지킨다.


하루의 시작도, 하루의 끝도 고양이와 함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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